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빵은 은은한 연두색이었다. 노란 단색으로 이루어진 그라데이션이 있어야 먹음직스러운데, 노란색과 연두색이 섞여 있는 국화빵은 이질감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한 입을 베어 물면 전혀 느끼하지 않고 고소했다. 항상 구부정하게 앉아 계신 할머니만의 비법이겠지만, 나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본 적은 없다.
원래 내려야 하는 정류장보다 먼저 내려서 한참을 걸어온다. 집안 대대로 유전되는 당뇨병은 결국 나를 산채로 볼모 잡았다. 배가 부르면 죄책감에 괴롭고, 공복이 되면 패닉 상태에 빠져서 힘들었다. 오랫동안 퇴근길에 국화빵을 사 먹었던 노점박스를 못 본 척 지나다닌 것도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 국화빵 할머니의 눈을 피하고 싶어서 일부러 큰길을 건너간 적도 있고, 문이 자주 닫혀있는 가게를 보면, 오늘은 애써 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국화빵을 피하는 건지, 할머니께 죄송한 건지 내 속마음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날은 몹시 피곤했다. 어둠이 내린 거리를 걸으며, 하늘 위의 실낱같은 노을에 슬픔이 밀려왔다. 과연 내일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질문을 던졌다. 나 자신에게 돌덩이 같은 질문을 던져놓고, 그 질문의 무게에 화들짝 놀란 나는 줄행랑을 쳐서 숨고 싶었다. 저 멀리 국화빵 노점이 보인다. 나는 태연하게 그 앞에 섰다. 할머니는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눈을 껌뻑껌뻑하며 나를 바라보신다.
"할머니, 국화빵 2천 원어치 주세요."
할머니는 종이봉투에 국화빵을 하나하나 넣어주신다. 국화빵을 만져보니 한 면은 따뜻하고, 한 면은 이미 식었다. 할머니의 두건을 바라보았다. 국화빵을 하나 입에 넣고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나 혼자 피해 다닌 일 년이 괜히 낯뜨거웠다.
"할머니, 어디 치료받으셨어요?"
"아팠는데 좋아졌어. 의사가 괜히 목숨줄을 붙여 놓아서.... 그래도 빵 구울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지."
"아휴, 그래도 쉬셔야죠. 공사장 앞이라 이제 손님도 없는데요."
"죽으면 쉴 텐데, 뭣하러 벌써"
차가운 국화빵은 점점 식어가는 얼굴에 핏기가 없는 할머니의 생명 같다. 나는 국화빵을 입에 넣고 내 입의 온기로 열심히 데웠다.
잠시 후에 다른 손님이 와서 국화빵을 찾자, 빵을 더 구워야 하는 할머니는 느릿느릿 빵틀에 불을 지핀다. 차가운 빵 틀을 데우는 수십 개의 불꽃을 바라보았다.
과연 다시 따뜻해질까? 정말 다시 온전해질 수 있을까?
반죽이 그 작은 불꽃 위에서 부풀어 오른다. 달콤한 마가린 냄새가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나는 할머니의 두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할머니 빵이 더 맛있나 봐요."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시더니 젓가락으로 국화빵을 뒤집으셨다.
반대쪽 밀가루 반죽도 자신의 냉기와 싸우면서 노릇노릇해지기 위해 불 위에서 열심히 부풀어 오르는 중이다. 국화빵을 한 개 더 입에 물고 생각했다.
운명을 핑계로 식어버린 나를 따뜻하게 지피는 불꽃을 찾아서 떠나야 한다고.
나는 그날 이후로 더 이상 국화빵을 피해 다니지 않았다.
나의 병과 할머니의 병이 하루하루 더 깊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불꽃 위에서 다시 온기 가득해지는 국화빵으로 가끔씩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