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딜레탕트 Apr 22. 2024

<로봇 드림>
지금의 나를 만든 당신에게 감사해

<로봇 드림> 영화 리뷰

별다른 기대 없이 관람했던 영화가 기대 이상으로 좋은 영화였을 때의 짜릿함은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다. 보통은 포스터와 티저 예고편 정도만 확인하고 영화를 관람하는 편인데, <로봇 드림>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티저 영상에서 느껴지는 몽글몽글한 생동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동화책 같은 그림체와 분위기와 사랑스러운 강아지 캐릭터, 그리고 강아지의 친구로 보이는 로봇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에 남았다.


그러나 영화는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긴 여운을 주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귀여운 동물들과 로봇이 등장하는 우정 혹은 사랑 영화인 줄만 알았는데, <주토피아>, <그녀>, <애프터양>, 그리고 <라라랜드>까지, 지난 인생에서 만났던 좋은 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이자, 가슴 한 켠을 아릿하게 만드는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아래 글에는 <로봇 드림>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봇 드림> 포스터 (출처:IMDB)


영화를 보고 가장 처음 놀랐던 것은 대사가 없다는 점이었다. 대사가 없는 애니메이션이라니. 일종의 무성(無聲)영화인 것인데, 이러한 선택은 여러 가지 의미로 성공적이었다. 우선 대사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방식으로만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실사 영화에 비하면 좀 더 유연한 연출이 가능한 ‘애니메이션’은 그것을 수행하는데 최적의 연출방식이었다. 영화 속 강아지와 로봇의 교감과 각각의 캐릭터가 느끼는 여러 감정은 상상력 넘치는 연출 덕분에 별다른 대사 없이도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된다. 또한, 대사가 없는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은 상대적으로 이미지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데, 그 덕분에 영화 속 캐릭터들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이 역시 영화의 몰입에 큰 도움을 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 귀여운 비주얼 또한 매력적이었다. 동화책에 나올법한 여러 가지 동물 캐릭터들도 좋았지만, 만화 혹은 카툰에서 볼법한 가늘고 깔끔한 펜 선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간결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을 보는 것, 그 자체로도 좋았지만 이러한 미니멀한 연출 덕분에 이야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애니메이션임에도 어쨌든 복잡한 뉴욕을 배경으로 꽤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에 자칫하면 이야기의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울 수 있었는데, 캐릭터들과 사물을 정확히 인식하게 해주는 디자인 덕분에 이야기의 속도에 맞게 느긋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영화의 배경이 뉴욕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가상의 세계가 아닌 실제 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것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도회적이고 차가운 느낌과 꿈과 낭만의 도시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뉴욕’의 양면성이 영화의 주제와 닿아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깔끔한 펜 선에 감탄하다 그래픽 노블 원작이 있다는 것을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출처:IMDB)


영화는 강아지, 그러니까 시놉시스에 따르면 ‘도그’가 혼자 지내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친구 로봇 모델 ‘로봇’을 구매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친구 혹은 애인이 생긴 ‘도그’는 ‘로봇’과 함께 휴식을 즐기고 춤도 추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지만, 해변에서 ‘로봇’이 고장 나 버리면서 ‘로봇’과 이별하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이다. 영화 중반부까지는 ‘도그’와 ‘로봇’의 행복한 순간들, 그리고 ‘로봇’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도그’의 모습이 주로 그려진다면, ‘로봇’을 찾기 위해서는 1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도그’가 받아들인 중반부 이후부터는 ‘도그’와 ‘로봇’ 각각의 모험이 펼쳐진다. ‘도그’와 ‘로봇’ 각자가 새로운 캐릭터들을 만나는 이후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영화는 인생에 찾아오는 새로운 만남과 이별을 말한다.


‘도그’는 한동안 ‘로봇’을 잊지 못해 힘들어하다, 이내 새로운 만남을 위해 스키 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연날리기 축제에 가보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 친구들은 ‘도그’를 무시하기 일쑤고, 애써 만난 ‘오리’는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해보기도 전에 유럽으로 떠나버렸다. 상심한 ‘도그’는 결국 ‘로봇’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친구 로봇을 구매하게 된다. ‘도그’가 새로운 로봇을 구매하는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로봇’을 배신한 장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로봇’과 비슷한 누군가를 찾아낸 ‘도그’의 모습이 지난 인생에서 좋은 추억을 함께한 사람과 닮은 존재를 찾아 나서는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도그’가 새로 만나게 된 로봇과 함께 해변을 다시 찾았을 때, 이전과는 다르게 로봇의 곳곳에 기름칠을 열심히 해주는 모습은 지나간 인연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후회를 담고 있어 뭉클하다.


영화 초반부 '도그'와 '로봇'의 모험은 '사랑스러움'이라는 단어 그 자체 (출처:IMDB)


해변에 남겨진 ‘로봇’은 자신을 이용하기만 하는 이기적인 존재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새’ 가족 같은 좋은 인연들을 만나기도 한다. 가슴 아픈 몇몇 사건들을 겪고 나서야 다시 한번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줄 수리공 ‘너구리’를 만나 행복해진다.


‘도그’의 이야기보다 ‘로봇’의 이야기가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은 ‘로봇’의 인생에서 ‘사랑’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아프게 만들거나 이용하는 것에만 혈안이 된 이기적인 존재들을 지나 그 끝에 만나게 된 수리공 ‘너구리’는 ‘로봇’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더 좋은 것들로 바꿔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을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도그’였기에, ‘로봇’은 자신의 가슴에 ‘도그’와 함께 춤을 추며 즐거웠던 순간의 노래를 품고 살아간다.


분명 이별의 순간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종종 멈칫거리게 만들고, 지나간 후회의 순간과 만남을 붙잡게 만든다. 그러나 지나간 만남이 있어 지금 내 옆의 소중한 사람에게 더 잘할 수 있고, 지난 인연과 함께했던 추억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지금을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도그’는 ‘로봇’을 닮았지만 다른 노란 로봇과, ‘로봇’은 자신을 치유해 준 ‘너구리’와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해 준 당신과 나를 고쳐준 당신에게 감사해 (출처:IMDB)


매거진의 이전글 <고질라X콩 뉴엠파이어> 체급에 어울리는 무대가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