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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게 Feb 08. 2022

자가 증명 3종 세트

6번째 이사로 비로소 처음 집주인이 되었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그동안 이사가 잦았던 터라 이제 더 이상 떠돌지 말고 평생을 살자는 계획을 갖고 입성한 집이었다.   

   

우선 거실에 대못을 시원하게 박고 거실 벽을 가득 채우는 대형 동양화 액자부터 걸어 놓았다. 여백의 미가 있는 풍경화가 오래 두고 보기엔 좋을 것이다. 베란다에는 화분대를 제작해서 크고 작은 화분들로 가득 채웠다. 야자, 파키라 같은 큰 키 화분들과 벤자민 같은 중간 키 화분들, 베고니아, 신고디움 같은 작은 키 화분들, 그리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아이비 류의 행인 플랜트 화분들...  베란다부터 거실에까지 대략 30여 개의 화분에 햇살이 비추니 연두와 초록의 어우러짐이 마치 작은 식물원을 옮겨 놓은 듯 싱그러웠다. 여기에 자연을 더 들여놓고 싶었다. 그래서 열대어를 키우게 되었다. 세입자로 살면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형 동양화 아래 앉아서 식물원과 아쿠아리움을 즐기는데 누가 우리를 보고 집주인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이렇게 자가 증명 3종 세트가 완성되었다.     


디스커스라는 열대어가 있다. 20여 년 전에도 이미 한 마리에 10만 원이었다. 수족관 사장님의 설명에 의하면 디스커스는 사람하고 대화를 할 만큼 영특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열대어 애호가라면 누구나 로망 하는 명실공히 민물 열대어의 황제라는 것이다. 디스커스 예찬론이 과장만은 아닌 듯 디스커스에게서 총기와 품격이 느껴졌다. 처음부터 어려운 문제를 척 풀어내서 월반하는 기쁨을 누려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예산을 훨씬 넘기는 가격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것을 눈치챈 수족관 사장님이 “얘 네들이 새끼를 낳으면 돈도 벌 수 있다”는 설명을 슬쩍 덧붙인다. 그래서 디스커스 4마리를 키우게 되었다.    

  

대화를 한다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먹이를 줄 때마다 수족관에 코를 박고 나를 알아보는 기미가 있는지 살펴본다. 먹느라고 정신없을 뿐 아직 케미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영특한 아이들이 행여 나의 과잉 관심에 부담을 느끼면 성장에 안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바심을 내지는 않기로 했다. 언젠가는 꼬리를 흔들며 먼저 대화를 하자는 신호를 보내 줄 터이니.     


어느 날, 디스커스 한 마리가 살짝 기울었나 싶더니 며칠 후에 배를 위로하고 고꾸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한 마리가 같은 모습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20만 원이 순식간에 날라 갔다. 아직 대화도 못 텃 건만 그리고 언젠가는 돈도 벌어 준다더니 이렇게 황망하게 떠나갈 줄이야.  그러나 돈이고 뭐고 더는 이 귀한 것들이 속수무책으로 고꾸라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유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남은 두 마리를 비밀봉지에 담아 서둘러 수족관 가게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디스커스는 워낙 까다로운 어종이라 초보자가 키우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더욱이 디스커스라는 이름도 원형의 디스크처럼 둥글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지 대화하고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수족관 사장님의 과대광고였는지 무지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럼 그렇지 돌고래도 아니고 손바닥 만한 물고기한테 바랄 걸 바래야지...     


열대어를 키운다는 것은 대단한 노동을 필요로 했다. 수족관 청소용역 비용을 아껴보겠다고 직접 청소를 하는 날에는 김장김치 담그는 것만큼의 어수선함과 노동이 발생한다. 집안에 비린내가 진동하고, 거실은 물바다가 되곤 했다. 그에 비하면 식물 기르는 것은 노동의 양과 질에서 한결 우아했다. 그러나 그 많던 화분도 몇 개만 남기고 주택을 개조해서 식당을 하고 있는 이웃에게 기증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이유는 이사  때문이었다. 평생을 살게 될 줄 알았던 첫 소유 집에서 1년도 못살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이후 계속된 몇 번의 이사에도 홀로 연명하던 동양화 역시 호감을 보이는 이삿짐센터 사람에게 주고 말았다. 가파른 첩첩 산 중에 산새들이 날아다니는 마치 무릉도원 같은 동양화도 집안 분위기를 낡게 만드는데 한몫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 인생 최대의 호화스러움이었던 자가 증명 3종 세트는 사라졌다.

   

잦은 이사는 구매에 기준을 만들어 주었다. 다음 이사에 가지고 갈 수 있으면 필요한 것이고 처분할 것 같으면 거의 구매를 하지 않는 실용적 아비투스가 형성되었다. 손 가는 일도 적고 아까울 것도 없으니 좋기는 하다. 게다가 이런 삶을 ‘미니멀 라이프’ 라며 치켜세워주는 세간의 분위기 또한 개념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나를 독려한다.     

 

그러나 집을 단장하고 동식물을 돌보며 살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애틋한 향수와 더해져서 진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세상일에 무엇이 더 좋고 안 좋고를 규정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서둘러 판단하고 장담하는 일은 이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측을 따돌리고 예상을 뒤엎으며 사소하게 엇나간 사건 하나로 전혀 다른 곳으로 굴러가기도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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