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영화 리뷰
전 세계를 마법사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해리포터' 시리즈의 장대한 여정이 7편 '죽음의 성물'을 끝으로 마감된 이후, 해리포터를 사랑하는 팬들은 영화의 팬이든지, 소설의 팬이든지 관계없이 마법 세계관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 있었다. 해리포터의 이야기가 끝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물론 세계관을 설명해놓은 설정집, 2차 창작물들의 소비가 이어졌고 심지어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수준 높은 팬 무비를 제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신비한 동물사전>이 개봉하기 전 기대보다는 우려와 걱정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곱 편의 소설로서, 또 여덟 편의 영화로서 훌륭한 마침표를 찍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몇몇 극성팬들의 요구에 못 이겨 작가 의지와는 관계없이 프리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한 명의 해리포터 시리즈의 팬으로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무엇보다 프리퀄(Prequel:원작 이전의 이야기)과 시퀄(Sequel: 원작 이후의 이야기), 스핀오프(Spinoff: 원작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원작과 별개의 이야기) 등의 방식으로 한번 끝난 이야기를 억지로 이어오려다 원작의 성과나 명성에 먹칠한 수많은 전례들의 뒤를 이을까 하는 우려가 가장 컸다.
게다가 조앤. K. 롤링은 각본을 써본 경험이 없는 소설 작가였기에 그녀가 각본을 전적으로 담당한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원작의 정체성, 오리지널리티를 그대로 계승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었지만, 한 명의 극작가로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2013년 개봉한 <신비한 동물사전>은 분명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 걱정과는 다르게 조앤. K. 롤링은 각본가로서도 나름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으며, 원작의 후광에 의존하지 않고, '뉴트 스캐맨더'라는 매력적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매력적이고도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속편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는 전작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야만 했다. 해리포터 시리즈 역사상 가장 적은 수익을 냈다는 것보다, '동물사전'시리즈 자체의 정체성을 잃게 된 영화이자, 나아가 원작인 '해리포터'시리즈에게도 영향을 준 영화라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해리포터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영화에 끌어들이기 시작하면서, '신비한 동물사전'도 아니고, '해리포터'도 아닌 애매한 영화가 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한 동물사전>의 분명한 성공사례가 있었기에, 전작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다시 한번 정상궤도에 오르기를 기대하며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처참했던 전작보다는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영화였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은 다시 한번 해리포터 시리즈의 팬들과 영화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여전히 매력적인 신비한 동물들과 뉴트 스캐맨더>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 특히 1편을 더욱 좋아하는 이유는 시리즈의 타이틀이기도 한, '신비한 동물'들 때문이다. 원작인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기상천외하고 신기한 동물들이 자주 등장했지만,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에서는 좀 더 친근하고 매력적인 동물들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이전 시리즈에 등장했던 동물들이 여러 신화 속에 등장하는 등장하는 동물(용, 히포그리프, 바실리스크 등)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던 것과는 다르게, 그 어디서도 들어보거나 본 적 없는 개성 넘치고 독특한 매력을 가진 동물들이 등장한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보석이나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두더지 혹은 오리너구리를 닮은 '니플러'를 좋아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니플러의 치명적인 귀여움을 볼 수 있었다.
전작의 실패를 겨우겨우 수습하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시리즈의 주인공인 '뉴트 스캐맨더'였다. 전작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는 지나치게 '알버스 덤블도어' 교수와 '그린델왈드'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바람에 시리즈의 주인공인 '뉴트'의 존재감이 적었던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 스포트라이트가 다시 한번 '뉴트'에게 돌아와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선택받은 자, 시대를 구할 영웅 등 전통적인 영웅상으로 그려졌던 '해리포터'와는 다르게, '정직'과 '성실'의 가치를 대변하는 '뉴트 스캐맨더'는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고 개성 있는 주인공이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주눅이 들어있지만 중요한 순간에 현명한 판단 할 줄 알고 약자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입체적이고 매력적이다.
