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사이에 집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삐꾸가 밥을 전혀 먹지 않는 것입니다. 밥도 그렇고 물도 별로 마시지 않아 고양이 대소변을 받는 모래에 삐구의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주인 남자는 시간 날 때마다 베란다에 가서 삐꾸를 쓰다듬어 주면서 위로의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주인 남자가 삐꾸의 나이가 14살이라고 하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집고양이 수명이 14-15년 정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길고양이는 생활 환경이 열악해서인지 수명이 6-7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삐꾸의 목을 연신 간지러 주는데 삐꾸가 특히 거기를 간지러 주면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거의 기성을 지를 정도로 그르럭 그르럭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올 정도니까요. 내가 그 동안 삐꾸를 우습게 알고 그를 하대하였지만 사실 그도 나와 같이 불쌍한 존재인 겁니다. 나는 멀리서 그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나도 세월이 흘러서 지금 삐꾸 나이만큼 되면 영락없이 같은 길을 가야 하는 신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동병상련이랄까 그의 수척한 몰골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니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합니다만.
내가 이 집에 올 때도 이미 있던 신디는 14년이나 되어 병들어서 절뚝거리며 거의 인사불성 상태였습니다. 그때는 내가 하도 어려서 세상천지를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신디의 신세가 지금의 삐꾸보다 엄청 힘들었던 것입니다. 주인님은 하도 안 되어 사람 먹는 수면제도 먹였을 정도였으니까요. 그가 사는 날이 그야말로 그에게는 지옥 같은 날이 지속되니까 주인님이 결심을 하고 안락사를 시키더군요. 물론 주인님은 몹시 슬퍼했지만 나를 보더니 기분이 급변하여 나를 어르면서 슬픔을 달래더군요.
사실 삐꾸의 사연을 알고 보면 그도 참 불쌍한 녀석입니다. 주인님의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철없이 삐꾸와 후추라는 고양이 둘을 기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삐꾸는 태어나서부터 세상을 어떻게나 무서워하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그저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서 숨기 일쑤였습니다. 같이 있던 후추는 털 색깔이 온통 까마면서 꼬리 끝에만 하얗게 되어 있어 아주 도도하게 생겼습니다. 삐꾸는 그 당시 완전히 후추의 종처럼 놀았습니다. 후추가 냐야옹 하면 삐꾸는 숨기 바빴습니다. 밥도 후추가 다 먹고 난 찌끄러기를 먹었습니다.
아들이 한국 군대에 입대할 나이가 되어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실 고민을 좀 했답니다. 고양이 둘을 방면하면 미국에서는 당장 잡아다가 안락사시킨다고 하니 차마 인정상 그러지도 못하고 한국으로 데려왔습니다. 내가 이 집에 왔을 때는 후추는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후추 이 녀석이 슬슬 눈치를 보더니 자기가 왕 노릇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터줏 대감인 신디가 밥을 먹으려고 하면 와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면서 신디를 물었습니다. 그것을 어느 날 주인님에게 들켰습니다. 신디의 몸을 구석구석 살피던 주인은 경악하여 다음 날로 당장 서울에 있는 아들 친구 집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놈은 그래도 족보가 있어서 원하는 사람이 있었던 게지요.
사실 후추가 사라지고 나서 제일 혜택을 본 것이 삐꾸였지요. 그는 그제서야 밥도 제대로 먹고 몸에 살도 조금씩 찌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처음에 이 집에 왔을 때 그는 그래도 고양이가 되어서 어슬렁거리고 다녔지만 그전까지는 정말 매일 컴컴한 구석에 숨어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 그도 어느덧 시간이 흘러서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주인님은 그게 안 되어서인지 보통 때보다 더 자주 들어가서 그를 얼러주며 시간을 보내 줍니다만 그에게 걸린 석양의 그림자는 지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생명 있는 것의 유한함의 서러움은 인간이나 나 같은 개나 아니 땅 위를 기어다니는 곤충이나 붙박이로 있는 식물이나 다 한가지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