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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레탕트 Apr 09. 2022

<엠뷸런스>
아수라장 그 자체가 되어버린 영화

<엠뷸런스> 영화 리뷰

<더 록>, <트랜스포머>로 유명한 '마이클 베이' 감독은 2000년대 액션 영화에서 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액션 장르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거의 모든 영화에서 대형 폭발 장면이 등장하며, 대형 재난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액션 스케일을 볼 수 있어 "Bayhem(아수라장을 뜻하는 Mayhem과 마이클 베이의 Bay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하게 되었다.


다만 그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특색과 특징들이 좋은 의미보다는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주 언급되기 때문에 감독에 대한 존경의 뉘앙스가 어느 정도 담겨있는 '작가주의'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감독은 아니며, 감독 자체가 '장르'가 된 감독이 더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재난영화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과 비슷한 경우)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성 시기와 맞물려 손대는 영화마다 대박을 터트리던 2000년부터 2010년대의 전성기 때와는 달리, 최근 그가 연출한 영화들의 면면을 보면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랜차이즈 영화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처참한 실패가 가장 먼저 눈에 띄지만, 나름 절치부심해서 만든 <13시간>, <6 언더그라운드> 또한 좋지 못한 성적을 거뒀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신작 <엠뷸런스>는 스스로의 대표작인 <나쁜 녀석들>과 <더 록>을 직접 인용하면서까지 절치부심해서 만든 영화였으며, 여러모로 작정하고 "Bayhem" 다운 것들이 가득가득 들어있는 영화였다.




"아래 글에는 영화 <엠뷸런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엠뷸런스> 포스터 (출처:IMDB)


<작정하고 만든 난장판>

아수라장의 대가답게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뒤는 생각하지 않고 폭주한다. 폭주하는 엠뷸런스를 멈추면 죽는 바닷속 상어라고 말하는 '대니'의 대사처럼 한번 달리기 터지기 시작한 마이클 베이식 폭죽은 연쇄적인 폭발로 이어지며 "Bayhem"다운 난장판을 선사한다.


드론을 촬영에 적극적으로 사용해 새로운 액션 연출을 시도했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인물과 차량의 폭주를 바로 옆에서 관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시도 자체는 창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Bayhem"이라는 단어는 수 십 대의 차량이 폭발하는 장면이나, 전쟁 영화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화력쇼에 주로 사용되지만, 조악한 스토리, 유치한 대사들을 정신없는 영상으로 눈속임하는 경우를 비꼬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그만큼 마이클 베이의 영화는 각본의 부실함이 고질적인 문제였는데, 이번 신작 <엠뷸런스>에서는 그동안의 혹평과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포기할 것은 확실히 포기하는 선택으로 단점까지 나름 극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범 지구적 사건을 다루던 스케일을 뉴욕시로 대폭 축소하고, 나아가 대부분의 사건 배경을 구급차 내부에 한정하면서 인물 간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나름의 노력 덕분에 그의 초기 작품에서 느껴지던 인물 간의 끈끈한 유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인물들 간의 상호작용과 각자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었다.


물론 이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라는 게, 오로지 액션과 스펙터클을 연출하기 위한 도구로서 만들어진 것이라 개연성은 당연히(?) 없었으며, 그들의 선택이나 감정 변화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엠뷸런스> 스틸 이미지 (출처:IMDB)


<영화를 엉망으로 만들라는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마이클 베이 감독에게 영광을 가져다주었던 몇몇 장점들이 잘 드러난 영화이자, 그의 단점은 나름 희석된 영화였지만 여전히 단점이 분명한 영화이기도 했다.


우선 각본과 서사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2022년에 개봉한 영화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이상한 유머 코드와 부적절한 농담들은 여전히 극의 몰입을 방해했으며, 왜곡된 영웅주의와 폭력을 오락화하고 미화하는 연출 방식은 분명 시대착오적이었다. 그 어떤 영화보다 폭력과 분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평화와 치안을 운운하는 대사들을 보면서, 감독의 가치관이 2000년대에 머물러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의 영화에서 일반적인 수준의 개연성을 기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아무리 액션 하나만 보고 달려가는 영화라고 하더라도 캐릭터의 일관성은 지켰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등장하는 장면마다 가치관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고, 전개 속도나 이야기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어있으니 그의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앞서 드론을 이용한 액션 연출 역시 신선했다고 표현했지만, 단지 새로운 시도였다는 점이 신선했을 뿐, 액션 연출에 대한 완성도는 오히려 엉망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옥상에서부터 지상까지 추락하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생사를 넘나드는 차량 추격신이 펼쳐지는 와중에 뉴욕시 전경은 왜 보여주며, 드론의 속도를 조절하지 못해 피사체가 프레임을 벗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드론으로 촬영하면 '멋있겠지'라는 기대 하나로 시도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드론을 이용한 액션 장면은 연출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무의미했다.


마이클 베이식 폭발 장면 또한 이미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지겹도록 봤던 같은 레퍼토리 범위 안에 있는 것들이라 몇몇 장면들을 제외하면 지루함을 유발할 정도로, 그가 자랑하던 액션도 전처럼 흥미롭지 않았다.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편집이었는데, 영화 후반부의 액션 시퀀스는 거의 검수를 안 거치고 그대로 내보낸 수준이라 대역 스턴트맨의 얼굴 정면이 수시로 등장하고, 장면과 장면이 연결되지 않는 데다 대사의 싱크까지 맞지 않아 '아수라장' 그 자체가 되어버린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엠뷸런스> 출연진과 마이클 베이 (출처:IMDB)


두 주연 캐릭터를 연기한 '제이크 질렌할'과 '야히아 압둘 마틴' 그리고 마이클 베이의 새로운 히로인 '에이자 곤잘레스'들의 열연은 영화의 처참한 각본 덕에 10분의 1도 드러나지 않았으며, 특히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한 '대니'는 캐릭터 자체가 너무나도 엉망으로 만들어진 터라 연기의 달인 '제이크 질렌할'이더라도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더 좋은 영화, 재밌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감독의 노력과는 다르게 계속되는 졸작의 연속에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에 '기대'를 거는 관객은 거의 없으며,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관객 또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관객은 화려한 영상과 속 시원한 액션 영화를 보고 싶지, 어설픈 훈계와 감독 혼자서 큭큭거릴만한 유치한 유머를 기대하지 않는다. 아수라장이 주는 쾌감을 기대하는 관객은 있을지라도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영화를 관람하고 싶은 관객은 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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