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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레탕트 Apr 06. 2022

어쩌면 모두 환자일지도

<이근민 작가 개인展>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전시 리뷰

<지극히 개인적이자 대중적인 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인생의 고통이나 상처를 작품에 녹여낸 예술가들은 그 작품의 가치와 완성도와는 별개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훌륭한 예술가로서 평가되고는 한다.


그들이 작품에 녹여낸 고통과 상처는 예술가라면 “마땅히” 감당해야하는 창작의 고통이나 예술가의 빈곤 따위의 것들이 떠오르지만, 이러한 고난은 작가가 예술을 업으로 삼았기에 발생하는 외부적인 환경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기에 널리 공감되기에 쉽지 않은 심상이다. 따라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심금을 보다 크게 울리는 것은 사람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 느꼈을 법한 어려움과 상처들을 다룬 작품일 것이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좋은 예술에는 작가의 사적인 감정과 이야기가 녹아있으며, 예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작가 개인 경험과 감정을 공공의 영역으로 가지고 오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과 감정을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작가 만이 경험한 것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소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반드시 요구되기에 창작의 과정은 그 자체로 고난이며 동시에 그렇기에 더욱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경험을 작품을 통해 대중이 공감하는 순간은 창작자와 관람자가 단단하게 연결되는 순간이며, 이는 시간과 공간 뿐 아니라 언어의 장벽까지 뛰어넘어 형성된 관계이기에 예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놀라운 순간 중 하나다.


신예작가 이근민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작가가 ‘경계성 인격장애’를 진단받으며 경험한 감정과 생각들을 담아낸 30여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아래 글에는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전시 안내문과 작가의 인터뷰를 참고해 작성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전시 메인 포스터 (출처 : SPACE K)


<사회의 폭력성을 담고 있는 핏빛 캔버스>

작가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강렬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형체를 알아 볼 수는 없지만, 모든 작품이 선홍색, 검붉은색으로 가득하고 군데군데 보이는 혈관과 선명한 경계는 분명 사람의 장기나 인체의 일부분을 모티브삼아 그려진 것이 분명했다.


인체의 장기를 떠오르게 만드는 작품의 노골적인 이미지 덕분에 불쾌한 감정이 가장 먼저 느껴졌으며, 긍정적인 감정이라고는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 강렬함 속에서 작가의 공격성이 느껴졌다. 게다가 분명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느낌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묘사했는지를 알 수 없으니 혼란스러움까지 더해져 작가가 경험한 불안감과 공포, 고통 등 부정적인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다.


1층에서 작품을 관람하고 나면 2층에서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만나 볼 수 있는데, 인텨뷰 내용이 알차게 구성되어있어 난해한 부분이 많은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본 전시에서 공개한 작품들은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질환을 통해 경험한 환각을 시각적 이미지로 그려낸 것이지만, 동시에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순간에 느껴진 혼란과 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작가 개인의 생각을 녹여낸 결과라고 한다.


"작가는 캔버스 전면을 지배하는 환시와 환상의 이미지 이면에 병적 징후를 효율적으로 진단하고 통제하는 우리 사회의 규범적 시스템을 비판한다." - 이근민 작가 인터뷰 中


"Blueprint / 설계도" (이근민, 2021)


작가는 인격장애 판정을 의사로부터 받는 순간에서 이번 전시회 속 작품들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질병 코드 몇 글자로 자신의 질병, 나아가 자신의 사상이 규정되는 순간이 작가에게 비합리적으로 다가왔으며,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시스템과 사회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이 환기되었다고 말한다.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진단과 진단번호는 자신을 향한 폭력과 같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정의'와 '분류'는 사회의 병폐일까>

우리 사회는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가능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섬세하게 설계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설계는 몇 천만, 몇 억의 개개인을 몇 개의 집단으로 정의하고 집단 속의 집단, 구성원 속의 구성원으로 '구분'하고 '분류'한다. 인류 역사 중 그 어느때보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틀림 없으나, 분류의 정의가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변했을 뿐 한 명의 인간을 그 자체로 존중 받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현대 사회 시스템 속의 개인 각각은 사회가 정의한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시스템에 따라, 몇 줄의 문자와 일련의 숫자로 구분되며, 개인은 집단의 구성원으로 치환된다. 이근민 작가는 이러한 '정의'를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으로 받아들였으며, 사회가 가한 폭력과 자신의 병리적 고통을 일치시켜 작품세계를 구성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에게 내려진 진단을 부정하며, 작품을 통해 사회가 정의한 분류와 틀로부터 해방되고자 한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에서 그의 작품이 더욱 처절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만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그의 작품은 작가가 의도한 바를 정확하게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만의 신선한 시선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Two Regions / 두 개의 지역" (이근민, 2021)


