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딜레탕트 Mar 19. 2022

<스펜서>
네가 알던 다이애나가 아니야

<스펜서> 영화 리뷰

실제 인물이나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작품의 완성도나 내용과는 별개로 작품의 소재가 되는 인물이나 사건을 얼마나 유사하게, 또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지를 가지고 평가되곤 한다.


대중 매체를 통해 공개되는 대부분의 '실화 기반'의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만들어진다. 작가만의 자전전인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봤자 그 이야기를 모른 채 받아들이는 대중은 다른 작품들과의 차이점을 체감하기 어렵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만이 주는 묵직한 울림 같은 것들이 있지만, 청자의 입장에서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는 점에서 조금 놀랄 뿐, '모티브'정도의 요소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을 작품으로 끌고 와 그 이야기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중성'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라는 것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보편성'이다. 


당연히 이 '대중성'은 대중 예술을 창작함에 있어 굉장한 이점으로 작용한다. 작가가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관객은 이미 이야기에 대한 전체적인 정보와 기승전결, 심지어는 그 사건과 인물에 대한 배경지식까지 찾아보고 작품을 소비하고는 한다. 이미 아는 이야기, 이미 아는 사람이기에 이야기와 인물에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마치 그때의 사건, 그 사람이 되어 작품을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즉, 관객이 작품에 몰입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실화' 기반의 작품들이 갖는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경쟁력은 동시에 작품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가장 큰 족쇄로도 작용한다. 모두가 아는 그 이야기에 창작자가 개입하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마치 역사를 왜곡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기에, 창작자는 가능한 '사실'에 입각해 실제 있었던 사건과 인물을 가능한 동일하게 '재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 아무리 유능한 작가나 연출가라고 하더라도 '실화'를 주제로 '좋은' 작품을 만들기란 결코 쉽지 않다.


서론이 길었다. <스펜서>는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스펜서>는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잘 '재현'해낸 영화는 결코 아니지만, 그간 그녀를 묘사했던 작품들 중 가장 흥미롭고 독창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실화 기반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족쇄를 보란 듯 부수고, 일반적인 실화 기반의 이야기의 이런저런 것들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통렬한 한방을 먹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떠나 하나의 영화로서 연출, 각본/각색, 음악, 미술까지, 정말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아래 글에는 <스펜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펜서> 포스터 (출처:IMDB)


<우리가 아는 다이애나>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에 대한 비극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영국 왕실의 '찰스 왕세자'와 화려하게 결혼했지만 불행한 결혼 생활로 끝내 이혼했으며, 비극적인 사고로 삶을 마감한 비극의 주인공. 그녀가 사망한 지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녀는 아직까지 영국 왕실과 언론의 피해자이자 영국인들의 상처로서 회자되곤 한다.


워낙에 영화보다 영화 같은 삶이었기 때문에 많은 대중매체에서 그녀의 인생을 다뤘을 것 같지만, 다이애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역사적 사건의 파편으로서 다양한 작품들 속에 등장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 시즌4(2020)가 처음이다. 그마저도 시리즈의 주인공은 언제나 여왕 '엘리자베스'였기에 그녀의 존재감과는 관계없이 조연으로서 다뤄진다. 


따라서 하나의 작품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이번 <스펜서>가 처음이다. 


뒤에 서술하겠지만, 다이애나의 이혼과 사망은 영국의 입헌 군주제도 자체를 흔들었던 사건이기에 영국 황실은 다이애나가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존재 자체를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 단계부터 영국 왕가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고, 그렇기에 그녀의 삶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스펜서> 스틸 이미지 (출처:IMDB)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는 평범한 비극>

<스펜서>가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요소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다이애나'의 비극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야기임에도 그 비극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는 그녀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결혼'이나 '이혼'의 순간, 혹은 '사망' 전후의 시점이 아닌, 크리스마스 명절 3일 동안의 다이애나를 그려낸다.  


그래서 위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다이애나의 비극이나 죽음은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남편인 '찰스 왕세자'의 외도가 다이애나를 힘들게 했다는 것이 몇 번 언급되기는 하지만, 외도를 알게 된 순간이라든지, 뻔뻔하게 외도를 인정하고 다이애나를 깔보는 '찰스'의 태도라든지 하는 자극적이지만, 관객이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기대했던 장면들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영국 왕실이 다이애나의 불행과 찰스의 외도를 숨기고, 축소하려 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고부갈등이나 왕실과의 갈등 따위의 것들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내내 왕실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심드렁하고 무표정한 얼굴의 방관자로 등장하지만, 그녀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왕가의 얼굴이자 상징인 '엘리자베스' 여왕은 힘들어하는 다이애나를 질책하지 않고 심심한 위로를 건네기까지 한다. (물론 건네는 위로에서 진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삶을 영화화함에 있어 '다이애나'를 피해자로, 영국 왕실을 '가해자'로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자, 분명 편리한 선택이었을 텐데, 영화는 이러한 예상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영화 속 '다이애나'의 숨통을 죄여 오는 것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손쓸 도리가 없는 '역사'와 '과거'의 유령이므로, <스펜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으로 양분되는 일반적인 비극이나 사고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거대한 전통과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재난 영화이자 생존 영화에 가깝다.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재난이 주는 무시무시한 공포와 무력함. 이로 인해 서서히 사라져 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 <스펜서>는 '다이애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다이애나'만의 이야기에 대한 영화가 아니기에 특별하다. 


