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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기 Sep 18. 2024

미국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본질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민주화는 아프가니스탄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2001년 9.11 테러: 9.11 테러로 3,000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했다.

21세기는 미국의 침략전쟁으로 시작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라덴을 포함한 알카에다 무장 테러단체가 뉴욕에 있는 WTO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 테러를 가했고, 그 결과 3,000명의 미국 민간인이 사망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2,400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는데, 단 한 번의 테러로 그것보다 더 많은 인명이 사망했다. 9.11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곧바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를 대략 20년간 지배했고, 전쟁에서 탈레반에게 패배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
아프가니스탄 연합군 주둔 지역

아프가니스탄 전쟁 20년 기간 동안 미군 2,500명이 전사했고, 2만 명이 부상당했다. 영국을 포함한 미국 동맹국의 병력은 1,100명이 사망했다. 미국을 따라 한국도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파병했는데, 그 당시 파병왔던 한국군 병사 1명도 탈레반 측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반면에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6만 6,000명이 사망했고, 탈레반은 최소 5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민간인과 군인을 포함하여 이 전쟁에서 최소 20만 명에서 25만 명 이상의 아프가니스탄인이 사망했다. 지난 2021년 SBS에서 인터뷰한 탈레반 대변인 수하힐 샤힌은 아프가니스탄 국민 수십만 명이 미점령군에게 살해당했고미군 폭격기와 드론 공습에 맞아 죽은 비극적인 사연이 아주 많다.”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전쟁 당시 민간인 사망자 대다수는 미군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했던 미군 병사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는 미군
미군을 따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하려 했던 민간인들
항공기에 몸을 싣고 철군하는 미군

미국은 20년간 치른 이 전쟁에 대략 80만 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했다. 그중 가장 많은 병력이 주둔했던 시점은 버락 오바마 정부 때였으며, 2009년에서 2011년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은 12만 명을 돌파했다. 2010년에만 하더라도 미군은 500명이 전사했으며, 오바마가 공약했던 2014년 아프가니스탄 철군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한 일은 과연 무엇일까? 이는 공개된 미국 기밀문서인 <아프가니스탄 페이퍼>에 잘 드러나 있다. 2019년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가 정보공개법을 통해 출판한 <아프가니스탄 페이퍼>에는 부시와 오바마 정권에서 자문을 맡은 미 육군 퇴역 중장 더글라스 류트의 2015년 인터뷰가 실려 있다. 당시의 인터뷰 내용을 보자.     


우리는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우리는 스스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만약 이해했다면 뜬구름 잡는 장밋빛 연설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지만오바마 정부 이전에는 그런 이해를 할 기미도 없었다경제를 예로 들자면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 풍요로운 시장 경제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지만사실 풍요로운 마약 시장을 목표로 잡았을 걸 그랬다제대로 작동하는 시장이 그것밖에 없으니까 말이다무엇을 상상하든 그것보다 더 나쁘다고 장담한다근본적인 이해의 부족과대 포장된 목표과도한 군사력 의존필요한 자원에 대한 인식 부족이 모두 겹쳐있다.”

1975년 미국 대사관의 사이공 철수와 2021년 미국 대사관의 카불 철수를 비교한 사진: 놀랍게도 역사가 반복됐다.
베트남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비교
아프가니스탄 전쟁 희생자 수치

미국을 선두로 한 서방세계의 개입 덕분에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초의 진정한 마약 국가로 변모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연간 아편 생산량은 약 180톤이었지만 미국 침공 이후 1년 만에 3,000톤으로 올랐고, 2007년에는 8,000톤, 2018년에는 9,000톤까지 불어났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 헤로인 생산의 93%를 생산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미국이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옹호했던 친미정부 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3년 뒤인 2004년 기준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아편 수요의 87%를 공급했는데, 이런 사회가 어떻게 정상적인 사회로 탈레반이 통치하는 사회 보다 나은 사회로 평가받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탈레반의 마약 단속을 보도한 MBC 뉴스

