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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레탕트 Apr 30. 2022

평범한 공간 속 낯선 활력

<nuns and monks by the sea> 우고 론디노네 展 리뷰

현대미술 전시 중에서도 조형물이나 오브젝트가 중심이 되는 설치미술 전시는 회화 작품들과는 다른 '보는 맛'을 느낄 수 있다. 감상하는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유있는 공간을 돌아다니며 이 곳 저 곳에서 다양한 감상을 얻을 수 있어 좋아하는 편이다. 


국제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의 개인전<nuns and monks by the sea>은  작가의 독특한 감각으로 만들어진 형형색색의 거대한 조형물들을 통해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이색적인 이미지를 공간 속에 그려내며, 그 속에서 낯선 감상을 제공한다.


우고 론디노네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알게된 작가인데, 국내에서만 세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 세계적인 조형 아티스트라고 한다. 관람 전 작가의 이력이나 이전 작품들을 찾아보니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은 다양한 조형물들을 선보이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작가의 이름을 구글에서 검색보니 네바다 주의 황량한 사막에 극단적인 형광색의 고인돌(?)과 같은 조형물이 놓여진 사진이 가장 많이 보였으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Seven Magic Mountains, 2016. Nevada. (Photo by Gianfranco Gorgoni)


아래 글에는 전시 안내문을 참고하여 작성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black green monk (2020) (출처: 국제갤러리)
"나는 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이고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물리적인 현상인지 혹은 형이상학적인 현상인지에 대한 조각을 만든다" - 우고 론디노네


<밋밋한 전시장 속 이질적인 작품>

삼청동에 위치한 국제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는 실내 전시관(K3)에 5개 조형물이 놓여진게 전부다. 전시장의 입구는 건물 외부와 바로 이어져 있는데다, 전시장 내부도 넓지 않은 편이라 전시장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어떤 공간에 덩그러니 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전시장에는 전시된 5개의 조형물을 제외하고는 다른 연출이 가미되지 않은 단어 그대로 '날 것'의 전시였다. 전시장 입구에 놓여진 안내문 외에는 작품에 대한 설명이나 그 어떤 표시도 없었으며, 조명도 전시장 내부의 것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여졌고 음악이나 소리도 연출되지 않았다. 관람료가 없는 무료 전시라서 단촐하게 개최되었나 싶지만, 그 동안의 작가의 이력이나 이전에 개최된 전시의 사진들을 보니 미니멀한 연출 방식이 의도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갤러리 공간의 표면을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밑작업은 작가가 종종 사용하던 제스처로, 바닥과 벽의 경계를 없앰으로써 그 지평을 재정의할 뿐 아니라 돌에 내재한 고요한 변신의 상태를 은유한다." (전시 소개글 中)


작가는 전시된 작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요소를 '있는 그대로' 활용하고 있었으며, 전시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진것은 전시된 조형물들이 전부였다. 심지어는 자연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정도로, 우고 론디노네는  '자연'스러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무채삭의 공간 속에 놓여진 비비드(vivid)한 조형물들은 그 자체로 굉장히 이색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2미터 가량의 크기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조형물들은 마치 공간에 짜놓은 물감 같았는데, 형광색이 주는 친근함과 팝(POP)스러운 느낌 때문인지 작품에 압도되는 듯한 강렬한 인상보다는 따듯하고 생기넘치는 인상이 더 강했다.


<nons and monks by the sea> 전시 사진


<차가운 재료에서 느껴지는 온기>

작품 설명을 읽어보면 전시된 조형물들은 '청동 주물'로 만들어진, 다시말해 색이 이쁘게 칠해진 '동상'이었다. 


신기하게도 '청동'이라는 소재가 가지고 있는 차갑고 경직된 느낌은 느껴지지 않았으며,  금속 조형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시된 조형물에서는 넘치는 생기가 느껴졌다. 조형물이 평범한 파란색, 흰색,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이 아니라, 높은 채도의 쨍한 색들로 도색되어있다는 것이 작품이 따듯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겠지만, 장난감 찰흙이나 되직한 슬라임을 연상케하는 독특한 질감도 그 역할을 톡톡히한다. 


