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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ihnK Sep 13. 2023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7. 잘하면 잘할수록-1

"나는 평생 이렇게 신규 티를 빨리 벗는 선생님은 처음 봤어."


신규 교사 때 처음 만난 교장 선생님께서 3월이 채 지나가기 전에 내게 해 주신 말씀이다. 같은 날 발령을 받은 신규 교사만 그 학교에 4명이었다. 나는 그중 첫 번째로 야근을 경험하고, 첫 번째로 공문을 결재받은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6학년 선생님 두 분이 내 교실을 찾아왔다.


"선생님, 내가 업무가 너무 많아서 그러는데 혹시 선생님이 걸스카우트 업무 맡아주실 수 없으세요? 6학년은 원래 일이 많아서 이런 업무 안 주는데 좀 부당하게 나에게 배정된 것 같아요."


그땐 원래 그렇게 서로 도우며 일하는 것이 미덕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나는 하필 대학 시절 스카우트 지도자 자격을 받아두긴 했었다. 얼떨결에 승낙을 했다. 업무를 받자마자 청소년단체 선서식이 있었고, 인계받은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없던 일을 하게 되기는 했지만 걸스카우트 대원 아이들은 명랑하고 활발하면서도 나의 지도에 잘 따라 주었다. 매주 모임을 갖고 매달 행사를 한 가지씩 해서 보고해야 하는 관계로 일은 자잘하게 계속해서 많았지만 체험활동을 하며 아이들과 래포를 쌓을 수 있어 즐거웠다.




당시 우리 학교는 영어 원어민 교사가 상주하는 학교였다. 영어 거점학교로 지정되면서 영어교실을 첨단으로 구축할 계획이 잡혀있는 상태였고, 그로 인하여 다른 학교에서 영어를 잘하기로 소문난 선생님을 영어전담교사로 초빙까지 해 온 상태였다.


나는 5학년 담임이었고, 영어 수업은 처음이었던지라 전담교사가 있다는 이야기에 아주 기뻤다. 그러나 기쁨도 아주 잠시, 3,4,5,6 학년 담임교사들이 긴급하게 소집되어 회의가 열렸다. 영어전담교사 혼자 모든 반에 수업을 들어가기에는 수업시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딱 두 반만 빠져달라고 하셨다. 옆반 선생님이 영어에 관심이 많았고 원어민과 함께 수업을 해 보고 싶으니 스스로 빠지겠다고 했다.


"그럼 당연히 선생님도 빠져야지."


교장 선생님은 나를 가리켰다.


"저는 영어수업도 안 해봤지만 원어민 활용 수업도 처음인데 부담이 많이 큽니다."


라고 어필해 보았으나, 다른 학년 선생님들 모두 자신은 '영어 공포증'이 있다고 더 강하게 어필했다. 그럼 5학년이 세 반인데 세 반 모두 빠져야 형평성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역시 '나도 영어 절대 못 해.'로 응수했다. 결국 전교에서 딱 두 반이 영어전담 수업이 없는 반이 되었다.


원어민 활용 수업은 첫 시간에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난감하고 긴장되었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원어민교사가 스스로 수업 준비를 잘 해와서 나는 첫 시작만 잘하면 뒷마무리를 그가 했고, 원어민과는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게 되어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나중에 영어 전담 선생님과 사담을 나누다 영어 전담 수업에서 두 반만 빠지게 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건 참 아무리 생각해도 불합리했다고. 그때 영어 전담 선생님이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교장 선생님께서 먼저 두 반이 영어 전담 안 들어와도 된다고 말했다고 해서 안 들어간 건데?"


그래서 어차피 5학년 한 반 영어 수업 준비하는 거나 세 반 준비하는 거나 별 다를 것 없고, 같은 수업 하는 거라 5학년 전체가 빠지는 것이 아니면 자신도 좋을 것 없다고, 도대체 그 두 반은 왜 빠진다고 한 걸까 궁금했었다고. 두 반만 빼자는 것은 전적으로 교장 선생님의 독단이었던 것이다.




여름 방학 직전이었다. 처음 맞는 방학 동안 무엇을 할까 생각 중이었다. 오랜만에 본가에서 쉴 생각을 했다. 엄마 밥을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해서 와야지. 못 만나던 친구들과도 많이 만나야지. 그러나 이내 그런 계획들은 부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캠프 지도교사가 부족한데 선생님이 좀 해주세요."

"저는 신규라 아무것도 모르는데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영어를 잘하잖아."


아무도 내 영어실력 본 적도 없으면서 그리 말하였다.


"제가 영어를 사실 잘 못해요!"

"거짓말하지 말고~"

"다른 신규 선생님들도 저랑 비슷한 실력입니다!"

"그 친구들은 안 돼!! 이번 영어캠프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 아무나 시킬 수는 없어."


