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6년간 딩크로 지낸 이유
요즘은 결혼 결심만큼이나 출산에 대한 결심이 큰 것 같다.
예전에는 당연히 결혼 -> 출산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당연히 결혼을 하면 출산을 하는 시대였다면
요즘에는 결혼 -> 딩크 or 출산이라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갈림길도 아닌 결혼 -> 딩크였던 사람이다
남편에게는 결혼 전 연애 8년 내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했던 나의 딩크 결심.
남편은 이미 이런 나를 받아들였고 , 결혼만 한다면 딩크든 아니든 상관없다고 해주었고 그렇게 우린 결혼을 했다.
다행히 우린 결혼 이후에 연애 때보다 더 안정되고 행복했다.
그래서 그런지 당연히 아이 생각은 우선순위에 아예 고려대상조차 안되었다.
만 29살의 나와 만 28살의 남편은 결혼을 했고, 주변 사람들 중에 아직은 결혼조차 한 사람들도 많이 없었다
그러다 3년이 지나고 다들 하나둘 결혼을 하고 출산이라는 절차로 넘어가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여전히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2020년 나는 새롭게 공무원이라는 직장에 입직하였고. 그 안에서 겪은 나의 직장 스트레스와, 인간관계가 나에겐 삶에서 가장 큰 이슈였다.
지구 환경에 대한 걱정(?)까지.. 2세에 대한 걱정은커녕 나의 존속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현실에 코로나까지.
그야말로 대 혼돈의 카오스였던 2020년이 우리의 결혼 첫 해였다.
이런 세상에 애는커녕 내가 지금 죽니 사니 하는데.. 티비에서 나오는 육아는 그저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 같은 이야기였을 뿐..
나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벅찼다.
사실 20대부터 삶이 너무 지쳤다.
아니 10대 때부터 삶이 너무 지쳤다.
매일 반복되는 학교생활과 그 안의 교우관계 스트레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압박과 대학에 대한 걱정, 이 모든 것을 이기고 난 후 남게 된 건 직장취업에 대한 걱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인 20대
이것들을 견딘 30대가 된 나는 이미 싸움에 백기까지 든 패전병이나 다름없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싸웠지만 세상에게 나는 완전히 패배했다.
남들이 보면 그럴듯한 직장에, 좋은 남편이 있었지만 나의 세상은 전쟁 그 자체였다.
20대부터 아르바이트로 연명해 온 나의 용돈과, 그 와중에 공부를 놓지 않기 위해 공부하며 장학금을 받았고, 직장에도 다소 이르게 취업했으나 나의 적응력과, 사람들의 갈등문제로 쉽게 그만두게 되었던 20대
사회에 나오니 사람들이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나의 슈퍼 F 감성으로는 그들의 세상에 들어가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내가 감성적으로 나갈수록 세상은 내게 더 모질어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냉정해져야 해, 매정해져야 해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
마음은 메마른 사막처럼 점점 시들어져 갔으며 나는 점점 영혼이 죽어갔다.
삶은 어느 정도 안정감이 있어졌으나 나는 이미 영혼이 죽은 사람이었던 것..
그러면서 이런 힘든 세상 그냥 나 홀로 왔다 갔으면 그만 아닐까?
사실 나는 지금이라도 편하게 안락사를 시켜준다면 당장 신청하고 내일이라도 승인받고 실행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하루하루가 버거울까 날마다 울었다.
그런 나를 버티게 해 준 건 늘 옆에 있어준 남편과, 정신과 약들이었다.
(정신과 약이 사실 좀 더 컸을지도..)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20대 후반을 그나마 살아갈 수 있었다.
30대를 정신과 약과 함께 하면서 좀 더 든든해졌지만 역시나 세상도 그만큼 더 레벨업이 되어있었다.
공직사회는 더 경직적이고, 말도 안 되는 곳임을 들어와서 깨달았다.
그리고 알았다. 아 나는 정말 일을 하면 죽겠구나..
죽는건 그렇다쳐도 일하다 죽는건 좀 그런데...
2년 후 나는 휴직을 하고 남편을 따라서 베트남이란 낯선 땅에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1년간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지내면서 적응하느라 아이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나랑 친한 결혼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엄마로 업그레이드 되어있었고, 그들의 세상과 나는 전혀 다른 방도를 걷고 있었음에도 전혀 초조하지 않았던 나의 33살.
나는 오히려 지금 생활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한국에 가면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커져간 것 같았다.
그래서 부동산, 주식 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파이어족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휴직을 계속하게 된 나는 한국에서도 질병휴직을 써서 조금 더 쉬게 되었다.
오랜만에 인생에서 쉼의 시간이 길어지니 나에게도 조금 여유가 찾아온 걸까.
아니면 공무원 아파트에 살면서 주변에 아기 키우는 환경 속에 있다 보니 아이가 보인 걸까.
2024년엔 처음으로 아이를 낳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것 조차도 사실 공무원 아파트를 더 오래 연장하고 싶어서 라는 마음이 컸고, 역시나 난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보다는 나의 미래를 위해 아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고민을 하고 2024년은 수술을 하고 쉬면서 몸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대망의 2025년이 되자 이제 진짜 결정을 해야 할 해가 찾아왔다.
그렇게 사실 나는 내 뜻과 다르게 그냥 나의 이득과 야망을 위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이런 내가 아이를 가져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세상의 모두가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서만 낳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도 그중의 하나라는 것을.
그렇지만 낳으면 최선을 다해 키울 것이란 것을..
그래서 그냥 지금 내게 온 아이를 소중히 다루고 일단은 낳고 나서 생각해 보자로 바뀌게 되었다 (노산도 한몫했다)
누군가는 비난도 하겠지만 나는 정말 아직도 내가 진정한 딩크의 길을 걷지 않음에 놀랍고, 이 선택이 두렵다.
정말 건강하게 잘 낳아서 잘 키우고 싶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에게 한 기대는 나에게 큰 실망으로 돌아왔기에 난 아이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이와 같이 걸어주고 우산을 씌어줄 순 있지만, 비를 피하게 할 순 없으니까..
그래서 그냥 삶을 같이 걸을 수 있는 순간까지는 최대한 같이 잘 걸어주는 게 나의 1차 목표이다.
이렇게나 힘든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나의 아기야..
나중에 엄마를 원망해도 엄마가 잘못했으니 참을게..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하도록 할게
넌 너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어
난 언제나 그냥 옆에 있어줄게
이것이 내가 임신을 하고 느끼는 감정이다.
하지만 역시나 오늘은 인간관계에 대한 또 한 번의 회의감이 들었다.
그건 다음 이야기에.. 계속하도록..
#딩크 #임신결심 #딩크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