조형물들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어딘가는 깊숙하게 파여있고, 어딘가는 맨들맨들하게 다듬어져있으며, 또 어딘가는 거친 느낌을 주기위해 작음 홈들이 파여있기도 했다. 이처럼 작품은 전체적으로는 거대하고 묵직한 덩어리처럼 느껴지지만  가까이서, 또 여러 시각에서 자세히 뜯어보면 굉장히 많은 디테일을 가지고 있어 그만큼 다양한 감상을 준다. 


5개의 조형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져있어 조형물들의 사이 사이를 거닐며 다수의 피사체를 눈에 담도록 구성되어있다는 것 또한 인상적이다. 전시장의 입구에 들어서면 5개의 조형물이 한 눈에 들어오지만, 전시장을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보면 2개 3개의 피사체를 눈에 담을 수 있는데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포카리스웨트, 이탈리아 국기, 백설기, 레몬스무디와 같은 뜬금없고도 독특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nuns and monks by the sea> 전시 사진


<수녀와 승려>

전시의 제목이 바다의 수녀들과(nons) 승려들(monks)이라는 것을 전시를 나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집에 돌아와 글을 쓰며 5개의 조형물들에 수녀와 승려의 이미지와 느낌을 떠올리고 보니 꽤나 잘 지어진 전시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자연적인' 공간 속에서 '인위적인' 조형물을 배치하고, 이 조형물들은 다시 자연적인 소재들(돌, 금속, 나무 등)을 이용해 '인위적인' 형상(인체)으로 만들어진다. 조형물 하나 하나는 모두 청동으로 만들어진 금속이지만, 오히려 돌처럼 보여지고, 차가운 느낌과 따듯한 느낌을 동시에 선사한다.


"성인(聖人)의 신비로움과 엄숙함을 불러일으키는 다섯 점의 조각들은 공간을 사로잡고 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중략) 관객의 키를 훌쩍 넘어 우뚝 솟은 신화적 존재들은 우상적 상징성으로 짓누르기보다는 열린 상태로 그들을 환영하며, 거칠게 깎인 작품 표면은 불안정한 독단성보다는 치유자의 풍성한 옷자락을 연상시킨다." (전시 소개글 中)


즉, 작가는 그저 미니멀한 연출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자연-인간, 창조-파괴, 단절-연결 등 대비되는 개념들이 주는 대비와 아이러니를 철저하게 통제된 연출로 그려내고자 했다고 느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시의 제목에서의 수녀와 승려는 5개의 조형물을 통해 중성적인 이미지와 종교 간의 통합 혹은 종교와 사회와의 통합에 대한 이미지를 담고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게 만들었다.


작품의 형태가 인체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외에는 워낙에 추상적인데다, 각 조형물들이 색과 형태만 조금 다를 뿐이지 작품이 주는 인상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위의 감상과 해석이 비약적일 수 있겠지만, 예술은 소비되는 그 순간 완성되는 것 아니겠는가.


<nuns and monks by the sea> 전시 사진


<공간이 주는 감상-국제 갤러리>

몇 년전 빌 비올라(Bill Viola)의 개인전을 보기위해 찾았던 전시장이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전시의 구성과 컨셉들이 도회적이면서도 관객 편의적으로 구성되어있어 편안한 감상이 가능하다는 점이 좋았다.


버스와 지하철역과도 가까워 접근성도 좋은 편인데다, 가깝게는 경복궁과 북촌, 조금 멀게는 서촌과 인사동이 인접해 있어 나들이, 데이트 삼아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무료인데다, 작품도 전시관 하나에서 모두 감상 할 수 있어 손도 마음도 가볍게 찾아가보길 바란다. (단, 전시장 공간 자체가 넓은 편은 아니므로, 주말에는 줄을 서거나 오랜시간 여유있게 작품을 즐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국제갤러리(좌:K1, 우:K3) 전경 (출처 : 국제갤러리)


* 전시 장소 : 국제갤러리 K3
* 전시 일정 : 2022.4.5 ~ 2022.5.15 (10:00 ~ 18:00)
* 전시 가격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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