<스펜서> 스틸 이미지 (출처:IMDB)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여자의 이야기>

영화에서 다이애나가 뱉는 첫 대사 "여기가 어디죠?"는 그녀의 현실을 정확하게 나타낸다. 다이애나는 온 국민이 다 아는 왕실의 일원이지만 정작 자신은 정확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어디에 속해있는지 알지 못한다. 왕실의 행사가 열릴 때마다 매번 지각하며 뒤쳐지며, 왕가의 가족들 뿐 아니라, 왕가에서 일하는 집사, 청소부, 요리사들까지 수군거릴 정도로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영화 초반 다이애나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건 '눈'이다. 왕가의 바깥에서는 그녀의 삶을 궁금해하는 파파라치가 곳곳에 있으며, 왕가의 안에서는 그런 그녀를 '보호'해주겠다는 핑계로 그녀의 말과 행동을 주시하는 눈과 귀들로 가득하다. 그래일까. 다이애나는 영화 내내 신경질적인 목소리톤으로 날이 서있는 말들을 뱉어낸다.


왕가의 안과 밖의 눈 중에서 실제로 그녀의 삶을 직접적으로 망가트리고 있는 것은 왕실 안에서의 눈이며, 이 눈은 특정 인물의 지시나 음모가 아니라, '전통'과 '역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유령'의 눈, 더 구체적으로는 '앤 불린'의 유령이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한 것처럼, '헨리 8세'의 부인이었던 '앤 불린'은 남편인 헨리 8세가 외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비운의 왕비라는 점에서, 다이애나와 겹쳐진다. 누군가 다이애나의 침실에 놓아둔 앤 불린의 전기 때문에 그녀는 크리스마스 내내 앤 불린의 환영에 시달린다.


아들과의 역할놀이에서 다이애나는 왕가의 삶 속에서 미래는 없다고 말한다. '과거'와 '현재' 두 가지만 있으며, 그마저도 '과거'가 '현실'을 집어삼켰다고 말한다. 즉, '과거'의 '앤 불린'이 곧 '현재'의 자신이며, 결혼 전 '다이애나 스펜서'로서의 자신은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문제는 다이애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앤 불린'의 과거만이 아니라, '다이애나 스펜서'로서의 과거가 그녀를 붙잡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스펜서> 스틸 이미지 (출처:IMDB)


<돌아갈 수 없는 스펜서로서의 삶>

영화 내내 다이애나는 어린 시절 집 근처에 허수아비가 입고 있던 '아버지의 옷'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스펜서 가문의 집'에 집착한다. 이미 헤지고 망가져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왕세자비이자 한 남자의 아내와 엄마로서 너무나 불행한 현실이기에 다이애나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한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 그토록 가고 싶던 스펜서 폐가에서 '스펜서'로서의 과거 또한 자신에게 위안을 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쾌활하고 따듯한 활력 넘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과거는 기억의 파편만 남은 유령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옷과 집이 헤지거나 무너져가는 것처럼 그녀가 갈망하는 과거 또한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엔 현실의 '다이애나 스펜서'와 같다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과거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것을 알게 되자 다이애나는 좌절하며, 삶을 스스로 마감하려고 한다. 죽음의 발치에서 그녀를 구원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앤 불린'의 유령이었다. 앤 불린 은 자신이 다이애나에게 과거의 족쇄를 끊고 달아나라고 말하며, 다이애나는 자신을 옥죄오던 '진주 목걸이'를 끊어내며,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


<스펜서> 스틸 이미지 (출처:IMDB)


<미래로 나아가는 스펜서로서의 삶>

과거의 족쇄를 끊어낸 다이애나는 아버지의 옷을 고쳐 입은 채, 허수아비에는 다이애나의 어릴 적 옷을 새로이 입혀주고는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와 함께 지옥 같았던 3일을 뒤로한 채 왕가의 별장을 떠난다.


