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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ihnK Sep 22. 2023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9. 학교를 옮겨 다니다-1

강원도 초등교사의 학교 만기는 4년이다. 처음에는 '겨우 4년밖에 못 있다니'라고 생각했는데 한 학교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꽉 채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번째 학교에서 2년 차 때 업무 20개의 지옥에서 1년 더 있다간 더 심한 취급을 받겠다 싶어 다른 학교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타학교 내신을 쓸 수 없었던, 이동한 지 1년 미만인 선생님들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전보 내신을 썼다. 당시 교감 선생님이 직접 교실로 전화까지 걸어 학교를 뜰 것을 종용했던 것이다.


"설마 내년에도 이 학교에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 대상은 본인의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었을까. 이동할 계획이 전혀 없었던 어떤 선생님들은 교감 선생님의 저 물음에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학교를 옮기는 것이 꼭 자의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인근의 다른 학교로 전보 발령이 났다. 나는 또다시 이곳에서 5학년 담임이 되었는데 전교에서 유일하게 우리 학년만 새로 전보받아온 선생님들로만 구성되었다.


'데자뷔?'


적어도 부장교사라도 기존 근무자가 담당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5학년은 전부 세 반이었는데 세 명의 담임이 모두 학교 사정을 전혀 모르기에 매 순간 당황스럽고 어려움이 많았다. 첫날에는 체육관 위치나 급식소 위치도 아무도 몰랐다. 그것은 2년 전의 상황과 아주 꼭 닮아 있었다.


특히 학년 부장 선생님이 다른 교육청에서 음주운전에 걸려 좌천되어 온 것 까지도.




업무로는 학생자치회와 돌봄 교실을 맡았다.


학생 자치회 업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매주 학급 회의를 열어서 학급에서 모아진 의견을 가지고, 매주 목요일 전교회의를 하였다. 소소하게 고학년 아이들이기에 몇 가지 반항 섞인(?) 트러블은 있었지만 점점 정착하여 나중에는 훌륭하게 잘 진행되었다. 전교 회의 결과는 방송조회 시간에 전교 회장이 전교생 앞에서 발표를 했다.


그러나 돌봄 교실 업무는 참 많았다. 일반 초등 돌봄 교실 종일 돌봄 교실이 있었는데(명칭은 기억에 의존하므로 틀렸을 수 있다) 방과 후 시간부터 진행되는 초등 돌봄 교실은 일반적으로 모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방식이 같았기 때문에 이전 학년도 자료와 타 학교 자료들을 보다 보면 쉽게 파악이 되었다.


종일 돌봄 교실은 당시에 신설된 것이었는데 이는 밤 9시까지 운영하는 돌봄 교실이었다. 다른 학교에서는 하지 않는 것이라 지인의 도움도 얻을 수 없었다.


일단은 강사 채용부터가 난관이었다. 시골에 위치한 학교이다 보니 강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젊은 인재들도 없고, 자격을 갖춘 이들도 없었다. 강사비가 교육청에서 이미 정해져서 내려왔는데 한 달 월급으로 환산하니 그리 많지 않아 저녁 시간을 할애하여 일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의 금액이었다. 내 맘대로 시급을 올려 지급할 수는 없었으므로 담당 장학사의 확답을 받기 위해 교육청을 찾아가 직접 협의해야 했다. 시급을 올려 공고를 올리니 지원자가 생겨서 채용을 겨우 할 수 있었다.


