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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느 Nov 15. 2024

가족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토요일 7시, 가족회의 시간입니다!

닫혔던 방문들이 열렸다. 소파 앞에서 하루종일 떠들던 TV도 조용해졌다.

네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았다.

회의 호스트이자 이 집의 엄마인 내가 입을 열었다.


'지난 몇 달간 우리 가족이 서로 비난하며 얼굴 붉히는 일이 자주 있었어. 심지어 남의 마음 아프게 하는 일까지 생겼고.. 누구의 잘못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야.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 같은데, 이것을 나만 느끼는 건지 다 같이 모여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모이자고 한 거야.'


곧이어 A4 한 장씩 구성원들에게 나눠주었다.김가족 가족회의」라고 적힌 질문지였다. 회의 제목은 우리 네 식구의 성을 따서 지었다.

'간단한 설문지라고 생각하고 15분 정도 생각하면서 적어줘.' 

식구들은 싫은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아빠: 필요성은 이해해. 말로 하면 되잖아. 굳이 적어야 해?

첫째: 여기가 학교야? 집에서까지 활동지 써야 해? 나 안 적어!

내가 얼마나 고민하면서 만든 건데.. 반드시 이 질문지를 쓰고야 말리라는 의지를 눈에 가득 담고 레이저 한번 쏘아주었다. 남편과 둘째는 마지못해 빈칸을 채워나갔고 첫째는 머릿속에 다 있어서 적을 필요 없다며 끝까지 볼펜을 들지 않았다. 역시 강적이다.


김가족 가족회의

이 자리는 가족의 화합을 위하여 마련된 자리입니다더 나은 결과를 위하여 지켜주세요.

서로 비방하지 않기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기

아무런 편견 없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기

장난치거나 성의 없는 행동 보이지 않기

가식 없이 솔직하게 임하기


1. 여러분이 생각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은 어떤가요? 어떤 가족의 모습을 바라나요.


1-1. 내가 바라는 가족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2. 올해 개인적(가족이 함께)으로 하고 싶은(이루고 싶은      


2-1.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일


3. 가족에게 바라는 점     

-아빠: 

-엄마: 

-첫째:  

-둘째

3-1. 3번 대한 나의 답변, 앞으로의 각오


4. 한 달에 한번 가족회의를 매달 두 번째 토요일에 하는 것에 동의합니까.


질문 1번 여러분이 생각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은 어떤가요? 어떤 가족의 모습을 바라나요.

불편하다. 자주 싸운다. 우리 가족이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안 싸우면 좋겠다.

예상대로 식구들에게 우리 집은 마음 불편한 곳이었다. 의견이 맞지 않아 언쟁하는 일이 많으니 집안 분위기가 냉랭할 수밖에. 주로 언쟁은 사춘기 아이와 엄마, 그리고 올 들어 아이와 아빠의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이런 분위기를 인지하고 서로 한 발씩 양보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회의는 성공일 것이다.

질문 2번  올해 개인적(가족이 함께)으로 하고 싶은(이루고 싶은 

아빠가 삿포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모두 질세라 삿포로는 겨울에 가야 하는데.. 추운 거 싫은데. 싱가포르 어때? 아니 아니 하와이, 가는 김에 유럽을 가야지. 한 마디씩 거둔다. 우리 식구는 여행 케미가 잘 맞는 편이다. 집 떠나는 상상에 회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 엄마의 마음은 '해외여행은 무슨...'이었지만 티 내지 않고, 날짜, 학교, 예산 등을 생각해 갈 수 있는 여행지를 추려 다음 달 가족회의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질문 3번 가족에게 바라는 점

-아빠: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신경 안 쓰면 좋겠다.

-엄마: 짜증을 안 냈으면 좋겠다.        

-첫째: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정하면 좋겠다. 언어사용을 신중히 하기 바란다. 

-둘째: 자기 할 일을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챙기면 좋겠다.

위 답변을 들은 식구들은 이외의 반응을 보였다. 구성원의 솔직한 마음을 들으면 당황스럽고 기분이 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들 덤덤히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아빠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식구들이 원한다면 노력해 보겠다고 했고, 첫째는 밤 10시 30분이 되면 스마트폰을 제출하는 것에 동의하고, 언어 사용에 조심하겠다고 약속했다. 둘째는 할 일을 스스로 챙기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엄마인 나만 '짜증을 안 냈으면 좋겠다'는 식구들의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식구들 불편하게 만들어서 미안하지만 내 얘기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일로, 집안일로 바빠. 아빠는 회식, 저녁 약속으로 밤까지 집에 없는 날이 많고.. 나도 내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도무지 시간이 안나. 피곤한데 할 일이 남아 있으면 기분이 나빠져.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으니까. 짜증 안 내겠다고 약속하기 전에 부탁이 있어. 이제 애들도 컸으니 집안일을 나눴으면 해.'

남편이 순순히 술자리를 주 2회 정도로 줄이고 저녁 설거지를 담당하겠다고 나섰다

첫째는 주말 저녁 설거지를 하겠다고 자원했고, 둘째는 빨래 개기와 신발정리를 담당하기로 하였다. 가족회의하기까지 혼자서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리만치 식구들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정말 이렇게 아무 일 없이 가족회의가 흘러간다고? 

그랬다. 평소 우리 집 분위기와 달리 고성 없이 흘러갔다. 그러고 보니 마음 편한 집에 대한 목마름은 모두에게도 간절했던 것은 아닐까?


식구들은 매달 가족회의를 여는 것에 찬성했다. 회의 후 가족 회식자리도 갖기로 했다. 둘째가 신나서 탁상달력의 매달 둘째 주 토요일에 빨간색 동그라미를 친다. 달 후 다시 열게 될 두 번째 가족회의가 기대된다. 각자 어떤 한 달을 보냈을지, 어떤 이야기를 펼쳐놓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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