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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ihnK Feb 22. 2024

비전공자의 수채화 작가 되기

화실을 다니던 추억

성인이 되어서 미술경험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교대 재학시절에 필수 과목 이수를 위해서라도 그림을 그렸고, 초등교사로 재직하면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다양한 미술 교육을 시도하면서 어떻게 보면 예술활동을 조금씩 계속 이어갔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화실의 저녁반 수업은 몇 달간 이어졌다.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제시하는 주제를 완수하며 학생처럼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 점차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해 가며 나만의 작품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수채화 작품 두 점을 완성하고는 이내 저녁반 수업이 완전히 종결됐다.


선생님께서 더 이상은 저녁에 수업을 할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배웠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같이 수강하던 친한 언니는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서 이래저래 시간이 흘러갔다. 화실의 소식은 네이버 밴드를 통해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 사이 난 결혼을 했고, 남편이 개업한 일이 점점 정착되어 갔다. 그동안 너무나도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나는 '자율 연수 휴직'이라는 것을 선택했다. 경력 10년 이상의 교원에게 주어지는 '무급' 휴직이었다. 추후에 아이를 출산하여 육아휴직을 할 계획도 있었지만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휴직을 하는 것은 절대로 '휴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 때문이었다.


자율 연수 휴직을 허가받고 나서 곧 '임신'을 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임신한 상태에서의 휴직이 시작되었다. 휴직을 하면 무엇을 할까?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경험들을 하기로 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플라워 스타일링' 수업이 있어서 듣기로 했다. 재료비가 직접 사는 것에 비해 저렴했고, 매주 집에 꽃을 들고 올 수 있어 힐링이 되었다. 다양한 원데이 클래스도 찾아가 보았다. 요리도 배워보고, 캔들도 만들어보고.


그리고 다니던 화실을 다시 찾아가 보았다.


깜깜한 저녁에만 찾던 그곳을 낮에 갔더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아주 오래된 아파트 단지 내의 낡은 단층 상가였던 그곳은 나무가 우거져서 싱그러운 느낌이 났다. 낮에 수강하는 분들은 대부분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운 4,50대 주부들이다. 전업주부, 직장인, 자영업자. 다양한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모여 있었다. 평일 낮 시간에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낼 수 있는 분들이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그 분위기가 너무 흥미로웠다.

평일 낮에도 직장이 아닌 곳에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낮 시간에 일하는 것은 아니구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내 나이 서른넷. 새삼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일종의 '태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보다 좀 더 멋진 작품을 위하여 신중해지기로 했다. 나는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고래'를 주제를 잡고, 스케치를 하나하나 신중하게 했다. 처음으로 값비싼 '아르쉬' 종이도 이용해 보았다. 스케치하기 전 에스키스도 여러 번 그렸다.


왜 고래가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신비로운 생물이고, 전부터 고래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뚜렷한 선택의 이유는 없었고 우연히 여러 작품들을 찾아보다 보니 눈에 들어왔다.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신비로운 생명체였다. 물속에서 살지만 물고기가 아닌 생물. 그 특별함이 좋았다. 나는 고래 한 마리를 표현하기 위해 수백 마리의 고래 사진과 그림들을 살폈고, 인쇄해서 자세히 보고, 연습장에 반복해서 그려 보았다.


고래가 바닷속에서 헤엄을 치는 듯하지만 곳은 꽃이 잔뜩 피어있는 꽃밭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래가 물속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세상을 날아다니는 것이다. 그저 태어날 아이가 아름다운 것들 사이에서 좋은 꿈만 꾸며 살기를 바랐고, 그것이 그림이 되었다.

이 그림은 5달에 걸쳐 천천히 그렸다. 무슨 그림을 그리 오래 그리느냐 하겠지만 신중하게 그리다 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색 하나하나 미리 칠하고 말려본 후 채색했다. 게다가 예전 같으면 '이 정도면 끝'이라는 생각을 가졌었다면 이 그림은 정말 완벽할 때까지 계속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 전 칠한 물감 자국을 일주일 후 다시 보면 색감이 부족하고 깊이가 부족하게 느껴져서 또 덧칠하고 또 덧칠다. 지저분한 부분은 지워내기도 하고, 다시 그리기도 했다.


이 그림은 출산 직전까지 계속 그렸다. 출산을 앞두고 겨우겨우 완성을 했고 드디어 서명까지 날인했다. 그것으로 두번째 화실 수업도 종결되었다.


그림의 제목은 '꿈꾸는 고래'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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