왕가의 별장 바로 옆에 자신의 생가가 있기에, 다이애나는 왕세자비로서의 과거와, 스펜서로의 과거를 떠나는 것과 같다. 영화 마지막 패스트푸드를 주문하며, 이름을 묻는 직원에게 '스펜서'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녀는 왕세자비나 스펜서 가문의 일원이 아닌 그저 한 명의 '다이애나 스펜서'로 대답한다.


다이애나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도움을 주는 인물인 '매기' 또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매기'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다이애나' 뿐이며, 영화는 단 둘이 등장하는 장면만 보여주기에 보는 시각에 따라 매기 또한 또 하나의 유령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메기는 분명한 현실에서 다이애나를 위로하고 따듯하게 품어주며, 마지막에는 그녀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법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앤 불린 과 다르다.


다소 뻔한 답이겠지만, 다이애나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나 상담이 아니라, 웃음과 사랑이라 말하는 '매기'의 대사는 그녀의 마지막을 비극으로 기억하고 있는 관객들의 마음을 함께 위로하는 것 같다. 매기는 영화가 다이애나에게 전하는 메시지이자 조의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옷을 벗겨내고 새로이 다이애나의 옷을 입혀준들, 그녀의 옷 역시 비와 바람에 헤지고 낡아 언젠가 빛바랜 과거가 되겠지만, 시간의 순리대로 과거의 것은 과거의 것으로 남겨둔 채,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스펜서> 스틸 이미지 (출처:IMDB)


<우리가 여태껏 본 적 없던 다이애나>

이처럼 영화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의외의 방식과 이야기로 다이애나를 묘사한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감독 '파블로 라라인'의 전작 '제키', '네루다'와 닮아있다. 그가 연출한 영화들은 실존인물의 삶을 다루되, 그 인물이 겪은 사건이나 역사가 아닌 그 인물이 휘말린 거대한 사건의 흐름 속에서 느끼고 경험한 감정과 변화에 오롯이 집중한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그 접근 방식이 단순히 신선하다는 것을 넘어, 특정 인물의 삶을 관객이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영화를 상영하는 스크린의 질감이 느껴지는 것 같은 영상과 촬영도 아름다웠지만,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은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이었다. 신경쇠약에 걸린 것만 같은 다이애나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듯 칠판을 긁는 것 만 같은 현악기의 소리가 인물들의 대사 중간중간 끼어들며, 극적인 순간에는 마치 그녀의 절규를 대신하는 것처럼 울부짖는다. 이제는 듣는 순간 '조니 그린우드 음악 아니야?'라는 생각이 떠오를 만큼, 라디오헤드의 음악적 세계관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독보적인 한 명의 음악 감독으로서 단단히 자리 잡은 것 같다. 


Jonny Greenwood, Crucifix (From "Spencer" Soundtrack) https://youtu.be/O-Gzb8x3RHs


물론, 연출과 음악보다 더 큰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히 다이애나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다. 트와일라잇 시리즈 때의 부족한 연기력이야 이미 <온 더 로드>, <퍼스널 쇼퍼> 등의 다양한 도전과 노력을 통해 이겨낸 지 오래지만, 최근 몇 년 그녀의 연기 중에 단연 최고의 연기라고 생각한다. 영화 말미에 정면을 응시하는 하나의 장면을 제외하면, 기존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대사량도 많지 않은 캐릭터임에도 몸과 표정, 그리고 눈빛으로 다이애나 스펜서를 완벽하게 연기해냈으며, 단어 그대로 '숨을 막히게 하는 (Breathtaking)'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스펜서> '파블로 라라인'과 '크리스틴 스튜어트' (출처:IMDB)


<스펜서>는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화려한 인생이나 비극을 다룬, 일반적인 '실화' 영화라고 기대하고 관람한다면 실망감을 느낄 만한 부분들이 많을 것이며, 실제로 개봉 이후의 반응을 보면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러한 실망감을 느끼는 듯하다. 영화는 다이애나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다루고 있지 않으며,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묘사하지도 않기에 다소 지루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색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관람이었다.  


몇몇 기사와 매체가 영화 속 다이애나의 의상과 스캔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영화 속 찰스 왕세자의 대사처럼 분명 모두가 우러러봐야 하는 '왕세자비'의 인생이기에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인물이지만, 죽기 전에도 세상의 관심으로 고통받았던 그녀였기에, 사후에도 한 명의 사람으로서가 아닌, 외적인 것들만 더욱 관심받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그래도 그녀의 인생을 다룬 첫 영화가 섬세한 배려로 만들어진 영화였다는 것에 안도하며,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이자, 쉽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낸 제작진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스펜서> 스틸 이미지 (출처:IMDB)


매거진의 이전글 <애덤 프로젝트> 데드풀의 시간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