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 숲길, 꽃, 사랑
"꽃 향기를 맡을 때 우리가 고개를 숙여야 하잖아. 이게 무엇을 뜻하는 지 알아?"
"음.. 뭔데요? 잘 모르겠어요."
"고개를 수구리는 건 꽃에게 인사하는 거야. 꽃에게 당신의 향기를 잠시 맡는 실례를 해도 되겠냐고 묻는 예의인거지."
"오 그럴 법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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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하 - <그대 내 품에>를 들으면서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5월 우리 동네의 풍경은 봄이 완연하였다. 등하교를 할 때마다 나는 집 앞 숲길을 반드시 지나가야 했는데, 그곳은 언제나 형형색색의 꽃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라일락의 진분홍과 벚꽃의 연분홍 등이 그 색채를 이루는 것들이었다. 그 색채들과 향기들은 오월의 햇빛에 드리워져 나를 따스하게 반겨주었다. 특히 라일락은 내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의 향기를 선사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충분히 숙이고 그 냄새를 맡보았다.
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꽃들을 마주하기 위해 멈춰서서 몸을 기울이는 행위에는 나름의 용기와 관찰력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꽃이 주위에 있다는 걸 모르고 지나치거나 알더라도 구태여 걸음을 멈춰서 그것들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잠시 멈춰 그것들을 마주보고 살을 부대낀다면 그날의 행복을 그곳에서 다 찾을 수 있다. 코에 꽃의 흔적들이 묻은 것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친구가 코에 무언가 묻었다고 말을 해줘야만 그제서야 꽃 향기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오히려 그것들은 내게 꽃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낀 증거로서 세상에 자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생각한게 있어. 꽃의 향기를 진정으로 더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거야."
"오 뭐지? 음.. '꽃의 귀중함과 역사를 생각하고 맡아야 한다' 이에요?"
"아니! 꽃에게 예의를 더욱 갖추는 방법에 대한 거야."
"음.. 잘 모르겠어요.."
"뭐냐면.. 꽃에게 신사처럼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이는 거야. 위대한 개츠비 같은 영화보면 그 시대에 할법한 신사적 인사들 있잖아. 모자를 멋지게 벗고 손을 가슴팍에 올리고 한쪽 다리는 뒤로 재끼는!"
s는 나의 신사적 몸짓에 밝은 웃음을 보였다. 꽃들에게 인사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녀를 웃음짓게 하고파 한 행동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그녀의 향기를 마주하고파 그녀에게 예의를 갖춘 것이기도 하였다. 나는 그 순간 내 예의가 그녀에게 좋은 호의로 다가가 그녀 마음 함께 하기를 꿈꾸었다. 그 꿈들은 우리 주위에 나부낀 꽃자락들에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나는 그녀 향기와 꽃 향기들을 구분할 수 없을 지점에 닿았고 내 영혼은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으로 이르렀다. 이렇듯 우리 영혼은 황홀한 사랑 앞에서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곤 한다.
주위를 감싸던 라일락들은 나의 신사적 인사에 답장하듯 우리들에게 향기를 더욱 내뿜어주고 있었다. 결혼식장 신랑 신부를 감싸는 안개 효과처럼 안개꽃 향기는 우리들을 둘러싸고 우리의 영원한 사랑을 응원해주었다. 노오란 햇살은 자신을 빼먹는 것이 서운하다며 그 빛자락을 담뿍 뽐내었고 그것에 드리워진 꽃들은 더욱 아름다워보였다. s와 나의 웃음소리까지 더해져 우리 사랑 소리와 향기가 더욱 커져가는 봄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