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 디셈버> 영화 리뷰
<벨벳 골드마인>, <아임 낫 데어> 그리고 <캐롤>로 유명한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 영화 <메이 디셈버>는 거의 모든 그의 영화가 그렇듯 사회적인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24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관객의 이목을 끌지만, 자유로운 연출 방식을 보여주는 ‘토드 헤인즈’ 감독답게 관객과 영화 사이를 허무는 과감한 시도가 좀 더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줄리안 무어’, ‘나탈리 포트만’ 두 배우의 열연도 훌륭하지만,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찰스 멜튼’의 연기 또한 훌륭했다. 그가 연기한 ‘조 유’는 어느 순간 인간적으로 성숙하는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어른의 모습을 한 중학생 같은 어리숙한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특히 배우로서 실존하는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노력하는 ‘엘리자베스’의 고군분투를 통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풀리지 않는 난제이자 신기루 같은 것임을 말하는 영화의 독특한 시선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이전에 느꼈던 적 없던, 정교하게 세공된 서늘함과 불쾌감을 동시에 유발한다.
실존 인물로서의 ‘그레이시’를 연기하는 ‘엘리자베스’의 나이가 36살로 설정된 것부터 흥미롭다. ‘그레이시’가 중학생이었던 남편, ‘조 유’를 만났던 나이가 36살이었으며,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영화 속 현재의 ‘조 유’의 나이도 36살이다. 즉, ‘엘리자베스’는 과거의 ‘그레이시’와 지금의 ‘조 유’를 연결하는 캐릭터이며, 동시에 그 둘 모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온갖 난리를 겪은 후 마침내 ‘그레이시’를 연기하는 엘리자베스의 마지막 모습에서 그녀가 얼마나 인간성이 결여된 인물인지, 그녀가 갈망하던 ‘진짜’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관객은 마주하게 된다.
영화의 초반, 엘리자베스는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릴 정도로 시끄러웠던 스캔들 속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반성하지 않는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 없다며 비난하고, 비웃는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졸업식 장면에서 그런 엘리자베스에게 자신을 정말 이해하느냐라고 말하며 으스대는 그레이시의 대사를 통해 둘의 위치는 역전되고, 그레이스를 이해한다고 자신했던 엘리자베스는 오한을 느낀 듯 몸서리친다.
엘리자베스가 이해한다고 믿었던 그레이시는 타인의 시선과 발언을 통해 왜곡된 ‘가짜’였으며, 그녀가 엘리자베스에 대해 ‘정말로’ 아는 것이라고는 무슨 화장품을 쓰는지가 전부였다는 초라한 진실 앞에서 한없이 비참해진다.
즉, 엘리자베스는 영화에서 짓궂은 질문을 던진 남학생에게 대답했던 것처럼, 쾌락의 감정이 ‘연기’인지, ‘진짜’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감정의 오류를 겪는 인물이며, 대중들이 열광하는 소위 ‘메소드’적 연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이고 거짓된 것인지를 영화는 마지막 카메라 속 엘리자베스를 통해 관객을 조롱한다.
이러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관객들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그레이시’를 연기하는 ‘엘리자베스’를 보며 그것을 진짜인 것처럼 슬퍼하고 기뻐하며 열광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열광했던 모든 ‘연기’들은 마지막의 엘리자베스의 연기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스태프들과 카메라들로 정교하게 조작된 것일 뿐이다. ‘진짜’에 가까워졌다며 다시 연기하겠다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에서 서늘한 공허함과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풀고 내고자 하는 인간의 허망한 그늘이 느껴졌다.
타인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 그 사람이 지나온 역사를 들춰보는 것은 현실에는 먼지로 변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무형의 것을 탐구하는 것과 같다. 인생을 겪었던 당사자조차 솔직할 수 없는 ‘삶’의 모순을 타인이 극복하려는 시도는 영화 속 엘리자베스의 존재처럼 그 자체로 넌센스와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