오히려 아편과 헤로인은 탈레반이 2021년에 재집권하면서 강력히 단속되고 있고, 생산이 금지됐다. 2023년 4월 연합뉴스 기사인 아프간 탈레반양귀비 단속 강화금지령 이어 경작지 파괴를 보면, 압둘 나파이 타쿠르 탈레반 정부 내무부 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최근 아프간 내 양귀비 재배지 0.63㎢ 이상이 당국에 의해 제거됐다고 밝혔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2023년 11월 한 국내기사인 세계 최대 아편 공급지 아프간..탈레반 금지 조치에 생산 95% 급감을 보면, 탈레반 치하의 아편 생산률은 2022년(350~580톤)에 비해, 2023년(24~38톤)에는 현저히 줄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근거는 탈레반이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다. 거기다 탈레반은 미국이 침공하기 전인 1996년부터 2001년까지 5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한 적이 있었는데, 이 당시 양귀비 단속으로 생산량이 90% 감소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런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2009년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세계 부패지수는 2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같은 해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5위의 최빈국이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인 1인단 GDP는 426달러였으며, 빈부격차는 극심했고, 전체 인구의 68%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깨끗한 식수를 마실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인은 전체 인구의 23%였다. 평균 수명은 43세였으며, 인구의 76%가 문맹이었다. 특히 여성의 문맹률은 86%였고, 전쟁 10년째 되던 2011년 학교에 다니는 아프가니스탄 소녀는 전체 비율의 30%도 안 됐다. 즉 미국은 이처럼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연간 최소 1,000억 달러 이상의 군사비용을 지출했고, 이 중 아프가니스탄 지역 개발에는 20억 달러 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 사실 이런 모습은 탈레반 이전에도 흔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친미정부는 여성 인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미국 또한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탈레반이 집권한 이후나 친미 정부 하에서나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은 큰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미국은 자신들의 전쟁 수행을 위해, 초기에 내세웠던 여성해방 같은 가치는 전혀 실현하지 않았다. 미국이 내세운 일부 여성들의 히잡 탈피나 여성의 대학 진출은 쉽게 말해, 아프가니스탄의 보편적 여성을 위한 정책이 전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1979년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 정부가 그런 가치를 훨씬 더 많이 실현했다. 심지어 미국의 진보센터는 대놓고, 소련도 아프간 재건에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썼다.”라고 표현할 정도이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탈레반 여성인권 문제에만 집중하기 바쁜 친서방 페미니스트들의 경우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외면한다. 한국의 페미니즘 계열 인사들도 그런 모순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정식기사 통과되지 않은 오마이뉴스 생나무 기사지만, 2023년 5월 한 페미니스트 여성이 쓴 아프가니스탄 관련 기사를 우연히 읽은 적이 있었다. 그 기사에서 나온 “2015년도에는 다행히도 아프가니스탄에 미국이 개입해주어 정권이 교체되고 탈레반은 다시 뿔뿔이 흩어졌으며 여성들의 삶도 비교적 자유롭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구절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글쓴이는 페미니스트에 대해 큰 악감정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가 이런 인식을 가진 것에 대해선 안타까울 따름이다.     

탈레반 용의자를 체포한 미군 병사들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미군의 군사작전 과정에서도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미군은 탈레반에 대한 소탕전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친미정부 군대와 함께 민간인들의 대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이 닥쳤으며, 이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에서 현재 민간인들에게 하는 전쟁범죄 및 폭력행위와 일치했다. 또한 미군의 드론 공습으로 적잖은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드론이 투하한 폭탄은 비극적이게도 탈레반 소탕을 빙자하여 민간인을 노렸다.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지방경찰들은 보호 대상인 시골 주민들을 강간하고 살해하기도 했으며, 국립경찰 또한 구금자들에게 조직적으로 고문했다는 정황이 유엔 아프가니스탄지원단에 의해 확인되기도 했었다. 아프가니스탄 친미 정부가 자국 국민에게 자행한 고문은 상상을 초월했으며, 당연히 인권유린이 무수히 많이 벌어졌다.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는 미군 폭격기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되는 아프가니스탄의 마을

이러한 사실을 보더라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여성해방도 민주주의도 그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으며, 미국의 침략 명분은 말 그대로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되었을 뿐이다. 지난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탈레반이 승리하자, 국내 언론들은 자극적으로 여성인권을 갑자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탈레반의 문제점과는 별개로 아프가니스탄 친미 정부가 아주 썩어빠진 정부이며, 인권은 1도 존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국내 언론은 전혀 주목하지 않았고, 미국이 써주는 선전 문구를 옮기기 급급했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이 아프가니스탄 친미 정부 하의 민간인들의 탈출 뉴스를 전할 때, 다른 한편으론 전쟁기간 동안 이웃 파키스탄으로 피신하였던 수십만명의 난민들이 탈레반의 카불 입성 후 그들의 고향땅으로 귀국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쓰레기 거리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는 친미 정권 하의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들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아프가니스탄의 마을

