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느끼다
나는 하루키의 책을 읽게 된 이후 책을 읽는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책을 느낀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하루키의 묘사는 굉장히 다감각적이다. 하루키는 소설 속 상황에서 음악이나 술 등을 함께, 그것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서 책을 더욱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미각과 후각, 청각적인 감각도 느끼게 되어 책을 읽는 게 아닌 책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재즈, 비틀즈, 위스키 등에 빠지게 되었다. 하루키의 책을 좋아한다면 그것들에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 어떠한 책을 읽든 그 책에 맞는 음악, 술, 음식 등을 골라 함께 즐기곤 하였다. 와인에 알맞는 음식을 페어링하듯이 책에도 적절한 음악, 음식 등을 섞어서 책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많은 이들이 책을 더욱 풍부하게 경험하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사람들은 책을 책상에 딱 붙어 앉아 모든 집중을 쏟아부으며 거행하는 성스러운 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의복을 벗고 음악과 술을 곁들여 책을 느낀다면, 책이라는 것에 부담을 덜고 다채롭게 책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음악과 좋아하는 음료들과 함께 책을 한 번 느껴보세요.
레코드는 모두 여섯 장뿐이었고, 그 순환의 처음은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이고 마지막은 빌 에번스의 <왈츠 포 데비>였다.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나오코는 혼자서 말을 이어갔다. - 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셸>을 아주 멋들어지게 쳤다.
"참 좋은 곡이야. 나, 이거 정말 좋아해." 레이코 씨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마치 아주 넓은 초원에 부드럽게 비가 내리는 것 같은 곡."
그다음 그녀는 <노웨어 맨>을 치고, <줄리아>를 쳤다. 때로 기타를 치면서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와인 한 모금, 그리고 담배를 피웠다. - 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그녀는 책을 읽으며 커티삭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사이에 블라우스 단추 하나를 자연스럽게 풀었다. 밴드는 <이츠 온리 어 페이퍼 문>을 연주하고 있었다. 피아니스트가 1절만 노래했다. 온더록이 나오자 그녀는 그것을 입으로 옮겨와 한 모금 홀짝였다. 1Q84 문학동네
"원하시는 브랜드가 있습니까?" 바텐더가 물었다.
"딱히 원하는 건 없어. 아무거나 괜찮아요." 남자가 말했다. 조용하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간사이 사투리가 슬쩍 잡힌다. 그러더니 남자는 문득 생각난 듯 커티삭이 있느냐고 물었다. 있다고 바텐더는 말했다. - 1Q84 문학동네
아마다는 종이가방에서 시바스 리갈을 꺼내 뚜껑을 땄다. 나는 잔을 두 개 챙기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냈다. 위스키를 잔에 다르니 무척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가까운 사람이 마음을 여는 듯한 소리다. 우리는 위스키를 마시며 음식 준비를 했다. - 기사단장 죽이기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