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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ihnK Feb 13. 2024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14. 학부모 상담이라는 비극-2

여름 방학을 목전에 두고, 더운 여름날이었다. 나는 1학년 담임이었고, 끝반이었다. 다른 반 담임 선생님들은 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 선생님들이셨다.


어느 날, 병설 유치원에서 물놀이장을 대여하였는데 1학년도 이용을 원한다면 해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금요일을 이용해서 물놀이 안전 교육을 연계하여 아이들과 신나는 물놀이를 할 계획을 세웠다.


그날은 등교 후 수영복으로 갈아입어야 했기에 두 반씩 남학생과 여학생을 나누어 교실을 사용했다. 물놀이 시간은 너무나도 신이 났다. 하루 일정이 금방 갔고, 다시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은 모두 하교했다. 교실에는 주인을 찾다 찾다 못 찾은 옷지와 수영복이 몇 벌 있었다. 사진을 찍어 알림장에 주인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평소보다 신경도 많이 쓰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다 보니 체력이 고갈되었다. 그날은 금요일이라 다 함께 조퇴를 하기로 했다. 조퇴 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와중에 한 학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나 분실된 옷 때문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으로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네~ ㅇㅇ어머님. 어쩐 일이세요?"


"아니, 선생님 지금 웃음이 나와요?"


보통이라면, 아마 말문이 막혀 대답도 못했을 상황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호의적으로 전화통화를 했던 학부모였다.


나는 웃음기를 싹 감추고.


"아, 어머님 웃으면 안 되는 어떤 일이 생기신 걸까요?"


"우리 애가 지금 옷을 안 입고 하교를 했다는데 선생님은 웃음이 나오시겠어요? 다 큰 딸이 옷을 벗고 돌아다녔다는데!!"


황당했다. 상황 설명도 없이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고 면박을 주다니. 황당 그 자체다. 게다가 그 어떤 아이가 옷을 안 입고 집까지 갈 수 있을까.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옷을 안 입었다는 것은 무슨 말씀이실까요? 옷을 아무것도 안 입고 아이가 집에 왔다는 뜻이세요?"


"방금 애 아빠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직장에 있는 저한테 전화해서 학교에 따지라고 하네요. 어떻게 옷을 안 입혀서 보내냐고요."


나는 남학생들 담당이었기에 여학생들이 하교하는 모습을 일일이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복도에서 지나가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계속 서 있었다. 옷을 안 입고 지나간 아이가 있을 리가 없다.


"이 시간에 하교를 했다면 아이가 혹시 어디 들렀다 집에 간 걸까요?"


"피아노 학원 수업이 있어서 끝나고 집에 오면 이 시간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아마도 어머님, 진정하시고 생각해 보시면 피아노 학원에 아이가 옷을 안 입고 왔다면 학원 선생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시고 벌써 연락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정말 옷을 안 입은 것일까요? 그 점을 다시 아버님과 찬찬히 통화하시면서 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일단은 제가 남학생 담당이었기 때문에 여학생 담당하신 선생님께서 ㅇㅇ이를 기억하시는지 여쭤보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복도에서 아이들과 인사를 전부 나누었는데 옷을 안 입고 가는 아이가 있었다면 모를 리가 없어요. 그리고 친구들이 옷을 안 입은 친구가 걸어가는데 아무 말 안 할리도 없지 않겠어요?"


"그건 그래요."


"근데 교실에 주인 없는 회색 반팔 티셔츠가 하나 남아있기는 한데 그 옷이 ㅇㅇ이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는 데 맞을까요?"


"네, 맞아요."


학부모의 말투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무턱대고 화내며 따지듯 전화했다가 갑자기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의 반응이다. 사실 그 어머님은 아이의 하교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이 아버님이 집에 있다가 하교하는 아이를 보고 화를 낸 것이다.


여학생을 담당하셨던 옆반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상황을 설명하며 "혹시 저희 반 ㅇㅇ이라는 아이를 기억하실까요?"라고 여쭈었다.


"ㅇㅇ이?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요."


"정말이세요?"


"옷 다 갈아입은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면서 인사를 나누려는데 어떤 아이가 카디건 같은 옷만 입고 있었는데 목이 너무 심하게 패인 거야. 그래서 '공주님~ 목이 너무 추운데 이렇게 입는 옷이 맞아요?' 했더니 엄마가 그렇게 입고 오라고 했다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몇 번을 물어봐도 그러길래 알았다고 하고 보냈어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옷이 떠올랐다. 휴양지에서 입을 법한 로브 카디건이었는데 카라 없이 브이넥으로 파였고, 단추를 잠그는 스타일의 옷이다.


'아아... 그 옷.'


정황을 파악하고 다시 아이 어머님께 전화드렸다. 남편과 통화를 한 후 그 학부모님의 목소리가 많이 라앉아 있었다.


"... 제가 물놀이하고 나면 추우니까 로브 카디건을 입고 오라고 했거든요. 근데 아이가 그것만 입는 것인 줄 착각한 것 같아요."


"아, 그래도 옷을 완전히 안 입은 상황이 아니라고 하니 마음이 놓입니다. 피아노 학원만 들렸으니 부끄러울 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버님께서 화 내신 이유도 이해가 갑니다. 아버님께서 상황을 잘 이해하시고 노여움을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다른 것보다 ㅇㅇ이가 하교하자마자 아빠한테 혼이 나서 많이 놀랐을 것 같아요. 평소에도 눈물이 많은 아이인데 어머님께서 그것이 ㅇㅇ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잘 설명해 주시고, 카디건 안에는 꼭 티셔츠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이 기회에 한 번 교육시켜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네."


"어머님! ㅇㅇ이 일에 화내시고, 마음 쓰시는 것 당연히 이해를 하는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담임교사에게 어떤 민원전화를 하실 때에는 화가 나신 상태에서 곧바로 전화하시기보다는 앞뒤 정황을 자세히 살피고, 아이와도 충분히 이야기 나눈 뒤에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전화하시면 더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언제든 궁금하신 점 편안하게 연락주세요.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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