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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식 Mar 31. 2023

하나님 나라와 용서(마 6:9-15)

마태복음 6장 9-15절에 "우리 아버지"로 시작되는 주님의 기도는 마태복음 산상수훈의 정수 중에서도 정수다. 몇 줄 안 돼서 외우기조차 쉬운 간단한 기도이지만 그 내용은 참으로 조직적이고 풍요롭다.


9-10절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받기를,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기를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이름, 나라, 뜻을 각각 이해할 수도 있지만 연속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본문의 흐름을 살리는 해석이라 생각한다. 아버지의 이름은 어떻게 거룩히 여김을 받는가?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으로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 아버지의 나라는 어떻게 이 땅에 임하는가? 바로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므로 임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역으로 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할 수 있는 것이다.


9-10절과 11-13절의 단락도 각각 이해하기 보다 연속성을 염두해서 해석하면 보다 그 뜻이 분명해진다. 즉, 11-13절의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이다. 


11-13절은 다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부분(11절)과 죄용서를 구하는 부분(12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악으로부터의 지속적인 구원을 구하는 부분으로 나뉜다(13절). 하나님의 뜻은 이 세 가지다.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죄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자비 혹은 사랑을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악으로부터의 구원을 구한다는 것은 마침내 끝까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적 구원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직선적인 해석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다면적인 해석으로 접근할 때 좀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 세 기도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11절의 생명을 구하는 기도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죽은 자(노예)로 살다가 구원을 받아 생명(자유)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일용할 양식에서 만나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2절의 죄용서를 구하는 것은 자비 혹은 사랑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의 핵심이다. 신명기 6장 4절에 요약되어 있고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재차 강조하신 것처럼 모든 율법은 사랑으로 요약된다. 예수님께서 그의 기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에 용서를 사용하신 것은 흥미롭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땅에서 어떻게 실현되었는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신 것으로 드러났다. 13절의  악에서 구원은 마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기도처럼 들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나안 땅이지 않은가? 여기에는 악이 있으며 그 악은 시험과 유혹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렇게 볼 때, 11-13절의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율법을 받고 이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서사적 장면을 배경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다윗이 왕인 이스라엘 나라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서는 천년만에, 모세로부터 보면 반천년만에 세워진 것이다. 마태복음 1장 1-17절의 계보가 이 역사를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으니 그 신학을 주님의 기도에 적용해도 무리가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생명을 주는 구원(11절)과 용서(사랑)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주는 구원(12절) 그리고 가나안과 같은 세상에서 악에게 지지않고 정복해가도록 하는 승리를 주는 구원(13절)이 곧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들을 이룸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고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13절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14-15절을 통해 용서에 대한 강조를 재차하신다는 것이다. 14-15절을 통해 11-13절을 바라보면 앞서 살펴본 세 가지 기도는 일직선 위에 있지 않고 삼각형의 각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12절에 용서를 구하는 기도가 그 정수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집으로 표현하자면 가운데 기둥과도 같다. 그러고 보면 11절은 우리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니 그 어디에도 우리가 기여할 여지가 없다. 13절은 악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것이니 거기에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할 뿐이다. 그러나 12절은 다르다. 


이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기도이자 나와 이웃에 대한 기도이다. 그 기도는 바로 사랑을 구하는 것이고 이 사랑은 용서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처럼 강조되는 용서를 중심으로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길은 너무도 분명하다. 바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를 따라 기도하는 신자는 무엇을 하는가? 그것은 바로 용서다. 우리의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용서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용서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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