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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레탕트 Feb 29. 2024

<듄:파트 2>
운명의 늪으로 들어간 왕의 대관식

<듄:파트 2> 영화 리뷰

<듄:파트 1>을 극장에서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 자체로 하나의 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은 초현실적인 장면들, 사실적이면서도 판타지적인 세계관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었다. 거대한 IMAX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아라키스 행성의 사막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는 영화적 체험이었다.   


온갖 영웅들이 스크린을 점령한 요즘, 캐묵은 ‘메시아’의 이야기가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싶었지만, <듄>은 거대한 우주적 세계관을 냉혹한 정치의 세계, 신앙과 과학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세계관으로서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듄:파트 1>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 명의 영화팬으로서도, 감독 ‘드니 빌뇌브’의 오랜 팬으로서도 더할 나위 없었던 영화였다. 1편만큼 훌륭한 속편이 없다고 하지만, <듄:파트 2>는 영화 팬으로서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은 물론이며, 1편 이상의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훌륭한 오락 영화이자 SF 장르의 팬들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팬서비스일 것이라 자신한다.


“아래 글에는 <듄:파트 2>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듄:파트 2> 포스터 (출처:IMDB)


<어딘가 실제 할 것만 같은 사실적인 세계관>

사막으로 뒤덮인 행성 아라키스는 1편에 이어 2편에서도 영화의 주요한 배경으로 펼쳐진다. 사막 부족 ‘프레멘’의 이야기를 보다 본격적으로 다루는 2편에서는 그들의 문화와 생활을 보여준다. ‘물’이 그 어떤 자원보다 귀하기 때문에 죽은 부족원의 사체에서 뽑아낸 물을 모아두고 기리는 풍습이나, 거대한 모래 벌레 ‘샤이 훌루드’를 교통수단으로 사용하는 모습 등은 별다른 부연설명 없이도 ‘프레멘’ 부족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이해시킨다.


영화 내내 나타나는 끝없는 사막의 풍경이나, 두 개의 달이 태양을 가리는 모습, 중요 자원인 ‘스파이스’를 채굴하기 위해 착륙하는 굴착기의 모습 등, <듄> 시리즈만의 독특한 모습들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해질 무렵의 아리키스는 주인공 ‘챠니’의 대사처럼 입이 벌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펼쳐진다.


1편에서 탄탄하게 구성해 둔 세계관 덕에 대가문들과 부족들의 문화, 풍습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었으며, 복잡하고 이질적인 외계의 세계관에 몰입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는 대단한 공을 들인 미술과 디자인 덕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작은 소품, 복식부터 무기, 건축 등에 익숙한 문화권의 요소들을 <듄>만의 방식으로 각색해 적용한 덕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하코넨’ 행성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호전적이고 냉혹한 ‘하코넨’의 성격을 독재 국가 군대의 모습이라던지, 검투사들의 결투 등으로 표현한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폭죽조차 그들만의 방식으로 터트리는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하코넨' 가문의 독특한 분위기가 드러나는 검투 장면은 그 자체로 보는 맛이 있다. (출처:IMDB)


<운명 앞에서 고뇌하는 구원자>

1편에서 예고한 구원자 ‘폴’의 여정은 <듄:파트 2>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영화 중반부까지 ‘폴’은 ‘프레멘’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예언’을 부정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프레멘’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을수록 구원자, ‘리산-알-가입’에 더 가까워지는 자신의 상황을 보면서 긴 고뇌에 빠진다.


영화는 방황하는 ‘폴’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꽤나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다소 지루함이 느껴지는 장면이었지만, 이후 펼쳐진 ‘폴’의 결정과 행동을 보고 나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면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폴’이 기나긴 고뇌 끝에 자신의 정체성을 수많은 프레멘들 앞에서 포효하듯 선언하는 장면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굉장하다.


‘챠니’는 영화에서 ‘폴’의 인간성이자 양심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악몽과 예언 앞에서 고통받는 ‘폴’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둘의 관계에서 ‘챠니’의 대사들은 많은 복선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말라는 대사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의 ‘폴’을 더욱 자극하는 말이 되었을 것이며, 아라키스의 사막에게 언제나 이방인이라는 말은 자신을 ‘외계’의 목소리 ‘리산-알-가입’으로 명명하면서 현실이 된다.


폴이 예언 속 구원자임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분노와 환희가 섞인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출처:IMDB)


<차가운 분노>

영화는 후반부의 대규모 전쟁 장면을 웅장하고도 스펙터클 하게 그려내지만, 하코넨과 황제의 군대를 섬멸하는 프레멘의 모습을 멋있거나 화려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이는 1편에서부터 이어진 드니 빌뇌브만의 서늘한 연출방식의 연장이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폴’의 전쟁이 권력에 대한 복수가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한 분노에 가깝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미래를 보기 전의 ‘폴’은 프레멘 부족의 해방과 가문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캐릭터였지만,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미래를 보게 된 이후의 ‘폴’은 예언의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자신 앞에 펼쳐질 죽음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듯하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길은 예언자 집단 ‘베네 게세리트’들의 계획으로 이미 만들어진 길이었으며, 운명을 거부하려 했지만, 결국 ‘폴’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폴’의 전쟁은 비극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이자, 운명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듄>의 구원자 이야기가 흥미로운 점은 ‘폴’의 서사가 평범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개인적인 비극을 함께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가문의 복수와 프레멘의 해방을 동시에 성취한 ‘폴’이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리산-알-가입’으로서는 성공의 이야기이지만, ‘폴’으로서는 비극일 것이다.


정치의 달인이자 어둠 속 배후인 '베네 게세리트'의 권모술수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출처:IMDB)


<후회 없는 선택>

사실 디테일이 어떻니, 구원자가 어떻니, 원작 소설이 어떻니 하는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듄: 파트 2>는 상업영화 그 자체로서도 훌륭한 영화이며, ‘듄’ 시리즈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이해 없이도 영화를 즐기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영화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티모시 샬라메’, ‘젠데이아 콜먼’부터, ‘레베카 퍼거슨’, ‘조쉬 브롤린’, ‘플로렌스 퓨’와 같은 한 가닥 하는 배우들을 한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스타 캐스팅도 눈을 즐겁게 한다. 특히 ‘폴’을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는 그가 그저 잘생긴 외모 덕에 스타반열에 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당당히 증명한다.


영화관을 채우는 사운드와 음악 또한 훌륭하기에 가능한 많은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상영관에서 관람하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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