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 영화 리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는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다. <송곳니>, <더 랍스터>, <킬링디어> 그리고 가장 최근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까지, 그의 세계관은 언제나 독창적이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불쾌했다. 영화에서 펼쳐지는 어지러운 이야기들은 끝을 향해 묵묵하게 전진할 뿐, 영화 속 설정들에 당위를 부여하거나, 인물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구태여 관객에게 설명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어디에도 없던 독창적인 세계관을 냉혹한 시선으로 그려낸 차가운 신화이자, 의도적으로 관객의 불편한 곳을 건드려 현실을 환기하는 뒤틀린 거울이다.
말하자면 그의 영화는 현실에서 통용되는 상식과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영화이기도 한데, 그의 신작 <가여운 것들> 또한 그러했다. 영화는 태아의 두뇌를 성인 여성의 몸에 이식하여 탄생한 ‘벨라 벡스터’의 이야기는 설정 자체로 도발적이며, 폭력 그리고 육체와 성(性)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사전 정보 없이 관람하는 관객들은 적잖이 당황할만한 적나라한 묘사가 수시로 등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이야기에 필요한 묘사였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탐구하는 기이한 시선>
스코틀랜드 작가의 동명의 원작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가여운 것들>은 영화의 설정 자체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다만, 영화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다루기보다는 창조된 존재가 인격체로서 성장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형이상항적 질문에 좀 더 집중한다.
어린아이의 두뇌와 성인 여성의 육체를 가진 ‘벨라’는 영화 초반 육체와 정신이 어긋나 있어, 성인임에도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지만, 세상과 소통하면서 점차 어른으로서 변화한다. ‘벨라’의 성장은 영화가 가진 가장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인데, 몸짓과 말이 변화하는 모습에는 한 명의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이 오롯이 압축되어 있다.
‘벨라’의 삶 속에는 사랑과 권태, 배신과 환희, 인간의 무기력함과 강인함이 모두 담겨있다. 자신을 창조한 ‘갓윈 벡스터’와 그의 조수 ‘맥스 맥캔들리스’로부터 받던 조건 없는 사랑과 호기심과 욕망에 기인한 ‘던컨 웨더번’의 이기적인 사랑, 기아로 죽어가는 타인을 보며 느낀 연민의 감정, 그러나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며 느낀 무력함까지 인생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 사건들 속에서 ‘벨라’는 비로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주체성을 찾는다, ‘벨라’의 기구하고도 아름다운 모험은 인간의 삶을 축약한 우화이자 탐구의 과정이다.
<흑백에서 화려함으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답게 기이한 이미지들을 보여주는데, 미니멀하고 절제되어 있던 과거 작품들보다는 바로 이전 작품이었던 <더 페이버릿>의 비주얼과 좀 더 유사한 화려함이 묻어있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마치 판타지 장르를 보는 것만 같은 비현실적이면서도 황홀한 비주얼을 보여준다. 화면이 휘어져 보일 정도로 왜곡된 화면과 형형색색의 미술, 의상은 <더 페이버릿>의 미장센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압도적이고 화려하다.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소음과 음악 사이 어딘가에 있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음악 또한 인상적이다.
사실상 ‘벨라’를 연기한 ‘엠마 스톤’의 원맨쇼와 다름없는 열연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어린아이부터 성숙한 어른의 모습까지 보여준 ‘엠마 스톤’의 연기에서 이제는 내공이 느껴지는 것 같다. ‘갓윈’을 연기한 ‘윌렘 대포’의 뭉클한 연기와 ‘던컨’을 연기한 ‘마크 러팔로’의 익살스럽고 얄미운 연기 또한 대단하다.
<순수한 어른>
개인적으로도 파블로 피카소가 남긴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이다.’라는 말을 믿고, 또 좋아하는데, <가여운 것들>이 파격적이고 어색한 이유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어른이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린아이처럼 거침없이 도전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할 줄 알며, 감정에 솔직한 ‘벨라’처럼 살지 못하기 때문에 ‘벨라’의 모습이 불편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러한 ‘벨라’조차 점차 성장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을 갖추어 나가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을 초월해 모든 것을 편견 없이 수용하고 더 나은 것을 찾아 나아가는 진취적인 ‘벨라’의 태도는 성숙한 인간이라고 보기에 모자람이 없다.
새로운 것을 경험했을 때 있는 그대로 기뻐하고 슬퍼하는 어린아이의 시선을 가진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우리의 삶을 반성하게 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예술’, 그리고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들 중 가장 결말이 명료하고 뒷맛이 깔끔한 영화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가여운 것들’을 바라보는 ‘벨라’의 시선에서 아주 조금의 온기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가 연출한 영화 중 가장 따듯하고 인간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