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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tro Mar 30. 2022

친구인지 적인지 선택할 문제

결혼을 하면 많은 것이 명확해진다. 특히 애매하거나 희미하던 관계들이 결혼식을 마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정해진 자리를 찾아간다.


  데이트인지 아닌지 헷갈렸던 만남이 정리되고, 자매라고 해도 무방한 남사친마저 결혼식이 끝남과 동시에 연락을 끊는다. 동성 친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노력으로 유지되던 만남은 시들해지고 내 숨 같은 친구들만 곁에 남는다. 만난 지 일 년도 안 되는 한 명의 존재가, 십수 년을 동고동락한 여러 명의 관계를 대체하는 상황이 낯설다.


  결혼하면서 벽이 허물어지는 관계도 있다. 기혼자들은 갓 유부 월드에 입성한 나를 신입생처럼 환영해 주며 동지를 만난 것처럼 반겨 준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들도 마치 프로인 양(?) 이런저런 충고를 건넨다.

   그러나 결혼 전 날까지도 나와 같은 그룹에 있던 미혼 친구들과의 관계는 다르다. 한 시간 남짓의 결혼식으로 마치 10살은 더 늙은 것처럼, 결혼이 어떻고 배우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미혼 친구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나도 아직 결혼 생활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고, 모르는 것투성이인데!  

  결혼을 기점으로 모르고 지내던 기혼자들과는 같은 카테고리가 되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친구가 되어버리고, 친하던 미혼 친구들은 나를 다르게 대하는 이 아이러니한 관계.


  이 관계는 HBO가 제작한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한 에피소드 안에 간단명료하게 나타난다. 어떤 결혼 전야 파티에서, 신부 측의 유부녀 그룹은 주인공 4인방이 속한 미혼 그룹과 확연한 대비를 드러낸다. '특별한 한 사람'을 찾아(결혼해) 낸 유부녀 그룹을 상대로 미란다는 자신은 '특별하지 않은 한 사람'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으니 그를 찾으면, 자기에게 소개해달라고 한다. 마치 결혼이 승자의 전리품이라도 되는 것 같은 그 상황에서, 미란다는 자신의 처지를 농담거리로 치부해 버린다. 물과 기름같이 섞일 줄 모르는 그녀들의 관계처럼, 대화 역시 겉도는 웃음으로 끝나고 만다.   

  허무한 마음으로 파티장을 떠나 거리를 걷는 미란다와 캐리. 자신들의 처지가 못내 우울하다. 그녀들은 서른다섯 언저리에서 성공한 변호사와 작가이고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노력해 멋진 집과 명성이 있었다. 이 성취는 뉴요커라는 자부심에 걸맞은 보람이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관문 앞에만 서면, 그 보람은 빛을 잃고 만다.


  그녀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이른바 'Soulmate 찾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제의 동지였던 미혼 그룹은 오늘부터는 반짝이는 웨딩 밴드를 손가락에 걸고 가시적인 부담을 안겨준다. '결혼은 어떻다, 이상적인 배우자는 이런 것이다.' 충고를 하면서.  


  며칠 뒤, 맨해튼 거리를 걷던 미란다는 오랜만에 결혼한 친구를 우연히 만난다. 친구는 미란다에게 역시 '특별한 한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미란다는 한동안 그녀를 괴롭혀온 그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한다.

  특별한 한 사람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이제는 자신이 그 존재를 믿는지도 모르겠다고.

  미란다의 솔직함이 빛을 발한 것일까. 유부녀인 친구는 화려한 웨딩 밴드 뒤의 현실을 농담 삼아 위로한다. 아이를 낳을 경우 화려한 패브릭으로 장식된 집은 포기해야 해서 걱정이라며 웃는다. Soulmate라는 환상이 결혼의 전부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부가 아님을 말하며 위로한다. 극 중에서 Sheila라고만 소개된 이 유부녀 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들떠있는 풋내기(?) 신부들과는 달리 현명한 여자였다. 아까와 같은 서로 다른 처지의 두 친구지만, 이번엔 서로를 향한 따스한 웃음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결혼이라는 문은, 영영 열리지 않을 문 같다가도 언젠가 갑자기 활짝 열리고 만다. 활짝 열리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그 이면의 삶을 궁금해하는 미혼의 친구를 적으로 돌릴지 친구로 남을지는 그 문을 먼저 통과한 자의 선택이다.

  그녀는 햇병아리 유부녀인 나에게 모범답안이 되어주었고 아직도 소중한 미혼 친구들과의 관계는 건재하다. 고마운 그녀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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