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튼 아카데미> 영화 리뷰
볼거리 중심의 대작 영화들이 즐비한 최근의 개봉작들에 비하면 <바튼 아카데미>는 다소 평범한 드라마를 다루고 있음에도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느끼기 어려운 따듯한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특별한 기교 없이 이야기의 힘만으로 충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던 작품이었다.
영화의 원제 ‘The Holdovers’를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남겨진 사람들’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영화는 몇 주간의 크리스마스 시즌임에도 각자의 사정으로 기숙학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남겨진 선생님, 직원,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상처받은 채로 남겨진 이들이 서로의 슬픔과 상처를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딱 어울리는 영화였다.
영화는 기숙학교 ‘바튼 아카데미’에 남겨진 밉상 선생님 ‘폴’과 문제아 ‘털리’,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주방장 ‘메리’, 이들 3명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할 일이라곤 다음 학기 역사수업 예습, 크리스마스이브에 먹을 야채 다듬기 정도가 전부인 지루한 나날을 보내면서 남겨진 이들은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각자의 상처와 어둠을 위로한다.
상처받은 이들이 공감하면서 치유받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사건들 덕분에 지루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생각보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훌륭한 덕분에 영화에 몰입감이 상당했다. 특히 선생님 ‘폴’을 연기한 ‘폴 지아마티’와 주방장 ‘메리’를 연기한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이 두 배우의 연기가 탁월하다. 원칙주의자에 고집불통인 ‘폴’과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슬픔에 냉소적일 수밖에 없는 ‘메리’, 이 두 캐릭터의 앙상블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1970년 미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는 베트남 전쟁과 냉전으로 지쳐있는 당시 미국사회의 피로감을 담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주방장 ‘메리’의 아들은 대학교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해 참전하자마자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으며, ‘털리’는 기숙학교에서 군사학교로 전학을 가게 될까 불안에 떤다. 술집에서는 전쟁에서 손을 잃은 청년이 술에 취해 있는 등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젊음을 보내는 당시 청춘들의 불안함과 상처가 영화 곳곳에서 느껴졌다.
영화가 따듯하게 느껴지는 것은 캐릭터 각자가 숨겨왔던 상처와 아픔들을 고백하고, 서로에게 위로받는다는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치 오래된 카메라로 촬영한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의 질감과 연출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필름으로 촬영한 듯한 거친 영상과 투박한 촬영, 오려 붙인 것 같은 고전적인 편집 방식은 1970년대 미국의 감성을 담아내는데 최적의 연출이었다.
거대 자본들이 투자된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려운 최근의 영화 시장에서 <바튼 아카데미>처럼 상대적으로 작고 소소한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반가웠다. 언제나 크고 작은 비판을 달고 다니는 ‘아카데미 시상식’이지만, 한 명의 영화 팬이자, 영화관을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되는 연말 연초의 아카데미 시즌은 언제나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