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자녀를 키우며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정직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립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이 둘 중에서 자립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일은 정직한 사람으로 키우는 일에 비해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우선 나는 "자녀를 독립시킨다"는 표현보다는 "자녀를 자립시킨다"는 표현을 선호한다. 독립은 한자를 따라 보면 "혼자 서 있다"는 의미이고 영어를 따라보면 "의존적이지 않다(independant)"는 의미이다. 그런데 본래 인간은 혼자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되는 존재이다. 오히려 서로에게 의존하면서 서로를 도우며 살도록 창조되었다. 반면에 자립이라는 말은 한자를 따라 보면 "스스로 서다"이고 영어로 보면 "스스로 지속하다(self-sustained)"는 의미이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부모와의 관계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부족한 존재이니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더 이상 부모의 사랑과 훈계가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다양한 자원에서 부모의 조언과 도움을 받게 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 부부는 우리 세 자녀가 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의 사랑을 최대한 많이 받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것은 부모가 줄 수 없는 차원의 사랑이고 돌봄이다. 나는 내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슬퍼하며 우는 내 아이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지금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집에 가서 종종 잠도 자고 친구처럼 친근하게 시간을 보내고 오는 우리 아이들이 보기 좋고 부럽기까지 하다. 내 자녀를 잘 키우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그들을 맘껏 사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어디 이뿐인가? 부모가 나이가 들어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나 그분들이 주는 사랑은 우리가 결코 분리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삶의 원천이다. 그래서 나는 자녀는 독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립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얼만 전에 막 성인이 된 큰 아이에게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했다. 사람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배워야 한다. 하나는 절약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다른 하나는 돈 버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절약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자립할 수가 없다. 주변에 이런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씀씀이가 크다는 것이다. 때로는 돈을 벌기 전에 물건을 먼저 사들이고 본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절약을 하지 않아서 자립하지 못한다. 그런데 절약하는 법은 주머니에 돈이 많으면 결코 배우지 못한다.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먹고 싶은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노는 데도 여전히 돈이 있으면 절약을 배울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미성년일 때 절약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됐을 때 일이다. 그때는 주어진 일을 잘하거나 칭찬받을 일을 하면 별표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한 주 동안 모은 별표는 하나에 인도 돈으로 10루피로 환산되었고 아이들은 일요일에 예배가 끝나고 우띠(Ooty) 시내에 있는 모던스토어(Modern Store)에서 쇼핑을 할 수 있었다. 그날 둘째는 12개짜리 큐브치즈(cube cheese)를 사고 싶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돈은 90루피 밖에 안 되고 큐브치즈 가격은 120루피였다. 그래서 둘째가 나에게 좀 도와달라는 듯이 물었다. "아빠, 사 주면 안 돼?" 그런데 내가 주저함 없이 "그럼, 한 주 기다렸다가 별표 더 모아서 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아빠, 너무해!"라며 삐졌다. 그 순간 아빠인 내가 돈이 아까웠겠는가? 모든 부모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아이를 위해 쓰지 않는 것이 쓰는 일보다 더 어렵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절약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
반면에 돈을 절약하는 법만 배우고 돈을 버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역시나 자립할 수가 없다. 아무리 절약을 해도 수입이 없으니 자립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돈을 벌더라도 구두쇠가 되기 쉽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처럼 벌이가 없으면 나누는 기쁨을 누릴 수가 없다. 그러면 돈을 어떻게 벌 수 있을까? 돈을 벌려면 기술(skills)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술은 경험을 통해서 습득된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쓰는 이중어(bilingual) 화자이다. 작년부터는 방학 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영어캠프에 보조교사로 참가해서 약간의 용돈을 받았다. 그런데 올해에는 영어캠프에서 첫째와 둘째가 과목 교사로 참석해서 최저시급은 안 되지만 그래도 아르바이트비라고 불릴 정도의 돈을 받았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쓸 수 있다는 것과 영어를 잘 가르치는 일은 별개다. 영어를 잘 가르치더라도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또다시 전문성이 요구된다. 첫째는 이번 여름에 두 번의 캠프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제법 가르치는 일에 흥미도 느끼고 자신감도 생긴 것 같다. 기술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어 가르치는 일을 맡겼다고 하니 첫째가 좀 더 진지하게 캠프에 임했다. 지금도 그때 벌은 약간의 돈으로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을 채워 넣기도 하고 교회에서 자신이 맡은 아이들에게 음료수를 사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지역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값 3만 원에서 3천 원을 할인받는 것이 얼마나 큰 지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3천 원을 아끼는 아들에게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해외로 대학 가는 준비를 하라고 한다. 3천 원을 아낀다고 한 학기에 3천만 원의 돈이 드는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게 가능할까? 열흘을 열심히 일하고 1백만 원을 번 경험이 있다고 억 단위의 돈이 드는 해외 유학을 마칠 수 있을까?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3천 원 아낄 줄 아는 사람은 남들이 최소 3천만 원으로 한 학기를 살 때, 1천만 원으로 살 수 있다. 그리고 열흘을 일해서 1백만 원을 번 사람은 100일을 일해서 1천만 원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