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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식 Sep 05. 2023

교회생활 아니고 신앙생활

중학교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신앙생활은 곧 교회생활이었다. 주말은 거의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고 새벽기도회에 수요예배 그리고 금요구역모임까지 출석하는 나를 보며 교회를 다니지 않던 가족들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교인들조차도 광신일 수 있다는 시선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내가 그토록 교회생활을 열심히 했던 이유는 단순히 신앙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나는 교회에서 가정에서 느끼지 못했던 따뜻한 돌봄과 격려를 경험했고 인정받는 뿌듯함이 즐거웠다. 그 결과 비신자인 어머니와 형제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그들과 있는 것은 점점 더 불편해졌고 마침내는 그들에게 나를 빼앗겼다는 박탈감을 주었다. 어머니께서는 소천하시기 전에 예수님을 믿으셨지만 아직도 내 형제들 중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리고 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 형제들과 여전히 신앙적 불편함(?)을 느낀다.


이러한 문제는 나만이 아니라 나처럼 예수를 믿지 않는 가정에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그 시절 우리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는 말씀을 붙잡고 가족 모두 예수를 믿게 해 달라고 죽기 살기로 기도했다. 때때로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내 믿음이 작거나 내 기도가 적어서라고 회개하면서까지 그랬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위에 성경 말씀은 "주 예수를 믿고 너와 네 집을 전도해서 구원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약속이다. 그러니 가족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내 신앙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을 반드시 전도해야겠다는 의지와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신다는 믿음과 그때를 기다리는 인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보다 큰 문제가 남는다. 바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 수 있는가이다. 이 문제는 공간적으로는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해당하고 시간적으로 인생을 사는 내내 즉 평생 동안 겪어야 할 문제이다. 신자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세상은 특별한 때와 장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신자가 신자보다 더 많다. 지금 한국 교회가 사회적 비판을 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복음주의 진영의 한국 교회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사역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이 문제가 많으니 세상을 구원해야 하고 그러려면 구제를 하고 전도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과 상관없이 그렇게 정죄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에 불쾌하다고 느끼고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되묻는다. 


"그러는 너희들은 잘 사냐?" 


나는 이런 문제들의 근간에 "교회생활이 곧 신앙생활이다"라고 가르치는 교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교회들은 예수를 믿는 이유도 제자 훈련을 받는 이유도 오로지 교회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고 가르친다. 교회를 위해서 사는 것이 곧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가르친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한 동안 하다 보면 세상의 친구들은커녕 비신자 가족들과도 보낼 시간이 없을 정도로 교회생활에만 빠져 산다. 이것은 세상과 구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아예 분리되는 것이다. 결국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리고 자기들을 위해서만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는 또 하나의 이익단체로 변질되거나 그렇게 비친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끼리 잘 사니까 좋으냐?"


신자에게 있어서 "지역 교회에서 하는 교회생활"은 신앙생활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교회생활을 통해서 배우고 자라나는 신앙은 교회생활만이 아니라 신앙생활에서 발현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이란 신앙이 내 삶 전체에서 구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내 개인의 삶, 부부 관계, 가정, 일터 그리고 사회 모든 영역에서 그리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모든 시간에서 우리 가진 믿음이 작동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불편하게 느끼는 세상에서 소금의 맛을 내고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지역 교회가 가진 문제들의 원인 중에 하나는 소금과 빛이 좁은 교회 안에서만 있어서 서로 누가 크냐 싸우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왜 교회를 다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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