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 영화 리뷰
주인공을 고난에 빠지게 하는 사건도 없고, 힘들게 하는 악역도 없는 영화. 가족에게 착하고 친구에게 친절한 평범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매 주, 매 달 많은 영화들이 개봉하지만 가슴 따듯해지는 이야기와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착한 영화"를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유튜브, OTT(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대중은 더 자극적이고, 화려하고 힙(HIP)한 컨텐츠를 요구한다. 그래서 잘 팔리는 영화, 돈이 되는 영화, 성공한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선정성과 자극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반드시 많은 관객을 영화관으로 모셔야하는 상업영화 시장에서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투자와 제작 자체가 어려운것이 당연할테니 개봉되는 영화들 중 "착한 영화"를 찾는 것이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코다>가 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은 것에 대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보기 어렵던 "착한 영화"에 해당하는 영화라는 점에 좀 더 주목해보면 어떨까. 단지 '장애인'과 '소수자'를 주제로 다뤘기에 상을 받은 영화라는 냉소적인 평가보다 무겁고 자극적인 영화들에 지친 영화시장에 오랫만에
나타난 따듯한 영화라는 평가가 더 잘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십대 주인공 '루비'와 그 가족에 대한 성장영화, 드라마로 분류 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 플롯을 보면 굉장히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은 영화이기도 하다.
평범한 소녀였던 주인공이 잘생긴 남자주인공을 따라 합창단에 가입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재능과 꿈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라든지, 크고 작은 소동 속에서 꽃피는 십대의 사랑이라든지, 영원히 곁에 남아 있을 줄 알았던 자녀가 어른으로서 성장해 부모의 곁을 떠나는 성장이야기 등 영화는 전형적인 십대 청춘 드라마, 성장 영화의 문법을 사용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좋은 감상을 주는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코다> 또한 평범한 이야기를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특별하다. <코다>는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특별한 세 개의 큰 목소리가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다.
<성장을 위한 목소리>
우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목소리는 주인공 '루비'의 목소리다.
'루비'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데, 엄마와 아빠, 오빠까지 루비를 제외한 가족 모두 귀가 들리지 않는 농인이라 '루비'는 평생 본인이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학교 합창단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면서 본인의 재능을 알게되고, 나아가 자신이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까지 깨닫게 되면서 가수로서의 '꿈'을 가지게 된다.
루비가 꿈을 위해 버클리 대학 오디션에 도전하는 모습은 자신 '스스로'의 목소리를 처음 내는 과정을 담고있어 감동적이다.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루비는 가족을 대신에 말하는 '무료 통역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루비가 어른으로서 독립해야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재키는 루비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가족의 목소리를 내줄 것을 요구하지만, 루비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가족의 기대와 부담감에 점점 짓눌려만 간다.
이런 루비에게 음악과 노래는 가족의 목소리가 아닌 루비 자신의 목소리를 맘껏 낼 수 있는 방법이기에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단순히 음색이 좋아서가 아니라, 목소리 속에 담겨진 무언가가 있어 특별하다고 말한 영화 속 '베르나르도' 음악선생의 말처럼 루비의 노래는 가족의 그늘 속에서 그러내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정이 담겨있어 특별하다.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에 해당하는 '루비'가 학교에서 노래하는 순간, 가족들은 루비의 노래를 듣지 못해 혼란스러워하고 감동스러운 순간에 참여하지 못한다. 영화 내내 그 순간을 위해 달려왔는데, 정작 가장 그 중요한 순간에 영화는 모든 소리를 없애고 관객을 농인과 일치시켜 농인들이 겪는 경험을 잠깐이나마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루비가 답답해하는 가족들을 보고는 수어를 하며 노래를 하는 모습을 연출해 감동적인 순간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했겠지만, 영화는 끝까지 가족들과 관객들이 답답함을 느끼도록 연출한다. 그 후 영화의 마지막, 오디션장에서 수어(手語)와 함께 노래하는 루비의 모습에서 꿈의 원동력이 '가족'으로부터 왔음이 드러나는 순간, 루비의 노래는 곧 그 가족의 노래가 되어 울려퍼지며, 학교에서의 발표회 이상의 큰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는 어른이 되려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한다는 것, 그리고 가족의 따듯한 사랑이 자녀에게는 필요하다는 조금 식상하지만 분명 의미있는 메세지를 루비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통해 전달한다.
<가족의 목소리>
영화의 배경인 메사추세츠 주의 글로스터 지역 해안에서 몇 대에 걸쳐 어부생활을 가업으로 삼고있는 로치 가족은 가족 구성원 4명 중 3명이 농인이라는 이유로 지역 사회에서 제대로 소속되지 못한채 가족끼리 똘똘뭉쳐 살아간다.
청인들과 소통 할 수 있는 루비가 있어 어업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지만, 루비가 음악의 꿈을 쫓으면서 로치 가족에 위기가 찾아온다. 루비 없이도 어업을 이어가기 위해 루비뿐 아니라 로치 가족 또한 성장해야하며, 영화는 음악을 통한 루비의 성장만큼이나 '로시' 가족의 성장을 중요하게 묘사한다.
