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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Sep 21. 2023

순댓국이 맛있는 나이


고작 8,000원에 고기, 밥, 국물까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또 있냐? 순댓국은 회사원 급식이야~


29살 주임 시절, 같은 팀 차장이 했던 말이다. 멘트를 듣자마자 생각했다.


 '역시 아저씨들은 어쩔 수 없어.'


오늘 같이 햇볕이 화창한 날에는 날씨와 어울리는 산뜻한 음식을 먹고 싶건만, 아저씨 차장님은 오늘도 고기향 그득한 순댓국을 주장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먹는 순댓국이 뭐 그리 좋은 건지? 20대 여직원은 이해를 못 하겠다. 퇴근하 순댓국은 쳐다도 안 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로부터 8년 뒤, 37살 애엄마가 된 나는 종종 순댓국을 찾는다. 재택근무 중 혼자 끼니를 해결할 때, 혹은 오늘처럼 비가 와서 우중충한 날 회사 동료들과 함께 든든한 점심을 먹어야 할 때 순댓국이 생각난다.


- 더부룩한 속을 달래줄 따끈한 국물.

- 건강에 꼭 필요한 고기 단백질.

- 오후 근무를 위한 에너지원 밥 탄수화물.


순댓국이야말로 최고의 건강식이다. 탄단지 3대 영양소가 조화로운 완전식품이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는지, 회사 근처 순댓국집은 늘 만석이다. 다들 엇비슷한 옷차림과 사원증을 하고서 점심을 먹는다. 무리 지어서 오고, 혼자서도 오고, 간혹 이모님 손에 끌려서 합석도 하고. 중년이던 초년이던, 남자던 여자던 상관없다. 뜨끈한 국물에 무장해제돼서 후후 불어가며 고기/국물/밥에만 집중한다. 덥지만 개운한 표정이다.


이제야 아저씨 차장님의 멘트가 이해된다. 왜 그렇게 순댓국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


매일매일 똑같은 직장 생활 쳇바퀴 속에서, 순댓국의 따뜻한 고깃국물은 허전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식사이자 위로였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니 위장이 예전 같지 않다. 공복에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리고, 빵이나 파스타 같은 밀가루를 두 끼 연속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따뜻한 국물이 절실해진다. 위장에 고기 기름칠이 필요한 시점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역시 만만한 건 순댓국이다. 고기를 구워 먹자니 번잡스럽고, 햄버거 같이 기름진 건 안 긴다. 싸고 가깝고 간편한 국물음식이 먹고 싶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순댓국집을 향한다.


순댓국이 맛있는 나이가 됐다. 나도 이젠 아줌마라고 슬퍼하기보단, 이렇게 삶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따뜻한 고깃국물에 밥 말아먹고 남은 오후도 힘내자고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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