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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Sep 10. 2023

만약 내가 대학원에 진학했다면


회사에서 새 제품을 출시했다. 줄기세포 유래 엑소좀(Exosome)으로 피부 재생을 돕는 스킨부스터다. 제조사 개발자가 와서 제품의 작용기전을 교육하는데, 설명을 듣다가 슬그머니 딴생각이 났다. 만약 내가 대학원에 진학했다면, 그래서 생물학 공부를 더 했다면 어땠을까?


대학교 때 생물학을 전공했다. 세포에 대해서 배웠고 세포의 구성물인 엑소좀에 대해서도 들었다. 엑소좀에 대해서는 졸업 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10년이 지나서 회사에서 들으니 예상외로 반가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종종 '내가 대학원에 진학했더라면 어땠을까?'를 상상한다. 책을 읽다가 혹은 유튜브 강의를 듣다가 그런 생각을 하곤 했는데 오늘은 회사 일을 하다가 또 생각났다. 과학자가 되었을까? 오랜 공부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뛰쳐나왔을까? 적은 노력 대비 빠른 결과를 선호하는 내 성향상, 설령 대학원생이 되었더라도 결국엔 취업해서 돈을 벌었을 것 같다. 그래도 가끔 아련하게 상상해 본다. 생물학자의 길은 어땠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네이버를 켜고 대학원과 사이버대학교를 검색해 본다. 30분 정도 열심히 찾아보다가 결국 인터넷 창을 닫는다. 이론 공부와 실험 실습을 병행하는 자연과학 특성상 회사 생활과 병행 가능한 대학교육기관은 없다. 잘 자리 잡고 있는 회사를 뛰쳐나와서 학교 공부에 올인할 자신도 없다. 이번 상상도 그냥 공상으로 그쳤다.


친한 대학교 동기가 6명인데, 그중 한 명만 학교에 남았다. 석박사를 마치고 이젠 박사 후 연구원으로 과학자의 길을 걷는 친구다. 나는 이 친구를 많이 아낀다. 우리 중에 유일하게 정통 과학자의 길을 걷는 친구의 용기와 뚝심이 자랑스럽고 부럽다. 그녀의 행보가 마치 내 어린 시절 꿈이 현상된 것 같아서 대리만족하는 기분이다.


22살 대학교 3학년 시절, 나는 취업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겐 공부 재능이 없었다. 생물학 전공을 사랑했지만, 10년 넘게 공부에만 파고들어서 박사가 될 자신은 없었다. 어차피 박사 학위가 없으면 연구자가 될 수 없는 학문이다. 나는 내 한계를 깨닫고 바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26살에 첫 정규직 사원으로 취업했다. 영업을 하다가 마케팅 부서로 자리를 옮긴 후, 지금까지 마케팅 일을 하고 있다. 제약회사 마케터지만 생물학 전공이 딱히 도움 되진 않는다. 학회 강의나 논문에서 들리는 용어가 비전공자보다 조금 더 익숙할 뿐, 일하는 과정과 효율은 남들과 똑같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글로 정리하고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일에 생물학 지식이 필요하진 않다. 대학교 졸업 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전공과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대학교 전공이 생각난다. 젊은 시절의 꿈이었던 과학자의 길이 궁금하다. 20-30대의 반짝이는 젊음을 모두 바쳐서 학문 외길을 걷는 사람들의 열정과 명확한 삶의 궤적이 부럽다. 질문에 대한 답을 연구해서 새로운 지식으로 만들어낼 전문성이 부럽고, 이를 바탕으로 인류의 더 나은 삶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부럽다.


나는 생물학 학사다. 11년 차 회사원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생물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 학위에 도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박사만큼의 전문성은 없을지언정 나만의 명확한 삶의 궤적을 그리며 내 가족과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는 남아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가보지 못한 과학자의 길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미련이 남겠지만, 그 대신 걷고 있는 직장인의 길에서 과학자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보려 한다.


내일은 대학원 박사 친구에게 연락해 봐야겠다. 조만간 연구실로 놀러 가겠다는 약속을 잡아야겠다. 친구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못 이룬 과학자의 꿈을 대리만족해야겠다. 그리고 내 삶의 가치와 소중함도 새삼 깨달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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