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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ihnK Dec 17. 2023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10. 학교를 옮겨 다니다-2

두 번째 학교는 1년만 재직하고 안녕을 고했다. 일이 많아서 힘들기도 했고, 학교 규모가 작아서 힘든 건가 싶어서 도시의 큰 학교에 가서 일하고 싶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지역 이동이 가능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나의 세 번째 학교는 '나의 최악의 학교'가 되었다.




나와 함께 그 학교에 새로이 발령받게 된 선생님들은 꽤 많았다. 연차와 나이가 비슷한 이들이 많았고, 학급 수도 상당히 많아서 여기저기 골고루 배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 내심 편안한 업무와 학년을 기대했다.


새로 옮겨왔기에 나는 결정 과정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학년부장님도 다른 학교에서 새로 오신 분, 나머지 모두 새로 들어온 4년 차들로 채워진 6학년 담임이 되었다. 업무는 다른 것은 기억이 나지 않고 '방송'을 담당했던 것은 기억이 난다.


한 학급당 학생수가 36명으로 포화상태였다. 몆  명만 더 있었어도 한 학급이 더 생기는 것인데 경계선에 있었다. 아이들을 맞이하기 전 상 배치를 하는데 교실이 가득 찼다. 그러나 개학을 하면서 몇 명 전학생들이 오면서 학급은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 어떤 날에는 38명까지 늘었다.


6학년(몸집은 거의 성인과 비슷한) 36명이 함께 생활하는 교실은 항상 후끈후끈했다. 체육 수업이 끝나면 땀냄새가 폭발했고, 아이들 책상 틈 사이사이로 걷는 것도 매우 힘겨웠다. 활동지나 안내장 복사량도 어마어마했다. 모둠 활동을 하려면 6명씩 6모둠, 4명씩이면 9모둠이나 되었다. 출석 부르는 것도 한참씩 걸리고, 성적 입력할 때에는 한참을 입력하고 또 입력해도 반 정도 겨우 입력했을까 말까 했다. 교실 이동을 할 때 줄을 서려면 한 줄로는 너무 길어 두 줄로 섰는데 양쪽으로 지나가려면 복도가 미어터졌다.


도시의 학교가 아무리 규모가 있더라도 이렇게나 빈자리가 많았다는 것은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흡연, 절도, 상납, 폭행, 무단결과, 따돌림 등등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비행이란 비행은 한꺼번에 다 했고, 잊을만하면 한번씩 근처 파출소에서 공문이 내려와 아이들을 조사할 정도로 말썽이 많은 학년이었다. 어느 날에는 공용화장실에 대문짝만 한 낙서도 되어있었고, 어느 날에는 출입문에 나 있는 작은 창이 부서져있고, 학교 트로피를 전시해 놓은 유리장도 깨져있었다. 출근길에 '미친년'이라고 칠판 한가득 크게 적힌 욕도 읽어보고, 교장실 창문을 타 넘어 들어가 물건을 훔치거나, 아무도 없는 컴퓨터실 열쇠를 훔쳐 몰래 컴퓨터를 하던 아이도 있었다. 책상 위에 간식을 올려두고 외출했다 돌아오면 항상 그 간식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청소도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러지고 망가져서 학기 초에는 많았던 빗자루가 학기말에는 한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전담 시간은 고학년 담임에게 주어지는 아주 꿀 같은 시간이었는데, 머지않아 전담 시간마저도 휴식 조차 할 수 없는 매일이 반복되었다. 전담 수업만 보내 놓으면 아이들이 자꾸 사라졌다고 하는 연락을 받기 일쑤였고, 찾으러 다니느라 바빴다. 교실을 못 나가도록 복도에서 감시했더니 교실 안에서 거의 '교실 붕괴' 수준의 일들이 일어났다. 수업 도중 교사의 말을 끊거나, 일어났다 앉는 놀이를 하거나, 뒤돌아 앉거나 엎드려있는 등 가관이었다. 나중에는 전담 수업 시간에도 담임교사가 따라와서 뛰어 있어달라는 부탁까지 들어왔고, 그러는 와중에도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그런 일들을 처리하는 데에 시간이 소비되었다. 문제가 많은 아이들이었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 아이들의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하려 하면 부모님들은 낮 시간에는 전화 통화가 어려웠고, 당사자인 아이들은 방과 후에는 방과후학교 수업을 들어야 하거나 학원을 가는 등의 또 다른 일정이 있으므로 남겨서 상담할 시간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 틈틈이 상담을 하겠노라 노력하다 보니 점심시간, 쉬는 시간도 다 쓰고도 모자랐다. 어떤 날은 점심을 못 먹기도 했다.



 어느 날, 교장선생님께 넌지시 우리 학년의 심각한 문제들과 그 아이들 이야기를 고민 상담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나를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답변도 친절히 해 주셨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씀드렸다.


"학교폭력위원회 같은 것을 열어 절차대로 처리하면 안 될까요? 담임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여러 학년, 여러 학급의 학생들이 얽혀 있기도 하고, 한 두 차례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선생님, 학폭위라는 것이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만큼 쉬운 것이 아니에요. 그런 일로 여는 것이 아닙니다."


"물건을 지속적으로 훔치고, 후배에게 돈을 갈취하여 중학생에게 상납을 하는데도요?"


"네. 그런 일로는 여는 것이 아니에요. 선생님이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해결을 못하는 것이지."


당시에는 학폭위라는 것이 처음 생겨서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지금은 학교폭력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개최하지만)


너무나도 힘든 날이 이어지고 있을 때, 전체 회의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담임 배치를 잘못하여 능력이 부족한 선생님들이 6학년을 맡다 보니 아이들의 문제가 심해지고 있다.', '내년에는 6학년 담임을 심사숙고해서 배치하고, 성과급도 S를 주겠다.'


나는 그 해의 성과급을 B등급을 받았다. 그리고 그다음 해부터는 학교폭력위원회가 수시로 열리고, 또 열렸다. 어떤 학폭위 사안은 '친구와의 말다툼 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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