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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Sep 02. 2022

불안

대구의 동성로는 젊은이들이 몰리는 거리이다. 주말이면 한껏 차려입은 중고생들과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거리를 가득 메운다. 가끔 나 또래의 아줌마들도 보이긴 하지만 그건 해가 떴을 때이고, 밤이 시작되면 이곳은 젊은이들의 열기로 카페며, 술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나 또한 대학시절 이곳을 누볐고, 날이 새도록 마신 술 덕에 아비 어미도 몰라보는 추태를 부린 적도 있다. 그런 거리의 뒷골목을 아이와 걷게 되었다. 


예전과는 달리 문닫힌 가게들이 수두룩하다. 코로나 이후 여기저기 잠시 문을 닫겠다던 가게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새 주인을 구한다는 광고지로 온 건물에 도배하고 있다. 그나마 임대료가 저렴한 뒷골목에는 불이 켜져 있는 가게들이 보인다. 보세 옷 가게들이 즐비했던 그 거리는 이제는 타로와 점사를 보는 가게들로 바뀌었다. 한 집 건너 하나 있는 타로 가게들에는 문밖까지 줄을 서서 자신의 상담 차례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이 즐비하다. 슬쩍 들여다본 가게 안에는 작은 책상이 놓여있고 보랏빛 천위에 펼쳐진 타로카드를 심각하게 바라보며, 상담사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진지하다 못해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그 뒤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무엇을 물을지 고심하는 여대생의 모습까지, 아기자기 신비롭게 꾸며놓은 타로 가게는 포근한 모습과는 다르게 초초함과 수심이 가득하다.


타로 골목 사이사이에는 상담자를 만나지 않고도 자신의 미래를 점쳐보는 사주 뽑기 기계들도 즐비하다. 젊은이들은 천 원짜리 몇 장으로 뽑은 한 줄의 예언에 한껏 웃어 보이기도 실망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손에 뽑힌 예언의 글들은 잠시 잠깐 위로와 희망 또 다른 절망만을 남긴 체 쓰레기가 되어 이리저리 좁은 골목길을 나뒹군다.


타로 골목을 벗어나 지하상가에 접어들자 사람들이 둘러싼 가게가 보인다. 사람들의 머리 위 벌건 글씨의 로또명당이라는 간판이 복권가게임을 알려준다. 주말이라 그런지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줄까지 서며 자신의 인생에 한 방을 기대하며 복권을 사고 있다. 로또명당에 적힌 글처럼 나 역시 인생역전을 이뤄 볼 로또 몇 장 사볼까 하다 내 손을 꼬옥 쥐고 있는 아이에게 요행 바라는 삶을 가르치는 건 아닐까 해 관심 없다는 듯 가게를 지나친다. 하지만 가게를 지나치며 오는 내 마음은 아쉬움이 가득하다


젊은이들의 거리였던 동성로의 풍경이 달라졌다. 마냥 웃고 떠들던, 한심한 청춘이라 혀를 차는 어른들의 걱정이 가득하기도 했던 그 거리가 달라졌다. 불안하지 않았던 시절이 어디 있겠냐마는 오랜만에 찾은 동성로는 2022년의 불안에서 가느다란 희망 하나 건져보려는 젊음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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