또한 무엇보다 '뉴트 스캐맨더'를 연기한 '에드 레드메인'의 연기력이 워낙에 출중하기에 '뉴트'가 느끼는 감정과 행동 하나하나에 공감할 수 있었다. 배우의 탁월한 해석 덕분에 '뉴트'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겠지만, '에드 레드메인'의 연기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수줍음과 따듯함이 워낙 잘 드러나는 캐릭터인지라, 배우와 캐릭터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모든 것은 '덤블도어'를 위해>
앞서 매력적인 동물들과 주인공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매력적인 부분들이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뉴트 스캐맨더'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이번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제목에서처럼 '알버스 덤블도어' 혹은 '덤블도어' 가문이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좋아하는 팬들과 관객에게 충격적인 전개를 보여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던 것인지, 영화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알버스 덤블도어의 과거를 '전시'하는데 노력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덤블도어 교수, '알버스 덤블도어'의 영향 아래에 있는데, '뉴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그가 내리는 모든 선택과 결정은 덤블도어 교수가 지시한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불과하며, 모든 사건의 발단은 '알버스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 둘의 애증관계에서 시작되었기에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감초 역할, 조연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다.
1편과 2편에서 뉴트만큼이나 중요하게 등장했던 '크레덴스'라는 캐릭터만 봐도 그렇다. 크레덴스는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정체성인 '신비한 동물'과 '해리포터 세계관'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이런 중요한 인물을 단순히 막장드라마 수준의 반전으로 소비해버린 것도 기가 찰만 한 노릇인데, 겨우 전투신 몇 장면에서 등장하는 게 전부인 수준으로 다뤄지다 보니 오히려 이야기를 방해하는 걸림돌로 전락하고 말았다.
분노에 가까운 팬들의 반발 때문인지, 작가의 의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크레덴스가 덤블도어 가문 출신이라는 충격적인 설정은 알버스 덤블도어의 동생 '애버포스'가 등장하면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정리된다.
가장 큰 문제는 크레덴스와 연관된 모든 이야기들은 그 어떠한 근거나 배경도 없이 영화가 '말하는 대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크레덴스가 가지고 있는 비밀, 즉 반전을 드러내고자 덤블도어 교수가 줄줄 읊어대는 가정사나 애버포스가 운영하는 술집의 거울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떠한 당위성이나 개연성이 없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 작용하기 때문에 관객으로서는 그 내용이 충격적인 것과는 관계없이 지루한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정당화하는 연출 요소 등을 일컫는 말
시리즈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그린델왈드'를 다루는 방식 또한 여전히 실망스러웠다. 전작부터 이어져온 그의 '비마법사 말살' 사상은 그저 '악취 나는 머글', '저등 한 종족'이라는 몇몇 단어들에 근거한 '주장'이라고 칭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마법 사회를 지배할 수준의 추종자들을 양성한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여기에 영화는 독일의 역사를 어설프게 끌어들여 '나치' 사상과 연관 짓고자 하는데, 그 어떤 상관성도 없이 그저 시대적 이미지만을 차용하는 수준이라 이마저도 관객의 공감을 얻는데 실패했다.
결국 영화에서 전면에 내세웠던 '덤블도어의 비밀'은 사실상 전편의 반전을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하는 수준에 그치며, 이조차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허겁지겁 전개되는 빈약한 서사를 따라가기 때문에 관객이 몰입할만한 인물의 감정이나 이야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뉴트의 존재감이 좀 더 드러났다는 점을 제외하면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은 제목만 달라졌을 뿐, 전작의 문제점인 '각본'의 문제가 그대로 이어진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조앤. K. 롤링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나마 이 영화, 그리고 시리즈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신기한 동물들과 마법사들의 액션을 묘사하는 시각효과, 그리고 연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화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데에는 '각본'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신비한 동물사전>의 성공을 보면, 각본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원작 소설에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는 매력적이었고 인물 간의 관계도, 벌어지는 사건도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특히 머글/노마지(비마법사)와 마법사의 로맨스라든지, 신비한 동물들의 이야기라든지, 영국이 아닌 미국을 배경으로 한 마법 이야기라든지 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은 '볼드모트'와 '죽음을 먹는 자들'과 같은 무시무시하고 커다란 위협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 멋진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해리포터의 이야기를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로 가져오기 시작하면서 1편에서 쌓아 올린 공든 탑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볼드모트 시대 이전의 범죄자로 여겨지던 '그린델왈드'를 빌런으로 내세우고, 그런 그린델왈드와 덤블도어 교수가 '친구'사이였다는 원작의 설정을 '연인' 관계로 확장시키면서 새롭게 풀어냈던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만의 이야기는 점점 옅어지게 된다.
