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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게 Jul 20. 2022

미안하고 고마웠던 아이

오랜만에 집안일을 하면서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쌓아두었던 옷가지들도 정리하고 평소에는 손이 닿지 않던 구석의 먼지들을 들어내면서 좀 힘들게 몸을 써 보았다. 아이들이 독립을 하고 강아지도 저 세상으로 간 후로는 집이 잘 더러워지지 않는다. 하루 건너 한 번씩 세탁기를 돌리던 1년 전이 까마득히 먼 옛날만 같다. 하나 씩 빠져나갈 때마다 집안의 공기가 완연히 달라지는 것을 느끼니 사람이든 강아지든 하나의 생명에는 하나의 우주가 존재했구나 실감하고 있다.     


해마다 그랬듯이 올 초에도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새로운 것에 더 마음이 쏠리던 예전의 계획에 비하면 시작과 함께 이미 절반은 이룬 것이나 다름없는 난이도 약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너무 쉬운 것이 문제였을까. 어느 때보다도 흥미가 빨리 증발해 버렸다. 이만큼 살아도 나를 이렇게 모르나 자괴감에 의기소침하기도 하다. 그러던 차에 계획에 없었던 그림 동화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더니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창작의 세계로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혹은 내 삶이 나의 의지대로 되고 있지 않아 위축될 때,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손쉬운 의식으로 청소를 한다더니 지금의 나의 상황이 딱 그 모양새이다.     


ESG 환경 동화라는 틀이 주어져 있어서 순수한 창작 동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대놓고 환경이 아닌, 동심 판타지는 지키며 너무 겁주지 않고 과하게 암울하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상상력 결핍과 역량 부족으로 지지부진 발목이 잡혀 있는 중이다. 단지 ESG동화이니만큼 재활용 종이를 이용해서 종이접기를 하면 그 자체로 50점은 먹고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를 하면서...  

   

청소를 마치고서 집 근처 공원을 거닐었다. 공원에는 강아지와 견주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 며칠 비 때문에 외출을 못해서인지 여느 때보다도 견공들의 움직임엔 활기가 넘친다. 주인이 던진 공을 전력 질주해서 물어다 주는 강아지들의 진지한 모습은 언제 보다도 귀엽다.   

   

나도 견주인 적이 있었다. 주택에 살 때는 진돗개를, 아파트에서는 미니핀을 키웠다.

진돗개는 가끔 신발을 자근자근 물어뜯어 놓는 것만 조심하면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미니핀은 워낙 식탐이 유별나고 점프력이 뛰어나 음식을 높은 곳에 잘 숨겨 놓아야 했다. 그럼에도 주인의 작은 부주의함도 놓치지 않는 영민함으로 알아서 스스로 찾아 먹는 것 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쓰레기통이었다. 잠시 방심하면 어느새 쓰레기통을 쓰러뜨려 난장판을 만들어 놓곤 했다. 그럴 때는 잠시 격리되어 있어야 했다. 선처가 있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줄도 알았다. 간절한 눈빛에 속아 혹시 교정도 되지 않을까 여러 번 착각을 한 적도 있으나 결국 비닐을 공중에 매달아 쓰레기통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강아지가 떠난 지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아직도 비닐 쓰레기통은 공중에 매달려 있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니핀이 묻혀 있는 단풍나무 아래에서 잠시 머물렀다. 강아지가 묻힌 자리에 낙엽이 지고 땅이 얼고 봄이 지나 이젠 초록이 무성해졌다. 며칠 장맛비도 대차게 내렸으니 한 줌도 채 안 되던 재는 이미 땅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강아지를 키울 것 같지는 않다. 강아지가 주었던 진심 어린 충정에 비해서 여러 가지 이유를 핑계 삼아 제대로 돌려주지 않았던 것이 가슴 한편에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문득 강아지를 동화 속에 등장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미니핀 같이 존재가 꼭 필요할 것 같다. 지치지 않는 부지런함, 굴복을 모르는 강한 의지, 그리고 변치 않는 의리...

미니핀을 지구 환경지킴이로 채용을 한다면 손색이 없을 듯하다.


색종이로 귀엽게 환생한 강아지와  플로깅하는 것을  상상해 본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그려보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미안하고 고마웠던 아이... 오늘 그 아이가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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