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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레탕트 Feb 28. 2024

<파묘>
파낼 때마다 험한 게 튀어나온다

<파묘> 영화 리뷰

점점 작아지고 있는 스릴러, 공포영화 시장에서 그저 그런 점프스케어나 잔인함이 아닌 역사와 종교, 사회가 주는 공포를 다루며 자신만의 독특한 오컬트적 세계관을 묵묵하게 그려내고 있는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는 이전 작품에서 느낄 수 있던 사실적인 세계관과 설정, 고증을 좋아하는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이자, 나아가 감독의 야심까지 담아낸 과감한 영화였다.


영화 도입부 자신을 일본어로 응대하는 승무원에게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정정하는 ‘화림’의 모습은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와 그에 대한 태도 모두를 암시한다.


“아래 글에는 <파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묘> 포스터 (출처:IMDB)


<흥미로운 비주얼과 캐릭터>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 가족의 조상 묘를 이장하기 위해 무당, 풍수사가 뭉치는 영화 초반의 설정만으로도 영화에 몰입하기 충분하다.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 젊은 무당 ‘화림’은 대중매체에서 으레 봐왔던 무속인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그녀를 보조하는 제자 무속인 ‘봉길’의 분위기도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반면에 최민식 배우가 연기한 풍수사 ‘상덕’과 유해진 배우가 연기한 장의사 ‘영근’의 조합은 한결 편안하고 친근하다. 나이대와 분위기 모두 상반된 두 그룹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도 있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한바탕 사건이 끝난 후 ‘화림’과 ‘봉길’이 피트니스 센터에서 헬스와 스피닝을 즐기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모두가 흔하게 떠올릴만한 무속인의 이미지가 아니라는 점이 신선했다.


풍수와 오행에 통달한 풍수사 ‘상덕’의 캐릭터 또한 흥미로운데, 흙을 맛보며 등장하는 도인 같은 모습과 따듯한 동네아저씨 같은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영화에 두어 번 등장하는 굿 장면 또한 시각적, 청각적으로 강렬하다. 귀를 가득 채우는 북과 꽹과리 소리, 그리고 그 속에서 칼을 들고 굿을 하는 ‘화림’의 모습과 굿이 시작함과 동시에 삽질을 시작하는 인부들의 모습은 무질서하고 폭력적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리듬감으로 엮여있어 잘 짜인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신선한 캐릭터들과 흥미로운 설정에 비해 영화 전체 이야기의 흐름은 다소 아쉬웠다.     


<파묘> 스틸컷 (출처:IMDB)


<뚝심 있게 전진하는 용기>

영화의 중반까지는 일반적인 심령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했다. 한 가족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무당과 풍수사가 힘을 합쳐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데, 그 과정에서 일이 틀어지면서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는 ‘이장’이라는 요소가 신선할 뿐, 원한을 가진 혼령이 현실의 사람을 해한다는 점에서 흔한 귀신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영화가 정말 힘을 주고 있는 부분은 귀신이 아닌 또 다른 무언가 등장하는 중반부 이후의 이야기다.


원한을 가진 혼령은 과거 일제강점기 친일의 행적이 있는 소위 ‘역적’이었으며, 그의 묘는 사실 일본의 ‘쇠말뚝’을 숨기기 위해 마련된 위장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난 이후 영화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묫자리 밑에 숨겨진 진실이 있었다는 설정과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파내고 파낸다는 연출의 방식이 거칠지만 거침이 없어서 미처 관객이 놀라기도 전에 한발 더 나아간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일본의 정령이라는 설정과 항일의 테마가 뜬금없다는 인상을 주기도 전에 영화는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간다.


<파묘> 스틸컷 (출처:IMDB)

<끊어진 허리>

영화는 6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크게 첫 번째 관을 꺼냈을 때와 두 번째 관을 꺼냈을 때의 이야기,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두 개의 이야기가 절단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민족의 비극을 이야기하고자 가족의 비극을 복선으로 삼았지만, 정작 두 번째 관을 꺼낸 이후에는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말만 남긴 채 영화에서 배제되며, 가족의 비극을 주연 캐릭터들의 어렴풋한 과거와 항일의 역사가 대신한다. 두 개의 이야기는 초자연적인 세계관을 공유할 뿐, 두 이야기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가족의 비극과 민족의 비극을 연결하고자 하는 영화의 시도와 방향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둘의 연결이 조금 더 부드러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인 아쉬움과는 별개로 거침없는 파격적인 전개와 배우들의 호연을 보는 재미가 상당한 영화였으며, <검은 사제들>, <사바하> 그리고 <파묘>까지 이어지는 장재현 감독의 묵묵한 전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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