사실 시스템까지 운운할 필요 없이 최근의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몇몇 키워드들만 확인해 보더라도, 우리는 사회 혹은 집단이 규정한 특정 정의로 구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명 이상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모임의 목적과 관계없이 서로의 MBTI를 확인하는 것이 익숙한 일이 되었고, 작년 한 해, 그리고 특히 대선 기간동안 청년은 MZ세대, 이대남/이대녀라는 새로운 정의로 규정되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4가지 혈액형, 보수/진보라는 정의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더 세분화된 또 다른 정의들이 대신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정의가 '더 좋은', '더 나은' 구분과 정의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조금 더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이유로, 혹은 더 통계적이라는 것을 근거로 새로운 정의들을 '트랜드'라는 이름으로 추종하고 소비한다. 새롭게 등장했다는 이유로 과거의 것보다 세련되보이는 착각을 들게 만들지만, 본질적으로 이러한 분류는 개인을 집단에 종속시키는 개념으로서 개인의 존재를 희석시키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다양성과 PC(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가 추구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정의과 분류가 기존의 것보다 단단한 감옥이되어 개인을 규정하는 또 다른 구속으로 작용 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정상과 이성, 합리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의 폭력으로부터 회복을 시도하는 그의 회화는 처절한 마음의 풍경을 통해 자기 치유와 자기 위로를 관람객들과 공유한다." - 이근민 작가 인터뷰 中


작가는 이러한 최근 현대 사회의 이면을 개인의 병리학적 진단과 일치시켜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일반화의 오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며,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사람과 상황을 단순화하여 인지하는 것을 지양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입장이기에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하는 주제를 이해 할 수 있었다.


<공감 할 수 없는 작품은 개인의 영역에 머무를 수 밖에>

그러나 작품의 모티브와 '주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에 그쳤을 뿐, 이를 표현하는 '방식'을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작가의 표현 방식은 사회가 그에게 행사했다고 주장하는 폭력만큼이나 공격적이고 급진적이다. 형체가 모호하다고 하더라도 신체가 노골적으로 훼손되어있거나 인체의 장기가 해체되어있는 것이 분명한데, 이를 작가가 경험한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경험한 고통을 표현한 것이라고 봤을 때 평범한 삶을 살아온 입장에서는 그 감정을 온전히 공감하기 어렵다. 


작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작품을 통해 사회로부터의 해방과 안정을 추구했다고 하나, 캔버스 그 어디에도 회복이나 위안은 커녕 잠시 눈을 쉬게 할만한 요소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작가가 언급한 해방과 안정은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작품을 통해 절절하게 전달한 고통과 분노와는 다르게 그가 느낀 해방감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전시장의 한 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몇몇 대형 작품에서까지 분노와 폭력을 꽉꽉 눌러담은 것을 보고나면, 강압과 폭력에 대한 해방감보다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이 주는 피로감이 더욱 짙게 남는다.

"Matter Cloud / 문제구름" (이근민, 2021)

작가가 경험한 환각, 특히 환시를 작품의 원동력으로 삼아 작품을 창작한 것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작품 속 오브제의 형태부터 은유까지  모호하게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 고통과 분노 외의 감정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았다.


글의 서두에서 한 번쯤 느꼈을 법한 어려움과 상처들을 다룬 작품이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서술한 것처럼, 단지 개인적인 것을 '전시'한다고해서 그것이 좋은 공감, 좋은 작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 개인의 경험이 얼마나 내밀한 것인지, 사적인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 경험을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적어도 전달의 방식만큼은 대중이 원활하게 공감할만한 어느 정도의 여지를 두어야 좋은 감상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감상을 경험 할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하기에 이번 전시에서 분위기를 환기 할 만한, 혹은 작가의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만한 작품이 함께 있었으면 더욱 풍성한 전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관람객들에게 관람을 어떤 방법으로 공유하거나 하는 태도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소수자를 대변하는 작가가 한 명 있나는 존재가 읽히면 좋을 것 같다." - 이근민 작가 인터뷰 中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전시 전경


<전시 공간이 주는 즐거움: 마곡 스페이스 K>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전시 및 공연시장이 많이 위축되었다고는 하더라도, 예술에 대한 관심과 전시에 대한 수요는 분명 늘어나고 있기에 매 주 단위로 다양한 전시와 기획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외 유명작가, 대형 기획 및 전시들은 접근성이 좋고 유치되기 용이한 장소에서 개최되는 경향이 있어 매번 새로운 전시를 감상하더라도 전시 공간은 한정되어 있어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반면, 개인전의 경우 일반적으로 국내 이곳 저곳에 숨어있는 크고 작은 전시장들부터 아틀리에, 갤러리 등에서 개최되기에 자주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전시 공간을 체험할 수 있어 뜻 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다.


공간 자체로 매력적인 마곡 문화공원 내 스페이스 K

이번 개인전이 개최된 '스튜디오 K'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된 전시공간인데, 건물 외부와 전시 공간 내부 모두 매력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전시와 별개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다른 업무로 몇 번 지나친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한번 들어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서울 중심부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곡 문화공원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으며 5호선 발산역과 마곡역, 김포공항선 마곡나루역과도 가까운 위치에 있어 접근성이 나쁘지 않다. 


전시의 이름과 구성만 바뀔 뿐, 매번 같은 감상을 주는 미디어 전시, 언젠가부터 유행처럼 번져버린 인상주의 나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전시에 조금은 질렸다면. 혹은 색다른 전시, 새로운 공간에서의 감상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따듯한 봄 날씨에 나들이 삼아 한 번쯤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 전시 장소 : 마곡 스페이스 K
* 전시 일정 : 2022.3.10 ~ 2022.5.18 (10:00 ~ 18:00)
* 전시 가격 : 성인(5,000 원) / 청소년 (3,000 원) / 미취학 (2,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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