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서울숲재즈페스티벌 2025: 아론 팍스부터 스텔라장까지
음악 페스티벌을 향한 나의 오랜 사랑은 ‘재즈’라는 장르를 만나 더욱 깊어졌다. 정해진 악보를 넘어 연주자의 감정이 고스란히 선율이 되는 순간의 희열. 그 매력을 알기에 ‘서울숲재즈페스티벌(서재페)에 선뜻 참여하게 되었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서재페는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열렸다. 나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토요일, 9월 20일의 서울숲을 찾았다.
초록빛 잔디 위는 이미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돗자리를 펴고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연인과 친구들, 해맑게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 곁을 지키는 부모님, 그리고 얌전히 앉아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들까지. 평화롭다는 단어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풍경이 또 있을까. 알 디 메올라(Al Di Meola), 아론 팍스 리틀 빅(Aaron Parks Little Big), 스텔라장 등 국내외 최정상 아티스트들의 이름으로 채워진 라인업은 이 평화로운 공간을 최고의 재즈 클럽으로 만들 준비를 마친 듯했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오래도록 붙잡았던 무대는 피아니스트 아론 팍스가 이끄는 ‘아론 팍스 리틀 빅(Aaron Parks Little Big)’이었다. ‘현대 재즈의 새로운 이정표’라는 매거진의 소개처럼, 그들은 무대를 압도했다. 연주가 시작된 순간, 서울숲은 마치 뉴욕의 어느 재즈바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현대적이고 통통 튀는 듯하면서도 한없이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율. 특히 드러머의 연주는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는 듯했다. 알고 보니 뉴욕 재즈씬을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 드러머 김종국이었다. 그의 드럼은 단순히 다른 악기를 받쳐주는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 굳건한 하나의 파트가 되어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세계적인 밴드의 정식 멤버로 무대를 빛내는 그의 모습에 괜스레 가슴이 벅차올랐다.
뒤이어 만난 스텔라장의 무대는 또 다른 결의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그녀가 나지막이 부르는 프랑스어 노래들은 그 우아한 발음만으로도 재즈 선율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선선한 가을밤의 공기를 낭만으로 물들였다. 작년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아침마다 즐겨 듣던 노래가 마지막 곡으로 흘러나왔을 때, 나는 순간 시간을 거슬러 여행의 한 장면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가사의 뜻을 모두 알지는 못해도,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과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고급스럽고 우아하다가도, 때로는 한없이 발랄해지는 음악. 재즈란 이토록 한 사람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게 하는 것이구나. 다시 한번 감탄했다.
서재페의 진정한 매력은 무대와 무대 사이, 40분의 쉬는 시간에 오히려 더욱 빛났다. 여러 스폰서 부스에서는 관객들을 위한 다채로운 이벤트가 한창이었다. 미션을 수행하고 네컷사진을 찍으며 물티슈, 양산, 핑거푸드 같은 알찬 선물을 받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부스를 돌아다니며 소소한 추억을 쌓는 모습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단연 ‘심바 캠’이었다. 라이온 킹의 명장면처럼, 노래에 맞춰 자신의 반려견이나 아기를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이벤트. 주인의 손에 들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강아지들의 귀여운 모습은 지켜보는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카메라에 잡힌 아기가 기분 좋은 듯 손을 흔들며 배시시 웃을 땐 그 순수함에 마음이 녹아내렸고, 행복에 겨운 아빠가 와인병을 들어 올리자 옆에 있던 딸이 장난스레 등짝을 때리는 모습에선 따뜻한 가족애가 느껴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유쾌하고 따뜻한 광경은 이곳이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임을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나는 연주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어노잉박스’의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었다. 유튜버 조매력을 필두로 한 18인조 빅밴드인 그들은 축제 입구에서부터 유쾌한 행렬을 시작했다. 태평소 같은 국악기부터 클래식, 재즈 악기까지, 전혀 다른 분야의 악기들이 어우러져 모두가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연주를 실제로 들으니 흥겨움은 배가 되었다. 연주에 미쳐 스스로를 불태우는 그들의 에너지는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졌다.
그들의 뒤를 사람들이 홀린 듯 따라가는 모습은 현대판 ‘피리 부는 사나이’를 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고 춤을 추며 진정한 축제의 현장을 만들었다. 연주자와 관객 사이에 그 어떤 경계도 없는 순간이었다.
음악과 자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 심지어 쉬는 시간마저 알찬 즐거움으로 채워준 서울숲재즈페스티벌. ‘Nature, Music & Love’라는 페스티벌의 슬로건이 비로소 완성되는 밤이었다. 내년 가을, 재즈가 다시 말을 걸어올 때쯤 나는 또 이곳 서울숲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