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상대가 온전하고 단단해 보여서 또는 그 역시 나약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지금 나의 힘듦을 견디지 못하고 의지하고자 갈고리를 들이민다.
그러나 인간은 다 나약하다. 그저 자신이 가진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단단해 보이고 위태로워 보이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각자 자기가 가진 고민이 다른 누구의 고민보다 크고 무겁게 느껴질 뿐 절대적인 고민의 무게란 있을 수 없다.
예를들어 결혼하지 않아 외로운 사람에게 아이와 가정이 있는 사람의 힘듦이 온전함의 조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정을 지켜나가기 위해 그 구성원 간에 매일 전쟁처럼 일어나는 공격과 방어, 타협과 이해의 과정은 온전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다.
인생의 황혼기를 사는 세대에겐 애 키우며 힘들다는 지금의 부모들의 푸념이 한심하다. 먹느냐 사느냐 굶느냐 죽느냐를 고민하느라 자식이 얼마나 예쁜지도 모르고 산 세월이었기에, 지금처럼 여가 문화와 배달이 발달한 편의의 시대를 힘들다고 하는 것이 영 탐탁치 않다. 그러나 집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즐기느냐가 부의 척도처럼 돼 버린 이 시대에서 여가와 배달은 가끔 손발을 쉬게하는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하며, 그로 인해 파생되어 감당해야 되는 또다른 일거리들은 다시 손발을 재게 움직이게 할 뿐이다.
한 푼이 아쉬운 집은 저집의 경제력이 온전해 보이고, 가족 간 다정함이 결여 된 집은 저집의 화목이 온전해 보인다. 그것만 있으면 나도 저들처럼 단단하게 살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건 정말 착각이다. 자신의 결핍에 중점을 두는 사람은 그것에 채워져도 또다른 결핍에 흔들린다. 완벽한 삶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각자 하루 안에
희노애락애오욕을 느끼며, 각자의 삶을 살 뿐이다. 자신의 기준에서 좀더 안전하고 완전해 보인다고 의지의
갈고리를 걸고 또 건다면 온전하던 그 존재도 부숴지기 마련이고, 그 관계는 다시 원래로 돌아가기 어려워진다.
힘들 때는 갈고리를 걸어 의지하지 말고,
온전함이 주는 삶의 태도와 묵직함을 배우려고 하는 것이 결핍에서 벗어나는 보다 현명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