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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하 Jun 30. 2024

대학축제는 지역 간 문화격차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mPW9qKrBQXw

'호남팔루자'라 불린 뉴진스의 5월 27일 조선대학교 공연



  ‘호남팔루자’, ‘부첼라’... 지난 5월, 뉴진스가 지방 소재 대학 축제 무대에 서며 동원한 인파를 세계적 음악 페스티벌에 비유하며 생겨난 밈이다. ‘호남팔루자’는 약 4만 5천 명을 동원한 올해 조선대학교 축제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롤라팔루자에 빗댄 명칭이고, ‘부첼라’는 올해 부산대학교 축제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리는 코첼라에 비유한 명칭이다.




  명칭에 과장이 섞여 있다고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큰 과장도 아니다. 당장 작년 롤라팔루자에서 뉴진스가 약 7만 명의 관중 앞에서 공연을 했고, ‘호남팔루자’라고 불린 올해 조선대 축제에 약 4만 5천 명이 모였으니 대한민국 광주의 한 대학교 축제가 시카고의 유명 음악 페스티벌 관중의 약 65%에 달하는 관중을 동원한 것이다. 유료 공연과 무료 공연으로서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하지만, 적어도 영상으로 무대를 접했을 때 조선대 축제의 관중들이 공짜 공연이니 마실이나 나올 겸 와봤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떼창과 같은 관객 호응은 뉴진스가 선 어느 무대보다도 더 열정적이었다. 오히려 유료임에도 관중들이 호응이 없고, 공연자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코첼라 페스티벌이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다.




  5월 31일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대학생들이 주는 대단한 열기가 있거든요. 그런 열기가 우리 멤버들한테도 굉장히 좋은 영향을 주고, 그리고 이제 저희가 내년에 월드 투어를 계획하고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저희한테는 무대를 많이 연습하게 하는 그 연습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근데 롤라팔루자나 코첼라 같은 무대랑 제일로 흡사한 게 제가 느낄 때는 대학교예요. 대학교에 가면 그 열기가 그 축제할 때랑 굉장히 비슷하거든요.



  한국의 대학 축제 무대가 관객의 열기로 비교했을 때 여느 축제에 비해 꿀리지 않기에 많은 대학 축제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정했고, 추후 월드 투어를 위한 예행연습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무대가 없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뉴진스는 이제 막 데뷔 2년 차를 맞이하지만, 총 3번의 대학 축제 시즌 동안 총 14회 축제 무대에 섰다.



5월 31일 기자회견에서의 민희진 대표



  다만, 이번 5월 말부터 6월 초의 대학 축제 시즌 동안엔 그간 참여하지 않았던 수도권 외, 즉 지방 소재 대학 축제의 비중이 컸다는 점에서 이전의 활동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 이유는 위 발언에 앞선 그의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방에서도 뉴진스를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은데 우리는 아직 콘서트를 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으니까, 콘서트를 못하니까 찾아뵈려면 이런 축제밖에 없는 거예요.



  지방에 거주하는 아이돌 팬, 이른바 ‘지방러’들은 크게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뉴진스와 같은 유명 아이돌은 유명 아이돌대로, 중소 아이돌은 중소 아이돌대로 지방에 오기 힘들다. 콘서트를 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지만, 콘서트를 해도 지방 팬들과 대면하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대구 사람이다. 대구는 자타공인 전국 3위 광역권의 중심 도시다. 그럼에도 문화 인프라 수준을 비교하면, 수도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뿐이다. 이것이 한 분야에 국한된 격차라면 다행이겠지만, 다방면에서 이러한 격차가 발견된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독립서점 수의 격차가,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생활체육 인프라의 격차가 체감될 것이다. 문화/여가 생활에 지출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등 삶에서 문화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는 가운데 지방의 청년 인구 감소와 지방의 문화 인프라 부족은 서로 맞물려 부정적 연쇄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아이돌 팬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기며 관련 분야에 돈을 쓰는 걸 아끼지 않는 집단 중 하나다. 당연하게도 수도권과 지방 간의 문화 인프라 격차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집단이기도 하다. 공연은 물론, 팬미팅 등의 활동, 이외에 팬덤이 주도하는 활동에서조차도 지방은 배제되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티스트의 굿즈를 살 수 있는 팝업 스토어 또한 서울의 번화가 위주로 문을 열고, 팬덤 문화로 자리 잡은 아티스트 생일 카페 또한 대다수가 서울에 위치해 있다. 더불어, 새벽에 촬영하는 경우가 많은 음악 방송 무대를 응원하기 위해선 지방러들은 꼬박 이틀 일정을 비워서 서울로 올라가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교통비와 숙박비 등 원치 않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덤이다.




