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글쓰기』-34

손주에게 보내는 편지(16)

by 현목

순유 순규에게(28)

글쓰기 ‘노우하우’의 전수



너희도 지난 일주일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마 엄마, 아빠한테서 꾸지람을 들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도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너희들을 위해서 한다고 하더라도 본인들이 별로 내키지 않는 것을 해야 하는 회의감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병원 개업을 1988년에 했다. 학교에 남지 않고 바로 개업을 하려고 하면 내가 레지던트를 마친 1982년에 했어야 했지만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그렇게 되지 못했다. 너희 아빠가 직장생활에 정신이 없듯이 나도 개업을 하고는 빚을 내어 병원을 구입한 것, 아파트도 장만해야 했기에 환자 보는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너희 아빠인 태근이, 큰아빠인 태우의 공부에 전혀 관심을 쏟지 못했다. 거의 할머니가 도맡아서 돌보았다. 이게 나는 항상 마음의 빚이 되어 있다.


그런 탓인지 나는 내 손주에게는 교육에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이제 내 나이 73세이다. 아마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10년쯤까지는 정신적으로 활동할 수 있겠으나 그걸 넘으면 비록 육체는 살아 있어도 노년의 정신력으로는 겨우 제 앞가림하기도 바쁠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지만 내가 내 동료 의사와 비교하면 항상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비록 실패한 개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풍족한 부는 축적하지 못했다. 내가 좀 더 많은 돈을 벌었다면 내 아들들과 손주들에게 더 나은 풍족한 환경을 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늘 가지고 있다.


내가 대학생 때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글쓰기에 대한 내 나름 50년 동안 축적해온 ‘노하우’(know-how)를 손주들에게 전해는 주는 것이 나의 남은 생애 동안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백일장에 장원한 바도 없고 신춘문예에 입선한 경력도 없는,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내용이 백퍼센트 훌륭한 내용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실력은 없어도 그래도 들은 풍월은 있어서 적어도 이런 글은 좋은 글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기에 그나마 내가 손주들에게 가르쳐 주면 좋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한 것이다.


나의 욕심은 그랬지만 아무리 어리지만 너희들도 나름의 생각도 있고 좋고 싫고의 감정도 있는 법이다. 어떤 면에서는 너희들의 기호(즐기고 좋아함)를 무시하고 억지로 시킨 점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너희들이 대학생이라면 너희들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해 준다. 왜냐하면 대학생은 성인이니까 그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대신에 그에 대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예를 들어서 그들이 판단하여 거부했을 때 그 결과 나중에 손해가 나면 그것은 그들의 책임인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성인이 아니고 어린이, 혹은 소년이기에 너희들의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질 수가 없는 나이이다. 따라서 엄마나 아빠 같은 어른이 너희들만의 판단에 따라서 행할 수 없는 소이(일이 생기게 된 원인)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오직 너희들의 판단만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어느 정도는 어른들의 말을 신뢰하고 따라야 한다.


특히 순규는 특강을 하자고 하니까 단호히 싫다고 했다. 자신의 호오(좋고 싫음)를 명확히 표현하는 것도 좋은 개성일 수도 있으나 잘못하면 충분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여 오판(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약점이 있다. 어쨌든 특강은 이번에 거부했으니까 너의 의견을 존중해서 안 하겠다. 다만 매달하는 은유와 글쓰기는 이미 네가 한다고 동의했으니까 약속은 지켜야 한다. 이제껏 충실히 약속을 지킨 편도 아니지만 말이다.


논술은 할아버지의 능력을 벗어난 주제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에게 논술에 대한 설명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아주 기초적인 논술 책 세 권 정도를 내가 인터넷 서점에서 골라서(그것도 다 절판이 되어 없는 것을) 그냥 요점 정리하여 도움을 주는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학년이 올라가면 필요하다면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전문학원에서 배워야 할 것 같다. 그전에 최소한의 지식만이라도 얻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책을 소개한 것이니 스스로 읽고 이해하기 바란다.


이번에 사실은 너희들도 놓아주고 나도 ‘글쓰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마음먹었단다. 일주일 동안 소식도 없기에 이제는 글쓰기도, 편지쓰기도 그만하자고 다짐하고 있던 차에 순유에게서 카톡으로 ‘오늘은 논술의 정석 책 다 읽고 내주신 문제 다 풀었습니다’라는 글을 받았다. 그 순간 과연 내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득이 되는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비록 우리가 수행하는 작업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간신히 끌고 가더라도, 혹은 개중에는 기어코 거부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지금 깨끗이 끝내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까지 해오던 작업을 계속하기로 한다. 물론 예전처럼 강요는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너희는 아직 성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가 한달에 한번 쓰는 편지를 그냥 할아버지가 또 편지를 쓰는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나 나에게는 내 인생을 회고하고 정리한다는 의미가 크다. 원래 나는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쓰려고 마음먹었다. 그게 잘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내가 없어지고 난 날 그 편지를 모아서 책으로 내주면 그게 나를 추억하는 하나의 방편이 되지 않을까 했다. 비록 자랑할 만한 것은 별로 없고 흠결 투성이지만 우리의 할아버지는 이렇게 살다갔구나 하는 하나의 표지는 되지 않을까 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글을 쓰면서 젊을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혼자서 느낄 때가 있다. 옛말에 사람이 늙으면 지혜가 늘어난다고 했다. 지혜는 인생을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인 것 같다. 나도 밥 벌어 먹자고 허둥지둥 살 때는 몰랐는데 산으로 치면 이제 정상에 가까이 다가가니 풍경의 전체가 보이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역량이 별로 안 되니 비봉산 정도의 높이이고 나보다 훌륭한 사람은 백두산, 혹은 에베레스트산 높이에서 관망할 것이다. 반면에 너희들은 이제 겨우 산자락에 걸쳐서 보이는 것은 나무나 숲밖에 없다. 전체가 아니라 부분만 보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자신을 너무 과시하면 안 되고 겸손해야 한다.


내가 최근에 읽은 책으로 『생의 수레바퀴』가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정신과 의사가 지은 책인데 자신의 자서전에 해당된다. 그녀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가서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책 내용은 너희들 하고는 거리가 먼 것인데, 그 책 중에 내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인간 존재의 본질과 생명체의 본질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 생존하는 것에 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사람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한평생 무언가 이룬다고 야단법석했지만 결국 산다는 것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다. 이 단순히 사는 것은 내 살아온 발자국들을 돌아보니 세 가지였다. 첫째는 세끼 따뜻한 밥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고, 둘째는 인간관계를 착하게 하고, 셋째는 그것이 허공이 될지 몰라도 자신의 꿈 하나 정도는 이룰려고 애쓰다가 가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는데 나중에 내가 ‘인생 삼훈(三訓)이라는 제목으로 수필을 쓰려고 한다. 그때 보여줄 게.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특강은 안 하고, 글쓰기는 예전대로 하되 각자의 판단과 양심에 맡기지만 그렇다고 자의적( 제멋대로 하는 것)으로 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깊이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럼 이만 총총.

2021.7.26. 월요일

진주에서, 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