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A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A강사는 수학공부방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녀는 현재도 보드게임 강사로서 쉴 틈없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냥 보드게임 강사 계속 하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제가 벌서 55세가 되어가잖아요. 보드게임 강사들은 많아지고 아무래도 몇 년 후에는 설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A강사의 말을 듣는 내가 웃었다. 몇 년 전에 내가 했던 고민이었고, 대사였다. 나도 보드게임 강사를 그만둬야 겠다는 고민을 심각하게 한 적이 있었다. 역량강화로 서울에 교육 받으러 가면 해가 바뀔수록 보드게임 강사들의 연령은 낮아지고 있었다. 한자, 바둑, 전래놀이는 나이 많은 강사들도 괜찮았지만. 보드게임은 젊은 선생님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업을 잘 못할 것이라는 고민보다는 누가 나를 뽑아줄까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면접에서 떨어질 것이다. 또는 지원하면 나이보고 잘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수강생들이 젊고 예쁜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말에 공감을 했던 것도 같다. 결국 다른 일을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번에 내게 전화로 상담을 한 선생님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내 고민은 사무실에 쌓여 있는 보드게임이 보면서 끝이 났다. 저 많은 보드게임을 어떻게 할까? 강의를 할 때 가져가면 좋겠다 싶어서 차곡차곡 모아둔 게임들. 그만둬야지 하는 순간에도 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은 사고 있었다.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마냥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사 두었던 게임들이 나를 압박했다. 그래 적어도 60까지는 해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60까지.
누군가는 60대에 시작해서 바라는 것을 얻기도 한다. 60세가 넘은 나이에 데뷔한 시니어 모델 '김칠두', 65세에 자신만의 치킨 요리법을 살 사람을 찾아 떠났던 kfc의 창립자 '할랜트 데이비드 샌더스',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던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이들은 모두 늦은 나이에 도전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강사라고 해서 다를까? 도구가 보드게임이라고 다를까? 아마도 누군가는 60세 넘어서 시작을 할 것이다. 실제로 시니어 보드게임 강사도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때 배워서 유치원에 수업을 나갔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 않은가?
A선생님에게 내가 고민해서 얻었던 답들을 하면서 같이 고민을 했다. 그 선생님은 수학과를 나왔지만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싫다고 했었다. 그림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면서 하는 보드게임 수업을 좋아하고 잘한다고 했다. 그림책을 읽어 줄때도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림을 감췄다가 보여주는 방법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했다. 보드게임 수업은 아이들이 즐거워해서 좋다고도 했다. “그럼 그것을 해야죠.” 내 말은 간결했다.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이 좋다면 그것을 해야지 싶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나이 60이 되면 우리는 더욱더 보드게임 교육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쫄지 마라고 했다. 아직 나이 60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난 보드게임 강사라는 직업을 좋아한다. 수강생들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고, 나를 반겨서 좋다. 가방 안을 궁금해 하는 모습이 좋다. 아이들이 게임하면서 즐거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인들, 즐 어른들의 표정도 아이들과 같았다. 어른들은 게임할 때는 누군가의 엄마 아빠가 아닌 한 사람이 되어 책임감을 내려놓고 웃고 떠들었다. 시작할 때는 긴장되어 있던 얼굴에 시간이 지나면서 환하게 피어났다. 이런 순간을 우리는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은가? 그들은 그 시간을 즐거워했고 행복해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보드게임 강사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 모이는 곳에서 보드게임 강사라고 나를 소개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보드게임 이야기를 해준다. 그 중 가족끼리 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집에서 보드게임 하면 초4 아들에게 맨날 져요라고 하면서 웃는 엄마도 있다. 보드게임이 많은 어느 집은 아이들이 보드게임 이름을 적은 종이를 상자에 넣고 한 개씩 뽑아서 그날 할 게임을 정하는 방법을 만들어 냈다고 했다. 성인이 된 세 딸과 가끔 치킨을 사먹기 위해 보드게임을 한다는 집도 보았다. 그들은 내게 무슨 영웅담을 이야기하듯 웃음이 띈 얼굴로 말을 했다. 가족끼리 하는 보드게임은 가족원들 모두 행복해 한다.