  지방러들에게는 속상한 일이겠지만, 앞으로도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아이돌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원하지 않는 일박을 하는 지방러들의 일방적인 헌신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방 문화 인프라 부족과 지방의 청년 인구 감소의 부정적 연쇄작용은 그 고리를 끊어내기 힘들뿐더러, 공연 인프라의 개선은 수도권에만 집중적으로 계획되어 있다. 실제로 한국 최초의 다목적 공연 전용 시설인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작년 인천에서 문을 열었다. 아티스트 또한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기에 구태여 지방을 오기보다는 돈을 더 들여서라도 확실한 수익을 보장하는 해외 콘서트를 열고자 할 것이다.






QWER의 5월 22일 경북대학교 공연



  지방 대학 축제가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까? 우리는 아티스트들에게 지방에서 공연을 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지방이 처한 상황을 단기간에 반전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앞서 민희진 대표가 지방 대학에서 열리는 축제를 뉴진스의 지방 팬들을 위한 무대로 활용한 것처럼 지방 대학 축제를 이용하는 것이 일종의 대책이 될 수 있다.




  대학 축제 시즌만 되면, SNS에서는 각 대학 축제의 ‘라인업’으로 시끌시끌해진다. ‘라인업’이란 대학 축제에 섭외된 아티스트들의 목록을 뜻하며, 요즘의 대학 축제들은 이 라인업으로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NS를 통해 공개된 축제의 라인업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돈은 어디다 갖다 쓴 거냐’는 둥 ‘다른 학교랑 너무 비교된다’는 둥 실망 섞인 의견들이 속출한다. 그렇기에 학생회는 가수 섭외에 열을 올리고, 용역 계약부터 가수 섭외 비용까지 필요한 예산은 대폭 늘어난다. 이제는 이 비용이 엄청난 재정적 부담이 되어 축제 개최를 포기하는 학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이러한 추세는 특히 지방 대학들에게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비용 면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들은 지방까지 가는 교통비와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해 서울 소재 대학보다 지방 소재 대학에겐 더 높은 섭외비를 요구하기에 지방 소재 대학의 축제는 애초에 서울 소재 대학의 축제와는 라인업으로 승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더불어, 대학들이 벚꽃 피는 순으로 문을 닫는다는 속설처럼 지방의 대학들은 많은 수가 소멸 위기에 처해있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상황 속에서 대학들이 신입생을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대학보다 지방의 대학들이 더욱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앞서 말한 지방 청년 인구의 감소와 그 맥을 같이 한다. 향후 지방 대학 신입생 수가 줄면, 이는 곧 학생회의 수입원이 줄어든다는 말과 같고, 지방 대학 축제의 부실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지방의 대학들에게 다시 옛날처럼 학생 활동 중심의 축제로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우리에겐 현 상황을 되돌리는 것보다 현 상황을 최대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런 대책이야말로 더욱 현실성 있다. 지자체는 지방 소재 대학들과 협업할 수 있다. 지자체가 용역 비용을 부담하는 등 대학 축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면, 각 대학은 시민들에게 대학 축제의 장을 개방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학교는 대학 축제의 재정적 부담을 덜면서 학생들이 원하는 더 나은 라인업을 선보일 수 있고, 지자체 또한 보다 적은 비용으로 시민들에게 문화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다. 각 지자체가 주민들도 관심 가지지 않는 축제에 수억 원을 쏟아붓는 것보다 대학 축제와의 협업이 유동인구 활성화와 주변 경제 활성화에 더욱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재학생 존과 외부인 존이 나뉜 경희대학교 축제



  공연 관람을 두고 재학생과 시민 간의 갈등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대학 축제에서 외부인과 재학생이 공존하는 모습은 사실 대학 축제의 라인업 열풍 이전까지는 흔한 모습이었고, 현재에도 무대 앞 재학생 관람 구역과 외부인 관람 구역을 나누는 등 재학생과 외부인의 공존을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지자체와 대학의 협의 하에 재학생과 외부인의 차등화 정도는 얼마든지 조정 가능할 것이다.




  더 나아가, 지방 대학과 지자체의 협조는 대학 축제의 안전사고 대처 방식 또한 개선할 수 있다. 우리는 뉴진스를 통해 지방 대학 축제가 얼마나 많은 관중을 동원할 수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몰리면 꽤나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현재는 지역 소방서에서 파견한 현장대응단을 통해 안전사고에 대처한다면, 지자체와 대학이 축제 기획 과정부터 서로 협조할 땐 안전사고가 벌어질 확률이 높은 시간대와 장소를 미리 파악해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고차원의 대응에 나서는 것이 가능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방안이 지역 간 문화 인프라 격차와 지방러들의 설움, 지방 대학 축제의 상대적 부실화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더 근본적이며, 더 본격적이며, 더 방대하고, 더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방안을 쏟아내야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필자의 뇌는 한계가 뚜렷하고, 애초에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은 해결책이 아닌 대처와 미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지자체와 지방 대학이 함께 꾸리는 지방 대학 축제는 이 하 수상한 시절에 우리가 낼 수 있는 즐겁고도 새로운 묘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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