영화에서 가족의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루비의 오빠이자, 로치 가족의 아들인 '레오'다. 레오는 언제까지 루비에게 가족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면서, 가족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 초반 아버지인 '프랭크'는 자신들이 농인이기 때문에 청인들과 다르다고 걱정하지만, 아들인 레오는 적극적으로 청인들과 소통하고 지역사회에 속하고자 열심히 노력한다. 이런 그들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어업 조합을 구성하고, 변화에 기여하면서 로치 가족도 성장하고 변화한다.
어머니 '재키' 또한 가족의 미래를 위해 루비의 희생을 강요했지만, 루비의 재능과 꿈에 대한 열정을 알게되면서 루비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게된다.
영화 속에서 가족의 성장이 더욱 인상적인 것은 이들의 성장이 타인이나 사회의 변화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의 노력과 인식의 변화로 야기되었다는 점이다.
<소수자의 목소리>
로치 가족이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들이 농인이기 때문인데, 영화가 이들의 소외를 표현하는 방식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에 대한 영화는 일반적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다수를 일방적인 가해자로 묘사하곤 한다. 소수를 약자와 피해자로, 다수를 가해자로 나누어 묘사하는 방식은 관객이 피해자인 소수에게 쉽게 몰입할 수 있어 영화적으로 분명 효율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소수자가 겪는 현실을 왜곡하여 전달하는 부작용과 한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수를 가해자로 대하는 방법은 소수가 겪는 어려움을 전달하는데는 효율적일지 몰라도 그 어려움에 대한 해결의 주체에서 소수가 제외된다는 한계가 발생한다. 사회와 대중이 바뀌지 않는다면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메세지는 오히려 소수를 더욱 고립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코다>는 그동안의 매체가 소수자를 수동적인 태도로 묘사하고, 사회나 대중의 변화만을 촉구했던것에 그친것과 다르게, 소수자 자체도 능동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바뀌어야한다고 말한다.
영화에서는 로치 가족을 피해자로 묘사하지도 않으며, 이웃들을 가해자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로치 가족이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것은 가족들이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오히려 이웃들에게 자신들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어서 그들이 '수어'를 배우게 해야한다고 말한다. 즉, 약자와 사회가 함께 노력하고 변해야한다는 메세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는 단지 약자와 강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와 다수에 대한 문제 뿐 아니라, 사회가 건강한 방법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기위해 필요한 자세이기도하다.
사회와 개인의 존재는 점점 전체주의와 이기주의와 같은 양 극단으로 극명하게 구분되어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상호간의 배려와 관심은 오히려 약해져가고 있다. 소수자의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 자체가 성과나 결과로 인식되어 소수자는 점차 사회의 악역이 되어가고있으며, 매 년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다뤄지는 여러 이슈들로 속에서 대중이 느끼는 피로감이 상당한 것 또한 사실이다.
소수자들의 입장에서는 잔인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일방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전처럼 효과적이지 않은 현실에서 그들 또한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하고 변화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착한 영화"를 자주 만나고 싶다면>
<코다>는 애플티비가 투자하고 제작한 영화로, OTT 컨텐츠 시장의 경쟁력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컨텐츠 시장이 점점 더 파편적이고 자본집약적으로 형성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도 있으나, 컨텐츠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각에서 보자면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수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에 투자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만으로 창작자는 과감하고 창의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으며, 이는 더욱 다양하고 특색있는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한다.
일부 거대 OTT플랫폼들이 이쪽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시장 독점이 우려된다거나 OTT에서도 트랜드를 무시할 수 없기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각본, 시나리오의 무분별한 제작으로 컨텐츠의 품질이 오히려 하향평준화 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소비자들의 불만도 분명 증가하고 있다.
그동안 저예산 영화, 다양성 영화, 인디영화 등 영화시장의 다양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부와 투자/제작사, 유통사인 멀티플렉스 영화관들(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노력한 것들이 되려 영화시장의 양극화에 일조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컨텐츠를 요구하는 소비자의 입장, 그리고 시도가 없다면 결과도 없다고 생각하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이러한 최근의 시장 변화가 적어도 한 동안은 긍정적인 결과를 더 많이 만들어 낼것이라 예상한다.
<CODA : Children Of Deaf Adult>
원작 영화인 <미라클 벨리에>도 좋은 영화였지만, 감독인 션 헤이더가 재해석한 <코다>는 그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하며, 특히 리메이크 영화의 제목을 '코다(CODA)'라고 지은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
'코다'는 농인 부모를 둔 자녀(Children Of Deaf Adult)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음악에서 한 곡의 끝부분을 강조하는 의미를 가지고있기도 하다. 농인 부모의 자녀인 '루비'의 이야기이자, 한계를 극복하고 변화를 통해 새롭게 거듭난다는 점에서 '코다'라는 제목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의미 모두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또한, 원작인 <미라클 벨리에>와 달리, 실제 농인 배우들이 직접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 '코다'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데, 실제 배우들이 농인이라는 것을 떠나 한 명의 배우로서 대단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십대 소녀의 성장 이야기, 풋풋한 청춘의 사랑, 그리고 가족의 사랑까지.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들과 설정이지만 포근해지는 날씨만큼 가슴 따듯해지는 영화를 보고싶다면 친구와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볼만한 착하고 따듯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