미국은 이 전쟁에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사용했다. 미국의 현 대통령인 조 바이든은 전쟁이 끝날 무렵 2001년부터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최소 1조 달러(한화 1,170조 원) 정도에 달하는 비용을 썼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국방부에서 2020년에 발간한 전쟁 비용 보고서에는 8,147억 달러(한화 995조 원)을 사용했다고 나오며, 여기에는 각종 무기와 파병 부대 운영비, 작전 비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 미국 브라운대학교 전쟁비용프로젝트 통계에 따르면 대략 20년간 미국은 전쟁비용으로 총 2조 2,610억 달러(한화 2,653조 원)을 사용했다고 나온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용한 비용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사용한 전쟁비용을 상회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남베트남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똑같은 짓을 했다.     

2021년 SBS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언급한 탈레반 대변인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며, 아프가니스탄의 비교적 주 민족인 파투슌족에 반기를 든 소수민족들을 이용했다. 2001년 10월 7일 미국은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을 개시하여 아프가니스탐 침공을 시작했는데, 특수부대인 그린베레(Green Beret)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반탈레반 소수민족 연합체인 ‘북부동맹(Northern Alliance)’과 연합하여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반탈레만 소수민족 연합체인 북부동맹은 과거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자신들의 군사적 전략을 위해 이용했던 라오스의 몽족(Hmong)이나,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의 고산족(몽타냐르로 불림, Montagnard)들을 반공 민병대로 활용한 것과 비슷하다. 베트남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이들을 철저히 버렸으며,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난 이후 반탈레반 연합체인 북부동맹은 탈레반 정부에 의해 소탕됐다. 물론 미국이 이들을 이용한 것은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었으며, 결국 이용만 당하다 버려진 셈이다.     

2010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제로 벌어진 '킬 팀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전쟁범죄를 자행했다. 2005년에는 2002년 바그람에서 아프간 포로 2명이 군 검사관에게 가혹행위들 당한 채 숨졌지만, 미군범죄수사대가 이를 은폐하려 했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었다. 2010년엔 ‘킬 팀 사건’이라 하여 재미삼아 민간인을 죽이고, 손가락을 전리품으로 보관하는 만행을 저지른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병사들이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이 미군 병사 5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최소 3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는데, 이들은 증거인멸을 위해 현장에서 불을 지르는가 하면 반군을 정당하게 사살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한 희생자의 시체 옆에 AK-47 소총을 놓아두기도 했다. 2012년 1월에는 미해병대원 5명이 피흘리는 탈레반 시신 3구를 향해 집단으로 방뇨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촬영되었었다. 2012년 3월 11일에는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주의 판지와이 구에서 미 육군 부사관 1명이 총기를 난사하여 어린이 9명을 포함한 16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그리고 20년이라는 전쟁 기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미군의 폭격으로 죽어나갔다. 2001년 10월 16일 카불 시내에 위치한 국제 적십자사 구호소와 와지르 아크바한 병원이 미군의 폭격을 받았는데, 입원 중인 어린이 환자를 비롯하여 수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미군의 폭격으로 최소 4,0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이 수치는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서 사망한 민간인 숫자를 상회하는 수치다. 유엔은 아프간에서 지난 2017년 동안 무장세력의 폭탄 공격과 미군 등의 공습으로 민간인 1만 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고 밝혔는데, 최소 수만 명 이상의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이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심지어 2019년 UN 보고서조차도 미군과 정부군이 탈레반보다 민간인을 더 많이 교전으로 살해했다는 집계를 내기도 했다.     

국내에서 일어난 아프가니스탄 침공 반대 시위

결과적으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갖다 준 것은 파괴, 살상, 마약, 빈곤, 여성억압, 환경파괴, 폭격, 빈번한 테러리즘 등이었다. 아프가니스탄 20년 전쟁은 사실상 미국이 저지른 전쟁범죄이며, 이 전쟁으로 수십만 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폭격과 드론 공습, 군사작전과 테러, 고문과 폭행, 굶주림으로 죽었다는 점에서 변론할 수 없다. 탈레반의 억압적인 통치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러한 파괴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똑바로 알 필요가 있다. 전쟁이 끝난 지 3년이 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고, 이러한 사실은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브에서 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극심한 제재는 비판하지 못할망정 이러한 맥락마저 무시하는 언론이 과연 정상적인 언론인지 우리는 다시 한 번 반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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