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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게 Aug 24. 2022

내가 몰랐던 세상

판단이 빠르고 바르며 일단 시작을 한 일에 대해서는 회의를 갖거나 후회하지 않고, 약자 편에 서 있지만 지나친 요구에는 단호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사람, 긍정적이고  씩씩하며 솔직한 사람에게 나는 깊은 호감을 느낀다. 바로 K가 그렇다.    

  

K와는 시니어 인지교육활동가를 하면서 처음 만났다. 함께 팀이 되어서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활동보고를 할 때에 저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나 감탄을 하곤 했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걸어 전화번호를 교환한 이후에는 가끔 만나기도 하며 주기적으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었는데 그녀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성인 발달장애인 활동 지원을 하고 있는데 결원이 생겨서  내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힘은 들지만 나에게 분명 보람이 있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될 거라면서...     


당황스러웠다. 나이가 들면 누구도 예외 없이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 그들을 돌보는 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고 나 역시도 할 수 있을 때에 어느 정도 동참을 하며 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상에 발달장애인까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K가 나를 잘못 판단했거나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당장은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동참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려본다는 심정으로..     


힘들 것이라는 언질도 있었고 나름 각오도 지금까지 했던 어떤 일보다도 더 단단히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장을 보자마자 장애인들이 공격성이 보였을 때 어떻게 방어해야 할까를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모습이 낯설고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으니...

     

공포감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의사소통이었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서 통역을 해 달라고  선생님들을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귀찮게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각기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 말을 희한하게 알아듣는 것이 너무 신기할 뿐이었다.     


낯설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를 향해서 탐색과 경계의 눈빛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금방 친숙함을 표현하는 이도 있었다. 오늘 처음 왔다는 J가 그랬다.

내게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CU 있어요?”

은밀히 묻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생리대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CU는 아니지만 건물1층에 편의점이 있으니 같이 가 보자고 했다. 그러나 원하는 대답이 그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스마트 폰 선물함에 CU 오레오 과자 쿠폰이 1개 들어 있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2월 생일에 받은 것을 아직도 먹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활동을 마치고 차를 마시며 K와 마주 앉았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는 이야기, 내가 할 일인지 아닌지 구분하라는 얘기, 그래야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다는 이야기,

7년 베테랑 다운 조언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서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는 나의 모습을 그녀도 상상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아마존의 밀림 같다는 생각을 해요. 아마존의 밀림이 지구를 정화시키듯이  이들이 너무 착하고 순수해서  세상을 정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단 하루, 몇 시간의 체험만으로도 K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을 한다.

처음에는 그들의 공격성을 걱정했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방어조차도 하지 못하는 여리고 연약한 존재이며 상상 이상으로 착하다는 것을 활동을 시작한 지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K도 알고 있으니 못하겠다고 해도 이해는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지금까지 이 엄청난 일을 누군가는 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새 마음이 숙연해진다. 내가 몰랐던 세상, 몰랐던 사람들, 산에서 굴러 떨어지고 있는 돌덩이를 두 손으로 받아내고 있는 듯한 절박한 현장의 모습, 그리고 오레오 과자 쿠폰을 보여주던 J의 반짝거리던 눈동자를 떠올리면 체력 운운하면서 도망갈 생각부터 하지는 말아야지 마음을 다잡게 된다.   

 

계속 오늘 같지는 않을 테니...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기는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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