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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누구게?

영화 <괴물>

감히 2023년 최고의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리뷰입니다.


극장 상영 중인 영화라서, 스포가 있으므로, 먼저 영화를 보시고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영화는 걸스바 건물의 화재를 시작으로, 같은 사건을 3가지 시점에서 반복적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감독의 카메라 앵글에 관객은 하염없이 이끌려 다닌다.


미나토 엄마는 남편과의 사별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미나토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될 때까지 잘 키우겠다고, 죽은 남편과 약속도 했다.

미나토의 엄마가 미나토에게 하는 행동들은 모두 사랑에서 비롯되지만, 그게 과연 미나토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엄마의 시선에서 발견되는 미나토의 기괴한 행동들 (갑자기 머리를 자른다거나, 어두운 터널에서 발견된다거나, 자동차 조수석에서 갑자기 떨어진다거나, 지우개를 주으려는 자세에서 고정된 채로 수십 분을 고정된 모습 등)을 감독은 끊임없이 보여주며 "미나토가 어딘가 정신이 이상하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원인이 호리 선생의 괴롭힘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동네 소문으로 호리 선생은 걸스바에 다니는 문란한 사람이다. 자기 학생을 때려서 코피 나게 만들고, "너는 인간 뇌가 아니라 돼지 뇌야."라고 말하고, 엄마가 찾아오자 섬뜩하게 웃으며 형식적인 사과만 하는 호리 선생과 교장 선생을 보며, 관객은 호리 선생과 학교 시스템을 질책한다. 

그래, 호리 선생이 범인이다. 저 놈이 괴물이구나!

호리 선생의 시점이 시작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살뜰히 챙기는 호리 선생을 보며, 관객은 혼란에 빠진다. 

여자친구와의 행복한 결혼을 꿈꾸고, 걸스바에 갔다는 소문은 아이들의 오해로 잘못 소문난 것뿐이었다.

미나토가 교실에서 물건을 집어던지고 난동 부리는 걸 말리다가 코피가 난 것뿐이었고, 돼지 뇌라는 단어는 입에서 꺼낸 적도 없다.

오히려 미나토가 요리라는 아이를 화장실에 가두고 괴롭히는 모습, 고양이를 죽인 듯한 모습을 발견하고선 걱정한다. 그런데도 미나토와 요리는 거짓말을 하고, 호리 선생을 모함한다.

미나토의 엄마가 찾아왔을 때도, 제대로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는 그를 말리며 형식적인 사과를 강요하는 교장 선생과 동료 선생님들이 그를 수렁에 빠트린다. 심지어 교장 선생은 얼마 전 죽은 본인 손녀와의 사진을 일부러 사과하는 장소에 세팅하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드디어 제대로 찾았다. 
미나토와 요리, 그리고 냉혈한 교장 선생이 진짜 범인이다.
저들이 괴물이구나!

마지막으로 미나토와 요리의 시점이 시작되고, 관객은 붕괴된다. 


요리는, 주로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어딘가 약해 보이고 여성스러워 보이는 남자아이다. 

그래서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미나토는 본인도 괴롭힘에 휘말릴까 봐, 요리와 거리를 두지만, 사실 동네에서는 요리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요리와 이야기를 나누면, 알 수 없는 동질감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요리는 본인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한다. 

"돼지 뇌 - 아마도, 여성스러우며 남자를 좋아하는 듯한 모습"을 

"정상적인 인간 뇌"로 품종개량 해야 된다며, 아이를 두들겨 팬다. 


미나토는 폭력을 당하지는 않지만, 평범함을 강요받는다. 

그의 엄마는 미나토가 부모가 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라며, 

호리 선생은 어딘가 힘없어 보이는 미나토에게 항상 "남자답게"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메스게임에서 무너지는 미나토를 보며, 호리는 "남자답지 못하다"라고 이야기한다. 별거 아닌 듯한 이러한 말들이, 미나토와 요리가 호리 선생님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없게 만든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요리와 친한 모습을 들켜서도 안되고, 

요리를 좋아하는 본인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는 미나토는, 거짓말로 호리 선생을 모함하는 식으로 상황을 모면한다. 

