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꾸가 기운을 차렸습니다. 집안이 초비상이어서 혹시라도 초상을 치루는 것은 아닌가 하고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주인님이 삐꾸가 죽으면 신디 옆에다가 묻어주자고 하는 말까지 나는 들었습니다. 나는 아직 죽음이라는 게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나이가 사오십대는 되었는지 몰라도 나의 건강은 아직 별로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밥도 주는 대로 잘 먹는 편이니까요.
삐꾸는 거의 48시간 동안 밥을 한 톨도 안 먹고 물만 조금 먹었습니다. 먹은 게 없으니 자연히 변은 거의 나오지 않고 모래에다가 눈 소변 양도 무척이나 작아서 주인님이 이만저만 걱정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만 이틀이 지나자 자기 밥을 깨작거리며 조금 먹자 주인님이 삐꾸가 좋아하는 연어 통조림을 사왔습니다. 연어 통조림은 대개 삐꾸 몫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떡고물이 떨어지는 때가 있으니 나도 그 냄새를 맡으면 환장하여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도 주인님은 내게는 쥐꼬리만큼 주고 몽땅 삐꾸에게 줍니다. 이번에는 사태가 사태인 만큼 나도 체면을 차려서 달라하지 않고 삐꾸가 제발 연어를 먹고 몸을 추슬러 주었으면 했습니다.
베란다로 들어간 주인님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보, 삐꾸가 똥 쌌어.”
살다가 남 똥 싼 것 보고 그것이 기뻐서 펄쩍 뛰는 것은 과문이지만 처음 보았습니다. 여자 주인님도 무슨 보물을 찾아 쳐다보는 것처럼 신기하다는 듯이 삐꾸의 똥을 감격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오래 있다가 누어서인지 어른 엄지손가락만한 것이 돌처럼 단단해 보였습니다. 삐꾸에게 연어 통조림을 주니 당장 식욕이 동하는지 재빠르게 달려들면서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습니다. 내가 한 입도 먹지 못해도 나도 흐뭇하였습니다. 앙숙인 삐꾸가 그래도 이제 원기를 회복한다니 내 일처럼 반가웠습니다.
삐꾸의 식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요량인지 심지어는 내 밥까지 퍼다가 삐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원래 혀가 짧기는 합니다. 나야 없어서 못 먹지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닌데 삐꾸는 걸핏하면 밥을 남겼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그를 참으로 한심한 놈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얻어 먹는 주제에 이것저것 따질 게 있느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나와는 달리 출신이 양반 자손인지 도도한 면이 있기는 합니다. 그것에 대해 내가 혹시 열등감이라고 갖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런 면은 도무지 내게는 구미가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이고 지금이야 삐꾸가 까탈을 부리든 그것은 별로 상관은 안 합니다. 그래도 불쌍한 녀석이 빨리 나아서 냐야옹 하는 소리를 듣고 싶으니까요.
오늘은 여자 주인이 이마트에 가서 연어를 한 뭉치 사왔습니다. 삐꾸 건강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주인님의 갸륵한 마음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지만 나는 좀 섭섭하기는 하데요. 나는 돌쇠처럼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자격지심이 들더라구요. 주인님의 진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지금은 나는 아무도 안중에 없이 삐꾸한테만 온통 마음이 쏠려 있습니다. 시간만 나면 걔 곁에 가는데 당연하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역시 견 마음이 그렇지는 않습디다.
주인님이 거실에 걸어둔 메모판에다가 오늘은 매직펜으로 이런 글자를 사자성어처럼 적어놓았습니다. 靜安慮得. 나야 그 말의 음도 뜻도 모르지요. 단지 이렇게 쓰여있다고 그린 것뿐입니다. 여자 주인이 물었습니다. 남자 주인이 대학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면서 먼저 마음이 고요해야 평안이 오고 평안이 와야 생각을 할 수 있고 생각을 해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말을 하는데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처음 말, 마음을 고요히 한다는 말은 내가 정말 동의할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도 없으면 정적 속에서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있으니까요. 할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도사가 된 것은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