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엄마는 매주 목욕탕에 갔다. 그간 묵은 때를 시원하게 벗겨내고 수직으로 내리꽂는 물줄기를 어깨와 뒷목에 맞으며 고된 피로를 풀기 위해서였다. 나에게 목욕탕은 재밌으면서도 지치는 곳이었다. 호기롭게 들어서지만 쓰러질 듯 나오는 곳이었다.
‘ 뜨거운 물에 몸을 불려 때를 민다. 나의 몸 모든 곳을 구석구석 미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손이 닿지 않는 곳도 있다. 등. 엄마는 나의 등을 밀어주고 나도 엄마 등을 밀어준다. 엄마 등이 굉장히 넓어 보인다. 땅따먹기 하듯 빠뜨리는 부분 없이 밀어낸다. 내 살갗과는 다른 느낌이다.
등이라는 부위는 원래 이렇게 두꺼운 걸까.
몸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이 끝나면 미지근한 물에 들어간다. 엄마는 물줄기 밑에 서서 하염없이 물을 맞는다. 그동안 나는 하지도 못하는 수영 흉내를 내보고, 숨을 참고 머리까지 집어넣어 보고, 발장구를 쳤다가, 몸에 힘을 완전히 빼고 둥둥 떠올랐다가, 보글거리는 물방울을 손안에 가둬봤다가 가만히 있는다... ‘
열심히 움직이던 나는 배터리가 방전된 인형처럼 멍하니 있었다. 목욕탕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시계를 바라보면 이곳에 온 지 몇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집에 가자고 먼저 칭얼거리지 않는 한 엄마는 하루종일 물을 맞으며 서있을 기세였다.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을 일깨워주고 간신히 욕탕에서 나올 수 있었다. 온몸이 처지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물기를 닦고 옷을 입고 젖은 머리를 말리며 투명해서 안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냉장고를 쳐다보았다. 알록달록 음료수 캔들과 먹음직스러운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내 또래 아이들의 손에 쥐여있는 딸기우유를 보았다. 배가 고팠던 나도 딸기우유가 너무 먹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무시로 일관했다. 사달라고 떼를 쓰며 눈물을 뚝뚝 흘려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비싸."
목욕탕 안에서 파는 음료는 비싸서 안된다. 엄마가 음료를 사려면 마트에서 2개에서 내지 4개 묶음으로 몇십 퍼센트의 할인이 들어갔어야 했다. 매주 가는 목욕탕이지만 그 뒤로도 딸기우유를 먹는 일은 없었다.
항상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발걸음을 재촉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지치고 쓰러질 것 같은 곳.
어린시절의 목욕탕이었다.
나는 슈퍼마켓이나 문방구에서 초콜릿을 몇백 원에 쉽게 사 먹을 수 있었지만, 과일가게에서 딸기를 사 먹을 순 없었다. 딸기, 나한테는 딸기가 부잣집 아이들이 먹는 과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딸기우유 표지에 그려진 탐스러운 딸기와 분홍빛 일렁임이 그리도 달콤해 보였다. 초코우유가 아닌 딸기우유가 먹고 싶었다.
지금은 가끔씩 그때를 회상하며 딸기우유를 집는다. 그때의 어린아이가 나에게 딸기우유를 집으라고 하는 것 같다. 매번 마실 때마다 특유의 달콤함에 놀란다. 나는 다음에도 못 먹어봤다는 듯이 딸기우유를 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