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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라 Aug 07. 2023

3. 나는 타지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외로움 극복기 1

서울에 상경해 대학교를 다니면 더 넓은 세상에 나가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미래를 상상했지만 모든 상황은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2022년 3월,

입학 초반 코로나는 끊임없이 심해졌고 지금처럼 마스크 해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학교에 직접 가는 건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있었고 거의 대부분이 내 방 노트북을 켜고 그 속에서 수업을 듣는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었다. 처음에 한두 번은 좋았다. 낯선 서울 지하철을 여러 번 타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고, 수업 시간에 비대면 인지라 간간이 딴짓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좋았다. 그런데, 하루 온종일 방 안에 갇혀 노트북 하나만 들고 있는 삶은 나를 답답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노트북 화면 너머 수업을 들으며 일방적으로 교수님만 이야기하는 수업이 지속되었고 그 탓에 동기들과 한마디 나눠본 대화도 없어 3월이 절반 가까이 흘러가도록 그 어떤 누구와도 친해질 수 없었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 나가기 버튼을 누르고 난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내 방의 적막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인지도 20년 만에 처음 알게 되었다.


자취를 하다 보면 어려운 점은 많다. 요리도, 청소도, 설거지도 그 외에 모든 집안일도 스스로 척척 해내야 하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지만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단 하나였다.


'적막감'

내 집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과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조금의 소음도 없이 적막한 것.


때론 사람 사는 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처음 느껴보는 가족의 빈자리는 나를 어른이 되게 만들었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라 그럭저럭 버틸만했고, 낮에는 창문 밖이 밝아 견딜만했지만 나를 가장 무너지게 만드는 시간은 고요한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내 집 문을 열고 적막감을 박차고 나왔다.


서울집 말고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이 동네를 걸으며 무작정 근처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3월의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는 날씨였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인조 불빛 조형물이 환히 빛을 밝혀 주었고 나는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반려견 산책을 하는 이, 러닝을 하는 이, 세탁소에서 맡긴 옷을 찾아가는 이,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 택배를 배달하는 이, 벤치에 앉아 전화하는 이...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도 깨어있는 이들은 무수히 많았다. 내가 살던 고향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온기를 느끼기는커녕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한가운데 서있는 나는 더 사무치게 외로웠다. 사람들은 바깥에 많았지만 모두 목적지가 있었다. 때가 되면 어느 순간 모두 발걸음을 돌려 자신이 돌아가야 할 집으로 갔다. 이렇게 많은 이들 틈에서 나를 쳐다보는 이 하나 없다는 그 사실이, 이 많고 많은 집들 중에 내가 돌아갈 집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적막감만이 감도는 내 작은 집보다는 사람 사는 곳처럼 느껴지는 우리 집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있는 편이 더 나았다. 아무런 목적도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곳을 배회하다 지쳐 집에 들어오는 날들도 여럿이었다.



한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다 저녁이 되어 그친 어느 날이었다. 서울에서 새로 산 통굽의 워커를 사놓고 학교를 가지 않으니 신을 일이 없어 꽤 오랜 시간 신발장안에 방치했던 걸 오랜만에 꺼냈다. 그리고 그 워커를 신고 아파트 놀이터에 갔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시각, 추적이던 빗물이 마른 그네를 골라 탔다. 오랜만에 발을 구르고, 바람을 가르며 타는 그네는 재미있었다.


어릴 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위험하다며 저녁이 될 무렵 언제나 저녁 먹으러 얼른 들어오라며 아파트 창문 너머로 소리치던 엄마의 목소리는 이제 없다. 늦은 밤에도 아무런 겁도 없이 그네를 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예전과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그리 생각했다.


외롭고 고독할수록 끊임없이 나 자신을 부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이겨내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모든 것에 긍정성 투여하기'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라도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버티기 시작했다. 힘들다고 모든 걸 포기해 버릴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매일 밤, 외로웠지만 이 시간은 언젠가 지나고 보면 웃음 지으며 회상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감사하자 생각했다.



모든 것에 감사하자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내 마음과는 달리 워커를 신고 걸었던 내 발은 단단히 더 조여만 왔다. 유난히 딱딱한 신발에 아무리 신발끈을 느슨하게 묶어도 내 발에 맞지 않아 발가락과 뒤꿈치가 아파왔다. 아무리 내가 안간힘 써봐도 신발이 더 조여 오는 것처럼 내 상황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암시해 주는 듯했다.


나이 스무 살에 신발 때문에 발이 아프다고 엉엉 울어본 건 처음이었다. 그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엉엉 울었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이들은 아무도 나를 알아 봐주지 않았다. 발도 마음도 모든 게 아팠다. 지긋지긋한 고향 부산을 떠나겠다며 훌쩍 올라온 서울살이는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겨우 아픈 발을 이끌고 다시 돌아온 집에도 어둠이 내려앉았다. 현관문을 닫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으로 다가가니 열어놓은 문틈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그래 또 살아가야지."

그리 결심했다. 작은 내 집은 나를 단단히 고립되게 하는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작은 희망 하나라도 붙들고 이 고독 속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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