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배를 드는 기분으로 쓰는 소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드디어 윤석열이 파면됐다. 윤석열이 집권한지 2년 330일(1060일)만에 이 정권이 끝났다. 사실 나는 윤석열이 등장했던 시점부터 윤석열을 싫어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윤석열 정권은 지금까지 역대 최악의 정권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정치ㆍ경제ㆍ외교ㆍ안보 등 그 모든 부분에서 잘한게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나는 박근혜 정권에 반대하는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에 참여하면서 학생운동 및 사회운동에 뛰어들었고, 2016년 탄핵 정국때도 공익 근무 신분에도 탄핵 집회에 열심히 나갔다. 그 당시는 박근혜의 멍청함에 대해 욕을 많이 했는데, 윤석열 정권의 물가상승 등을 보면 차라리 박근혜 정권의 경제상황이 나아 보일 정도다. 윤석열 보다는 경제가 나았다.
물론 그 당시도 그렇고ㆍ지금도 그렇고 박근혜 정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소위 이명박ㆍ박근혜 보다 훨씬 더 못했다. 말 그대로 윤석열 정권은 모든 면에서 최악이었다. 안보라는 부분에선 아무런 대책없는 한ㆍ미ㆍ일 동맹을 외치며 남북관계를 돌이키기 매우 힘든 수준의 파국으로 이끌었고, 존재자체가 어이없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권에 대해 무기ㆍ자금을 원없이 퍼주었다.
사실 내가 계엄 선포와 더불어 윤석열에게 가장 많은 분노와 증오를 느낀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가뜩이나 물가상승은 지속적이었고, 먹고살기 조차 힘든 상황에서 전쟁을 끝낼 생각이 전혀 없는 젤렌스키 파시스트 정권에 돈을 퍼준다? 아무리 봐도 미친 짓이었다. 거기다 북한군 파병 가짜뉴스는 "이거 윤석열이가 한국군 파병하려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이 한국은 파병 국가가 되지 않았다. 만약 윤석열이 월남 파병을 운운하며 한국군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했다면, 한국은 패전국의 멍에와 더불어 심각한 병력 손실을 입었을 거다. 한국의 우크라이나 파병 중단은 천운이었다.
솔직히 경제 부분도 윤석열은 매우 무능했다. 소위 전 정권인 문재인 정권 보다도 민생을 책임지지 않았다. 복지? 재난지원금? 물가 안정? 임금 인상? 뭐 이런거 윤석열이 제대로 한게 없다고 본다. 그러니 우리들 삶만 힘들어졌다. 그런데도 윤석열이 잘한다고 칭찬하는 국민의힘류 인간들과 아스팔트 태극기 들을 보면 말 그대로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었다.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패악질 그리고 한심함을 논하자면 진짜 책 한권 써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내가 생각한 것 상식 밖의 일이었다. 나는 계엄 선포가 과거 군사정권 때의 일인줄 알았다. 근데 윤석열은 민주당을 종북 좌빨이라며, 이들을 척결하겠다는 명분으로 계엄을 선포했다는게 믿기지 않았을 정도다. 솔직히 계엄 선포때 많이 무서웠다. 헬기ㆍ장갑차ㆍ그리고 중무장한 특수부대가 국회에 침투했다. 소위 극우 태극기들은 이딴걸 정당화 했는데, 아무리 봐도 전부다 제정신이 아니다.
비상계엄 선포때는 집에 있어서 현장에서의 집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12월 4일 다음날부터 나는 집회에 참여했다. 반드시 저 윤석열을 탄핵하고 끝장내야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2016년 박근혜때 느낀 촛불항쟁의 그 느낌을 윤석열 탄핵안 가결때 현장에서 느꼈다. 눈물도 났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시간 날때 윤석열 파면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사실 나 또한 생활비 버는것과 논문 쓰는게 바빠 자주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시간날때 참여했다. 그렇게 4월이 왔다. 4월 4일 오전 11시가 선고날로 결정됐다. 문제는 내 알바 타이밍과 겹쳤다는 거다.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주 2일씩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고 있다.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알바를 하는데, 4월 3일 목요일 오후 11시에 알바를 하면 다음날인 오전 7시에 퇴근하게 된다. 그래서 재판날 헌재로 갈지 고민을 했다.
나는 잠을 포기하고 헌재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퇴근 후 헌재 앞으로 달려 나갔다. 솔직히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참여한게 참 자랑스럽다. 헌법재판소 판결날 나는 민중들과 함께 파면을 외쳤다. 만약 기각됐다면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바리케이트를 뚫고 전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기각되었다면, 제2의 4.19가 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인민들과 함께 헌재를 너머 전진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노정협 및 진보당 동지들과 함께 헌재 바로 앞에서 투쟁했다.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판결문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환호했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파면이 가결되었을 때, 우리는 말 그대로 환호를 넘어 기쁨의 웃음을 보이고, 눈물을 흘렸으며 승리를 외쳤다. 그 현장에서 모든 걸 지켜본 나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기쁨의 눈믈을 흘렸고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박근혜 파면 때 느낀 것 그 이상이었다.
결국 대중이 승리했다. 너무나도 기쁘다. 어제도 오늘도 내 가족과 함께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다. 아무튼 너무 행복하다. 사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그래도 지금 당장을 축배를 들자.
지금까지 윤석열의 파면을 바란 분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