뒤늦게 거짓말을 후회하지만, 그렇다고 호리 선생님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도 없다. 호리 선생님은 항상 "남자다운"걸 좋아하니까.


호리 선생은 뒤늦게 미나토와 요리가 적어둔 <품종 개량>이라는 글을 읽게 되고, 미나토와 요리의 상황을 알게 된다. 미나토를 찾아 나서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감당할 수 없는 현실과 본인의 거짓말을 견디지 못하고, 폭우 속에서 요리와 함께 아지트로 떠난 미나토는, 요리와 함께 어딘가로, 행복한 모습으로 떠나간다. 


마지막 시점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관객은 카메라 앵글에 끌려다니며 "범인 찾기"에 몰두하게 된다. 

한 손에 돌 하나를 들고, 괴물이 나타나면 당장 찍어 죽일 듯한 자세로, 위태롭게 범인을 찾아다닌다. 

감독이 유도하는 각종 단서에 현혹되며, 아주 손쉽게 단정 짓고, 간단하게 괴물을 찾아낸다.

감독에게 관객을 현혹시키는 건 아주 쉽다. 편견과 선입견, 확증편향으로 가득한 관객들은 언제나 누군가를 단죄하고 혼내줄 준비가 된 사람들이니까. 


마지막 시점으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은 스스로가 만든 편견에게 셀프로 반전당하며, 뒤통수를 얼얼하게 얻어맞고서는, 깨닫게 된다.



아, 영화를 보고 있는 내가 바로 괴물이구나.


누가 잘못했는지, 누구를 단죄해야 하는지, 누가 악인인지, 누가 괴물인지 찾아 헤매던 

내가, 바로 괴물이구나.


SNS와 유튜브에는 각종 사건 사고가 범람한다. 최근의 연예인 마약사건이나, 전청조-남현희 사건처럼, 우리는 그 가십을 소비하며,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악인인지 이야기하며 여론으로 그를 단죄하고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한다. 

팩트 체크라는 말이 유행한다는 것은, 무색하게도 외려 팩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우리의 태도를 돌이켜보게 한다. 


진실은 다면적이다. 한 가지 사건에도 각자의 시점에 따라 100가지 사실이 존재한다. 

어쩌면 삶이란, 객관적 사건 하나와 수많은 각자의 진실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일지도 모르겠다.

인간 역시 다면적이다. 미나토도, 요리도, 미나토의 엄마도, 호리 선생도, 교장 선생도. 어느 사건에서는 악이기도, 선이기도, 또는 악이냐 선이냐를 따질 수 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결국 팩트에 집중할수록, 오히려 실체적 진실에는 접근할 수 없고, 

"인간다움"에서 멀어지고 점점 더 "괴물"에 가까워진다. 


범죄나 잘못한 사실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용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블러 처리된 아름다운 화면으로 끝났다고 해서, 막연한 낙관주의로 이 영화의 모든 인물들이 착하고 아름답다고만 결론 내리는 것은, 영화에 대한 오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마도, 우리 사회가 "진실 찾기"를 "범인 찾기"로 오역하고서는, 

실체적 진실보다는 빨리 결론 내리는 것에만 집중하지는 않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 아닐까.

우리 사회가 현재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범인이냐?"가 아닌, 

친절과 너그러움이다. 

편견을 줄이고
판단을 늦추고
누군가를 "돼지 뇌"로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이해하고 끌어안아주는 사회.
모두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란, 그런 것 아닐까.


ps. 좋은 영화일수록, 리뷰에서 설명하지 못한 인물과 사건들이 큰 깨달음을 주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말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교장 선생님과 미나토가 관악기를 부는 장면은, 되새길수록 생각할 지점이 많은 장면입니다. 부디 꼭,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까지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선율이 흐릅니다. 그의 영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고인이 된 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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