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 심리학』 마틴 셀리그만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여 만족을 느끼라’

by 현목

어느 신문에서 소개한 책, 『훌륭한 인생에 관한 여섯 개의 신화』를 읽다가 저자인 조엘 쿠퍼먼이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 심리학』에서 인용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 셀리그만의 책을 샀습니다.


제가 이즈음 생각하는 것은 제가 정신적으로 그래도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어쩌면 10년 혹은 15년쯤 될 것인데 그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제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껏 살아온 행동, 혹은 사고의 범위 내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하고 실천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나이에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입니다. 그것은 언제 저에게 닥쳐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것은 막상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 제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마무리를 해야 할까하는 점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살아온 삶이 그런대로 행복하였다고 고백하면서 생을 마감하면 좋겠습니다. 그럴려면 지금부터라도 행복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정리를 할까 하는 점에서 셀리그만의 책은 제게 여러 가지로 시사가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생명을 받고 성장하다 보니 자아가 생겼고 그 자아가 깃든 육체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육체를 자신의 것으로 알고 70년 80년을 주인 행세를 하고 지내왔습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육체를 떠납니다. 그 후 자신의 육체라고 주인 노릇하던 자아는 어떻게 되는지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누구도 그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이러리라고 하는 믿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행복이란 사전적 정의로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묘하게도 ‘만족과 기쁨’이라는 주제는 셀리그만이 언급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유교 문화에서는 사람이 사는 동안 행복하려면 오복을 누려야 한다고 합니다. 장수와 부유,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하다는 강녕(康寧),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한다는 유호덕(攸好德), 살다가 편안히 죽음에 이른다는 고종명(考終命)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섯 가지를 살면서 향유한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다섯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생명이 살아있는 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셀리그만은 행복에는 적어도 세 가지의 전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태어나면서 이미 설정된 행복의 범위가 있습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유전적인 특성입니다. 이것은 노력에 의해 조금 개선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한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외적 환경으로서 돈이라든가 결혼, 사회적인 환경, 나이, 건강, 교육, 성, 종교 등이 있습니다. 이런 외적 요인은 개인의 노력에 의해 행복을 만드는데 긍정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세 번째가 내적 환경인 자발적 요인입니다. 셀리그만은 특히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많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이 세 번째에 대해 설명을 주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과거의 긍정 정서, 미래의 긍정 정서, 현재의 긍정 정서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기억에 대해서 긍정 정서를 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것들은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감사의 마음을 갖자고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긍정 정서로는 희망과 낙관성으로 대하자고 했습니다. 문제는 현재의 긍정 정서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긍정 정서에는 크게 나누어 쾌락과 만족이 있습니다. 쾌락은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쾌락으로 나누어지는데 쾌락이 반드시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쾌락 자체가 우리의 삶을 행복이나 의미로 나아가는 원동력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쾌락은 원초적인 반응으로서 순간적이기 때문입니다.


셀리그만이 이 책에서 어쩌면 가장 역점을 두었다고 하는 것이 ‘만족’이라는 부분일 것입니다. 만족 자체는 의식이나 감정을 가지지 않습니다. 쾌락처럼 순간적이지도 않습니다. 만족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하는 일, 가장 비근한 예가 자신이 가진 직업이 되겠고, 그 외에는 등산이나 운동 같은 취미 활동도 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3000년 동안 역사를 이끌어 오면서 중시했던 여섯 가지의 미덕이 있다는 것을 통계에 의해 밝혀낸 것을 셀리그만이 착안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①지혜와 지식 ②용기 ③사랑과 인간애 ④정의감 ⑤절제력 ⑥영성과 초월성이었습니다. 그것을 다시 24가지로 세분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이 이 여섯 가지 미덕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과 이 여섯 가지 가운데 자신이 특별히 가진 강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것은 몰라도 창의성이 있다든지, 친절하다든지, 자기 통제력이 있다든지, 유머 감각이 있다든지 자기나름의 장점―셀리그만은 이를 강점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만―을 일상생활을 하면서 충분히 발휘하여 만족감을 느끼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약점에 연연하여 고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자신이 친절하다면 타인을 위해 발휘한 친절에 대해 그대로 행복감으로 연결하라고 말합니다.


셀리그만은 어떤 면에서 보면 진화론자이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것은 그의 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한 삶을 넘어 의미 있는 삶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삶을 통찰해 보건대 그들은 더 큰 무엇에 의지함으로써 비신자들보다도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지 그는 종교를 타기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비신자도 의미 있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더 큰 지혜, 더 큰 선에로 귀의하는, 더 큰 무엇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하직할 때 어떤 지성으로 어떤 정서로 맞이할 것인가 할 때 우리는 셀리그만이 말한 현재의 긍정 정서를 어떤 식으로 영위하여 갈지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에 떠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행복을 말한다면, 좋은 직업을 가지고 수입도 넉넉하고, 건강하고, 아들딸도 잘 교육을 시켜서 남부러운 일류대학을 나오게 하고, 배우자도 남들이 보기에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이고, 거주하는 주택도 통상적인 평수가 아니라 거대한 저택에서 살고, 어디 가나 남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라면 행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얼마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무지렁이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이 한 세상을 살면서 행복이란 감정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이 살아야 할까요? 제게는 이것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런 사람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그래도 한 세상 나는 행복했었노라’고 말할 수 있는 논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에 셀리그만은 답을 준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