강사는 채용되었지만 매일 저녁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는 것도 문제였다. 저녁 시간에는 조리사도 없어 외부에서 음식을 주문하여 먹어야 했는데 시골 작은 동네에 그런 업체가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온 동네를 퇴근 후에 직접 샅샅이 돌면서 식당마다 문의했다. 식당의 메뉴와 상관없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들로 백반을 구성해서 매일 배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다들 거절했는데 딱 한 군데 기사식당에서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 식당은 사장님 내외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아이들을 위해 그릇도 새로 구매하셔서 보내주셨다. 돈가스나 볶음밥, 콩나물국, 생선구이 등 평소 기사식당 메뉴가 아닌 것들도 보내주셨고, 양도 넉넉히 보내주셔서 남는 밥은 야근하는 선생님들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감동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야근이었기에 돌봄 교실 아이들과 함께 저녁도 먹고 같이 놀기도 하면서 밤 9시에 학교 문을 닫고 퇴근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시골이라 물품 구입 요청을 해도 잘 이루어지지 않아 대부분의 물건은 직접 사 와서 영수증 처리했다. 퇴근 후 업체에 들려 법인카드로 구매하고, 영수증을 종이에 붙여 품의요구서와 함께 정리한 후 행정실에 제출했다. 간식 구매도 강사 선생님과 직접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아야 했다. 식대는 월별로 정리해서 월말마다 카드결제를 모아서 하고 왔다. 그러다 보니 방과 후 시간에는 대부분 물품 구매와 영수증 처리에 시간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시설비 포함 예산이 총 1억이 넘었는데 이것을 다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무리 펑펑 써도 돈이 남아서 교실 2개를 더 리모델링하고, 가전제품을 계속 구입하고, 방과 후 수업 강사도 따로 채용해서 수업도 했다. 아이들 데리고 주말을 이용해서 대회도 출전하고, 돌봄 교실과 딱히 관련이 없는 일에도 어떻게든 관련성을 지어내서 예산을 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산을 쓰기가 힘들었다. 당해연도 돌봄 교실 신청자는 단 5명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첫인상이 좋았다. 그러나 들은 바에 의하면 학부모들이 민원 넣기를 습관적으로 하는 듯했다. 4학년 때는 담임교사를 바꿔달라고 피켓시위(?) 비슷한 것도 했다고 했다.


'그 선생님이 이상한 분이었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처음 교실을 배정받고 교실에 가 보았는데 장식장의 유리가 전부 깨져있고, 선풍기 날개도 4개 중 3개가 부러져있었다. 그리고 그 잔해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개학 전부터 깨진 유리들과 다양한 쓰레기들을 치우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3월 시작부터 어느 학부모에게


"선생님 왜 일기를 안 써요? 일기가 얼마나 중요한데."


라는 항의를 받았다.


5월에는 모범 어린이상을 어떤 아이에게 시상을 했더니


"선생님, 그 엄마한테 뇌물 받았어요?"


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교실의 선풍기가 고장이 나 있어서 행정실에 수리 요청을 해 둔 상태에서 선풍기 4대 중 2대만 켜준 적이 잠시 있었다. 그때는 교장실로 호출되었다.


"애들이 덥다는데 선풍기를 틀어줄 수 없다고 하셨다면서요? 참으라고 했다던데? 애들한테 선풍기를 왜 안 틀어 줘! 그럼 안 돼!"


며 자초지도 듣지 않고 화를 내셨다. 돌봄 교실 업무 때문에 교장 선생님과는 계속 우호적인 관계로 일했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장면이었다. 특히나 우리반 선풍기는 내가 직접 떼어내어 5월 초입부터 먼지를 전부 씻어놨었다. 행정실에서 일을 차일피일 미루고 고쳐주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은 교사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날 알게 되었다.


여름 방학 직전쯤에는 우리 반 아이가 복도에서 넘어져서 입술 안 쪽을 다쳤는데 보건교사가 심각한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며 학부모가 교장실로 찾아갔다. 교장 선생님은 보건 선생님에게 '무릎 꿇고 사과드리라.'라고 했다. 나는 볼일이 있어 교장실 앞을 지나다가 그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것은 학부모의 요구도 아니었다.


그래도 학부모민원은 점점 줄어 2학기에는 조금 편안했다. 자세한 대처 내용은 적지 않으려 한다. 그저 내가 대처를 잘 했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바로 옆 반에는 분노 조절이 어려운 남학생이 한 명 있었다. 체육 시간 도중 축구를 하다 다리에 공을 맞았는데 공을 찬 아이에게 주먹질을 하기도 하고, 말리는 체육 선생님에게 욕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말릴 새도 없이 교문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부장 선생님은 좋은 분이기는 하셨지만 타 지역 교육청에서 음주운전으로 인하여 우리 지역 교육청으로 좌천되어 온 분이었다.


교감 선생님은 나와 교무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미안하다, 내가 진짜 미안해. 다른 선생님 말을 듣는 게 아닌데, 그렇게 반을 주면 안 되는데."


라고 계속 말을 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항상 답했지만 "괜찮을 리가 없. 진짜 진짜 미안해."라고 하셨다. 나도 속마음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이 학교도 다르지 않구나.'


결국 기피학부모, 기피학생들이 몰려있는 5학년에 학교에 대해 정보가 없는 새로 온 교사들에서 담임을 주면서 업무까지도 가장 기피하는 업무들을 주는 것이다. 어느 한 학교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구나. 모든 학교가 그렇구나 느꼈다. 이것은 악습 중의 최고의 악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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