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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tro Mar 30. 2022

Guilty pleasure

  한동안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인터뷰 쇼에서 인터뷰어가 '당신의 길티 플레져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인터뷰이는 마치 대단한 비밀을 풀어놓듯 대답을 하던 장면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유명한 브랜드의 향수 이름이기도 했는데, 유행처럼 번져서 그 이름이 붙은 것인지, 그 이름 덕분에 유행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시절에 막 향수를 뿌리기 시작하면서 누군가가, 언젠가는, '당신의 길티 플레져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볼 날을 꿈꿨다. 마치 그 질문은 멋진 어른에게만 허용하는 질문 같았다. 그래서 나도 나의 길티 플레져를 하나 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길티 플레져를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티와 플레져 사이의 아슬아슬한 밸런스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길티라고 해서 도난같이 정말 죄가 될만한 것은 안된다. 그렇다고 플레져라고 남을 돕는다거나 쓰레기를 줍는다는 등의 순수한 기쁨도 비밀스럽지 않아 안된다. 밸런스를 찾다 보니, 아무래도 엄마가 하지 말라는 많고 많은 일들 중에 하나를 해야겠다 싶었다. 해방감이 크면서도, 혹시 유명한 사람이 되어 나중에 인터뷰를 한다 해도 창피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엔 하교 후 문방구에서 파는 50원, 100원짜리 군것질이 나의 길티 플레져였다. 당시 문방구 앞에서는 한 묶음으로 들어있는 수입 캐러멜을 낱개로 풀어서 50원에 팔았는데, 특히 노란색 레몬맛과 분홍색 딸기맛이 맛있었다. 그 두 개를 한 번에 같이 먹을 수 있는 날도 있었다. 이에 들러붙고 다디단 캐러멜은 엄마가 나에게 늘 먹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 품목이었기에 몰래 먹는 그 짜릿함까지 더하면 영락없는 나의 길티 플레져였다.

  중학교 때는 만화책이었다. 성인 비디오도 아니고 '고작' 만화책이었다. 부모님은 매우 엄격하셨고 줄글 책 대신 만화책을 보는 것은 거의 비행행위에 가까웠다. 집에 만화책을 가져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래서 학교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보고 난 만화책을 빌려봤다. 내가 주로 좋아했던 만화는 B급 유머 장르의 '괴짜**'류의 만화책이었고, 간혹 로맨스물도 있었다.

   학창 시절을 포함해서 내 인생을 관통하는 길티 플레져가 있다면 바로 '라면'이다. '웰빙'이라는 키워드가 생기기 전에도 라면은 건강식이 아니었지만 '웰빙'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라면은 모든 병의 근원처럼 여겨졌다. 공업용 기름에 튀긴다거나 비위생적인 시설에서 제조되는 등의 뉴스가 보도되기도 하면서 라면은 (가사노동의 주체로 인식된) 엄마들의 길티(guilty)가 된 것이다. 자녀에게 쌀밥 대신 라면을 끓여주면 가족의 건강에 관심이 없고 게으른 엄마라는 죄책감을 져야 했다. 이렇게 엄마의 죄책감으로 식탁의 금지 식품이 된 라면은, 나에겐 플레져였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다른 어떤 간식보다도 라면 끓여주는 친구 집이 최고였다.


  어느덧 초등학생의 학부모가 된 나는, 엄마가 그랬듯이 아이에게 라면을 주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성인병, 만성질환을 경고하는 무서운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니 매번 잔칫상은 못 차리더라도 라면만큼은 주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미술 대회에서 상을 받아왔다.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스스로 해낸 것이라 기쁨은 더 컸다. 남편과 상의해서 거금을 들여 큰 선물을 주기로 하고, 무엇이 갖고 싶은지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머뭇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엄마, 나 라면 끓여주면 안 돼?"

- "라면?"

  고작 라면이라니, 비싼 레스토랑 외식도 아니고, 자전거나 스케이트도 아니고 라면이라니! 돈이 굳어서 좋긴 하지만 예상 답안을 훌쩍 벗어난 대답이라 당황했다.

- "나 짜장라면 먹고 싶어."


  큰맘 먹고 연이어 내뱉는 아이의 한마디.

  '라면이면 되겠느냐?'라고 물어보려던 찰나, 순간 라면을 먹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대로 라면을 음지에 둔 채, 아이의 길티 플레져로 만들지, 양지로 끌고 나와 온 가족이 건전하게(?) 즐기는 평범한 하나의 기호식품으로 만들지. 그 짧은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 "그래. 우리 오늘 저녁에 라면 먹자. 그리고 엄마가 가끔 라면 끓여줄게."

- "엄마, 그럼 우리 라면 데이(day)를 정할까?"


  내친김에 라면 먹는 날을 정하고 싶은 그 욕심까지, 그동안 라면 앓이로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동그란 눈에 희망을 가득 담고 있는 아이를 보며,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내 아이의 길티 플레져는 좀 더 근사한 것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렇게 '라면=길티 플레져'의 공식을 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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