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수리마수미 Sep 06. 2022

태풍이 몰아쳐도 쓰레기는 수거한다

3장 여름- 7

며칠째 슈퍼태풍 '힌남노'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역대급, 초강력, 유사 이래 등등 갖다 붙일 수 있는 걱정스러운 단어들은 다 끌어모아 그 괴력을 표현하는 이 태풍에도 누군가는 쓰레기를 버린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 쓰레기를 치우러 간다. 비가 몰아치는 깊은 밤, 모두에게 안전한 장소에 머무르라는 뉴스와 방송이 넘치는 이 시간 남편이 출근했다. 


저녁 여섯시, 

출근시간을 조절할 수 없냐는 나의 물음에 이제 갓 들어간 초보 청소부가 무슨 힘으로 출근시간을 조절하냐며 헛웃음을 웃는다. 새벽 두시 반의 출근은 태풍의 위력이 가장 강하다는 새벽시간을 피하려고 자정으로 조정되긴 했지만, 저녁부터 내리꽂는 비는 몇 시간 앞당긴 출근시간이 무색할 만큼 요란하게 퍼붓기만 한다. 


저녁 아홉시,

이른 저녁을 먹고 새벽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 남편의 꽉 닫힌 방문 앞에 아이가 두 손을 대고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아빠 주무시는데 시끄럽게 뭐 하냐니, 우리 아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주문을 외우고 있는 중이란다. 아빠는 아무 일 없을 테니 걱정 말고 어서 들어가 자라는 나의 잔소리에 아이는 미련 가득한 표정으로 어기적어기적 제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지 이불 위를 한참을 뒹굴뒹굴한다. 


밤 열시,

잠자고 있던 남편 방문이 열린다. 아이와 내가 옥신각신하는 소리에 잠이 깼나 싶어 미안해하니 그저 잠이 오지 않아 일어났다고 한다. 남편은 뒹굴거리는 아이 옆에 눕는다. 아이는 아빠 품에 쏘옥 굴러들어가더니, 일하러 가지 말라 애교를 부린다. 남편은 아빠가 일하러 가지 않으면 태풍으로 쓰레기들이 온 사방에 흩날릴 수도 있기 때문에 꼭 가야 한다고 한다. 아이는 그래도 일하러 가지 말라며 한참을 칭얼대더니, 아빠의 토닥임에 어느새 깊은 잠에 빠진다.


밤 열한시, 

빗줄기가 더 거칠어진다. 열어두었던 베란다 창문을 꼭 걸어 잠근다. 내리치는 빗속에서 한참을 견뎌야 할 남편 속을 데워 줄 뜨끈한 국물을 권한다. 한 그릇 뚝딱 한 남편의 표정이 한결 편안하다. 


이제 열두시,

안전조끼를 걸치고 형광 모자도 쓰고, 일하다 마실 물들과 커피를 싼 가방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현관문을 열고 집 밖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조심히 일하라 다시 한번 당부한다. 


슈퍼태풍이 몰아쳐도 출근하는 세상의 모든 이들

부디 무사하게 넘어가는 하루가 되시길 간절히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불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