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를 보고는 알고 보면 그리 큰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락카칠을 하고 흉상에 계란을 던지느냐고 이야기하는 반면, 여의도의 시위를 보고는 중한 문제를 가볍게 받아들이고 시위 현장에 놀러 나갔느냐고 묻는다. 사소한 문제를 과하게 생각하여 대응한 것이 문제이고, 과한 문제를 사소하게 생각하여 대응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적정 수준의 문제’와 ‘적정 수준의 대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만인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투쟁의 목표와 수단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들만의 적정 행동주의로는 어떤 시위도 정당화될 수 없다. 모든 시위는 필히 논쟁적이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더라도 모든 시위는 동의하지 않는 자의 통행을 방해하고, 동의하지 않는 자의 귀를 거슬리게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어느 곳보다 정치적 공간에 가까운 여의도에 모여 앉아서 시위를 해도 욕을 먹는 이 시대에 논쟁적이지 않은 시위가 도대체 어디에 있나.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시위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이는 일을 삼간다면, 결과적으로 시위는 폐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방식에 갇히기 쉽다. 철 지난 민중가요나 스피커로 빵빵하게 틀어대며 앉아서 피켓 들며 네 글자 구호만 외치는 시위는 20세기 말을 기억하는 자들의 놀음이 되고나 말 것이다. 더 나아가, 소수 집단은 언제나 극단적 목소리에 지배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폭력 투쟁 노선으로 이어질 것이고, 종국에는 시위 단체는 주류 사회와 고립된 채 괴사할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이러한 시위의 형태는 당연한 흐름이자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방식이다. 케이팝과 응원봉이 함께 하는 시위를 비난한다면, 1968년 서구 사회를 뒤흔들었던 68혁명의 과실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68혁명의 존재 가치는, 목적도, 참가자도 불분명한, 이 괴이한 혁명의 존재 가치는 바로 혁명 수단 그 자체의 혁명, 이른바 ‘메타 혁명’이었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유럽에서 시위란 무겁고, 폭력적이었기에 참가 자체로 굉장히 반사회적인 행위에 가까웠다. 20세기 전반부의 유럽에서 일어난 시위를 생각해 보자. 러시아 혁명, 혼란스러웠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독일 공산당과 나치당의 폭력적 시위, 그리고 공산 정부의 억압에 반기를 든 시민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러나 1968년 이후, 시위는 일상 속에 스며들었다. 폭력 시위는 존재해도 적어도 위와 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준의 시위가 벌어진 적은 없다. 그 저변에는 시위를 일종의 문화 축제로 탈바꿈시켜 대중 친화적인 시위를 만들어낸 68혁명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해외에서의 폭력 시위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정서가 강한 한국에서 탄핵 촉구 집회의 평화적 양상을 비난하는 모습은 상당히 기이하다. 그렇게 싫어하던 폭력 시위의 정반대에 자리한 평화 시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기이한 이중성은 우리 사회의 가치 충돌이 현재진행형임을 반영한다. 68혁명이 ‘짠’ 하고 서구 사회의 전환을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70%의 프랑스 국민이 68혁명이 긍정적 변화를 이루어냈다는데 동의하는, 일종의 컨센서스를 만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한국은 1987년, 또는 1997년 이래 사회문화적 큰 전환점이 존재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곳곳에서 유교적 사회문화에서 벗어난 진통을 겪고 있다. 그 불안한 토대 위에 우리 사회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그러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큰 전환점 없이 변화해가고 있는 한국 사회는 필연적으로 여러 가치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격투장이다. 이러한 가치 충돌은 결국 한국 사회가 현대의 시위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변화한 시위의 형태를 수용해야 한다. 68혁명 이전, 사회적 소수자 또는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침묵해야 했다. 정치적 참여의 장이 열려 있었다면, 투표라는 제한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 방법마저 너무 제한적이고,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조차 많아 초월적 힘을 가진 공권력의 총부리 앞에 그들의 육신을 내던져야 했다. 68혁명 이후, 이러한 고전적 시위의 모습을 버리지 않은 단체는 결국 궤멸되고 말았다. 바스크 지방의 독립을 꿈꾸던 ETA, 서독의 공산화를 지향한 바더 마인호프와 같은 단체들은 테러리즘으로 치달았고, 90년대를 전후로 사실상 그 대가 끊겼다.
우리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소수의 극단화된 폭력과 평화적 시위. 다수에 의한 소수자 억압과 사회적 소수자의 적극적 정치 참여. 모두가 선호해 마다치 않는 사회 안정 측면에서도, 민주주의의 성숙 측면에서도 후자가 더욱 바람직한 길이라는 것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