내가 '아무나'가 아니라좋기도 하면서도, 도대체 나는 왜 그런 이미지가 되었나,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은 것임에도 슬픈 생각도 들었다. 영어는 임용고사 면접 때도 정말 겨우겨우 통과했는데 자꾸 잘한다고 하니 너무 부담되었다.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서 결국에는 영어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다. 못하는 것이 들통날까 열심히 노력했다. 다행히 같이 참여한 선생님들이 전부 친한 선생님들이어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고, 회의할 때마다 즐거웠다. 캠프가 끝나면 함께 재미있게 놀자고도 했다. 영어 캠프가 끝나고 만족도 조사에서 괜찮은 결과가 나왔다. 참 다행이었다.




가을 운동회가 다가때쯤이었다. 요즘에는 잘 하지 않지만 당시는 단체무용이 아직은 성행할 때였다. 4,5,6학년 여자와 남자로 나누어 각각 공연을 한 가지씩 하기로 했다.


"선생님, 신규이니 이런 단체무용 처음이시죠? 선생님이 한 번 지도해보시면 어떨까요? 당연히 열심히 도와서 힘드시지 않게 하겠습니다."


신규 때 배우지 않으면 또 언제 배우겠는가. '도와주겠다'는 말을 믿었다. 그러니 승낙을 안 할 수 없었다. '독도는 우리 땅' 노래에 맞추어 카드섹션을 하기로 했다. 느 선생님이 다른 학교에서 했던 영상을 너무 멋지며 보여주셨다. 인터넷 게시판에 자료도 다 있다고 메신저로 보내주셨다.


"자료 다 있으니까 편집만 하면 돼."


 그러나 그 학교와 우리 학교 인원 수가 전혀 달랐다. 결국 그 자료를 토대로 카드섹션 지도 계획서를 편집하여 다시 만들어야만 했다.


각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들과 따로 연습시간도 갖기는 했지만 운동장에서 연습할 때에는 내가 주도적으로 지도했다. 지도하는 동안 목소리를 크게 내야 했고, 어느 날은 목이 쉬었다. 마이크를 설치하고 지도했더니 마을에서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왔다. 마이크 없이 생목으로 운동장에서 지도했다. 다른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작았고, 하필 내 목소리 유독 쩌렁쩌렁했다. 결국 거의 혼자 지도하다시피 했다. 운동회 날, 첫 지도 작품치고는 아주 결과가 좋았고 구경 오신 학부모님들도 매우 좋아하셨다. 그것은 힘들었지만 뿌듯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기초 학력 평가가 있었다. 몇 점 미만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특별 관리 대상이었다. 당시 학교 예산에 부진아지도 수당이 책정되어 있었는데 특별 관리 대상인 아이의 학부모에게 동의를 받아서 방과 후 특별 지도를 실시하다.


우리 반 아이 1명과 다른 반 아이 2명이 있었는데 2명이 소속된 반 선생님 너무 바쁘시다 했다. 내가 결국 부진아지도 담당자가 되었다. 주 2회 1시간씩 아이들에게 국어, 수학 교육을 했다. 5학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 받아쓰기, 읽기, 덧셈과 뺄셈 등도 잘 안 되는 아이들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가르친 내용을 바탕으로 일지를 고, 이 일지를 토대로 지도 수당이 지급되었다. 이로 인하여 방과 후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3개월 이상 아이들을 지도했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 반 아이는 언어장애 판정을 받았고, 특수반 소속이 되었다. 특수반 학생에게는 부진아지도가 해당되지 않는다 하였다. 그 아이가 빠지면서 나는 우리 반이 아닌 2명의 아이를 가르치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이 모두 끝난 후, 정확한 액수는 기억이 안 나지만 총 몇 십만 원을 받게 되었다. 바쁘긴 했어도 수당을 받고 나니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그 돈도 꽤 크게 느껴져서 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연구부장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부진아지도 담당 선생님이 3명 있었는데 모두 교실로 모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실 부진아지도가 끝이 났으니 그동안 수고했다는 격려를 해 주는 자리인 줄 알았다.


"부진아 지도 수당 통장에 다 들어왔죠? 그 돈으로 연말회식을 한다고 합니다. 내 계좌번호 알려줄 테니 전부 보내주세요."


말문이 막혔다. 내가 일해서 정당하게 받은 수당인데 회식비로 사용한다니? 그것도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원래 지금까지 계속 그렇 해 왔어요."


부진아 지도 담당교사는 전부 신규교사들뿐이었고, 원래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할 말이 없었다. 결국은 계좌로 돈을 모두 부쳤다. 우리끼리 그 교실을 나오면서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가르친 것이 좀 허망하게 느껴진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은 대충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만약 시작부터 그럴 예정이라고 말해줬어도 부진아지도는 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 반 학생이 포함되어 있고, 그 아이의 학력은 나의 책임이니 부진아지도를 하는 것 자체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다 끝나고 나서 그동안의 일에 대한 대가를 받은 후, 그 돈을 회식 때 먹고 마시는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하다니. 지금도 생각할수록 화가 나기에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주어진 모든 일을 다 잘 처리하는 신규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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