단순히 해리포터 시리즈 원작의 이야기의 연장에 있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린델왈드의 이야기와 뉴트 스캐맨더의 이야기, 이 둘이 조화되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논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린델왈드는 신비한 동물들이 없어도 머글들을 혐오하고 순혈주의를 강조했을 것이며, 전 세계에 있는 신기한 동물들을 찾아다니는 뉴트는 그린델왈드의 범죄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연구와 생활을 이어갔을 것이다. 무려 3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그린델왈드와 뉴트 스캐맨더 이 둘 사이에는 알버스 덤블도어를 알고 있다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접점도 형성되지 않았다.
만약 반대로 동물사전 이야기에 그린델왈드와의 이야기를 조금 녹이는 수준에 그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번 강조했던 것처럼 '뉴트 스캐맨더'만의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좋은 시리즈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상적인 정치적 올바름(PC)가 비난받는 이유>
영화의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지나치게 표면적이고 피상적으로 다뤄진 'PC' 요소들이 또한 실망스러웠다.
공개적으로 다루기에 다소 부담되는 내용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이나 PC주의 같은 최근 대중매체의 흐름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고자 함은 아님을 분명하게 밝힌다. 이번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에서 느꼈던 아쉬움에 한정해 얕은 식견을 토대로 철저히 개인적인 감상을 몇 줄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그린델왈드의 계략을 저지하고자 구성된 '팀 덤블도어'에 두 명의 유색인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나,
두 명의 마법사 연맹 대표 후보자 중 한 명은 아시아계, 한 명은 라틴계라는 점까지. 할리우드 '인클루전 라이더(inclusion rider)'가 부정적으로 적용된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 인클루전 라이더(inclusion rider) : 영화를 제작할 때 배우와 스태프의 성적·인종적 다양성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한다는 내용의 계약조항
이들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덤블도어는 이들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서 소집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은 극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며 그저 '존재'하는 것에 그치며, 심지어 두 명의 후보자는 대사 한마디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이라는 특징 외에 어떤 배경이나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괘씸하게 느껴졌다.
보는 시각에 따라 충분히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단지 피부색과 성적 취향 때문에 캐스팅되고 프레임에 포함되는 '형식적인' 인클루전 라이더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차별이자, 잘못된 형태의 'PC'라고 생각한다.
'기린'이라는 상상의 동물에 대한 설정 또한 굉장히 어색하다. 여러 매체, 그리고 역사 속에서 '유니콘'과 동일한 상상 속 동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분명 '동양' 신화 속에서의 동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이 '기린'이 미래를 보는 '영물'이자 국제 마법 연맹의 리더를 선출하는 '선택자'로서 묘사되는데, 미래를 보는 능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전지전능한 마법사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연맹의 대표를 한 마리 동물이 결정하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심지어 다 성장하지 않은 어린 개체이다)
투표 장소까지 전형적인 티베트(영화는 부탄이라고 주장한다)의 사당 혹은 사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이 둘의 설정이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너무나도 안이한 PC적 요소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남은 두 편에서 보여줄 것이 남았을까>
지금까지의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 모두를 극장에서 본 해리포터 시리즈의 팬이자, 영화 팬으로서 작가인 조앤. K. 롤링, 그리고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남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아직도 두 편의 영화가 더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영화의 내용과 결말을 보았을 때, 4편과 5편의 주인공은 더 이상 뉴트 스캐맨더일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왕 제작이 확정된 마당에 그렇게까지 다루고 싶어 하던 덤블도어 교수의 과거에 오롯이 집중해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 전체가 원작을 훼손하는 최악의 시리즈 중 하나로 평가될 수도 있으며, '해리포터 세계관의 스케치'나 '조앤. K. 롤링이 미처 말하지 못했던 덤블도어 이야기' 따위의 영화로 만들어진 설정집이라는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