난 지금까지는 소극적인 강의를 했다. 나를 찾는 수업이나 공고에 난 수업에만 관심을 가졌다. 난 아이들과의 만남에서는 호기심유발과 뇌와 정서발달에 집중했다. 어른들과의 만남에서는 가벼움과 소통에 중점을 두었다. 시니어분들과의 만남에서는 놀잇감을 소개하듯 보드게임을 소개했다. 가족들간의 보드게임 체험전에서는 소통과 한 개의 추억을 만들어 준다는 생각으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모든 시간에에 최선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필요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도록 했다. 같은 게임이어도 대상별로 강의의 주제와 내용은 달라졌다. 난 이런 보드게임이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좋은 도구가 될 거라는 것을 믿었고, 그 믿음은 맞았다. 아이들은 엉덩이를 들썩었고, 가만히 앉아 게임을 하지 못했다. 어른이라도 다를까? 어른들도 정말 시끄러웠다. 흥분하면 일어나기도 했고, 소리지르기도 했다. 앞에 말하는 강사의 말은 한번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운 나는 이제 두려움을 내려놓기로 했다. 누군가가 불러주는 곳만 찾던 것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내 길을 찾아가기로 했다. 아직 보드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아이들이나 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보드게임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대화가 없는 곳에서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성인들을 만날 것이고, 노인들을 위한 자리도 갈 것이다.
특히 가족끼리 보드게임을 하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 가족끼리 보드게임은 따뜻한 분위기의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집에서 남편은 여행을 가면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보드게임을 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지만 보드게임을 하면 태도가 바뀌었다. 아주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게임을 즐겼다. 혹시나 아이들이 자신의 카드를 볼 것 같으면, 카드를 최대한 자신의 가슴 가까이 가져갔다. 자기 카드 보지 마라고 소리 지르기도 한다. 이건 돌봄교실 아이들이 하는 모습이다. 난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옆에서 크게 웃었다. 이 때의 남편은 아빠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가장도 아니고 그냥 한 초등학생이 다른 초등학생들과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유치하게 삐질지도 모른다. 우리집 아이들은 이런 아빠를 기억한다. 그리고, 아빠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다. 여동생네 가족도 우리집에서 보드게임을 한다. 넷이서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 아빠들은 아이들이라고 잘 봐주지 않는다. 정말 아이들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보드게임 체험전에서 만난 가족들은 보드게임 하면서 정말 즐거워햇다. 나는 이런 모습이 많은 가정에서 보기를 바란다. 이렇게 가족이 앉아 즐겼던 시간들은 아이들은 행복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좋은 추억은 성인이 돼서 힘들 때 좋은 에너지가 되어 살아가는 데 힘이 될 것이다.
난 사람들에게 계속 보드게임을 소개할 것이다. 보드게임을 통해 행복을 전할 것이다. 내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가끔 꺼내어 보면서 실실 웃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것이 가정으로 들어간다면 더욱 행복할 것 같다. 행복을 전하는 강의에는 60이 넘은 강사가 제격일 것 같다. 전래놀이와 바둑과 한자처럼 말이다. 이제 너무 늦었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늙어서 그때는 그만둬야겠다는 말도 되지 않는다. 여기 65세에 이제 막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커널 샌더스의 말을 읽으면 그 말이 쏘옥 들어갈 것이다.
“내가 나의 길을 걸었듯 당신 역시 당신만의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그게 어떤 것이든 결코 하찮치 않습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에 스스로를 거두지 마십시오. 뚝심있게 자신만의 인생을 걸어 나가세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닌지 고민된다면 부디 잊지 마세요. 오늘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가장 빠른 날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