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외로움, 아빠의 외로움, 나의 외로움.
아빠의 외로움
난생처음 아빠와 술을 마셨다.
친구들과는 종종 마시던 술이었지만 왜 때문인지 아빠와는 술 마시는 게 달갑지 않았기에 항상 피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혼자 소주를 따라 드시던 아빠가 '오늘만은 아들 노릇도 좀 해주라'라고 툭 뱉은 말에
맥주 한 병을 따고 말았다.
술에 조금 취하신 아빠가 요새 매일 악몽을 꾸신다고 했다. 곧 있을 정년퇴직 후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사실에 짓눌리는 꿈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이가 들 수록 외롭다는 말까지.
아빠가 그런 고민을 안고 계신다는 사실에 머리가 띵했다.
"아빠가 그러면 안 되는데, 속 얘기를 너무 해버려서 미안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내게 아빠는 대뜸 사과하셨다.
아빠의 외롭다는 말 보다도, 뒤이어 이어진 미안하다는 말에서 더 짙은 외로움이 느껴졌다.
아빠에게는 가족한테 속 얘기를 털어놓는다는 게 미안한 일이었구나,
그동안 속 얘기 한번 제대로 못 털어놓고 살아서 참 외로우셨겠구나, 하고.
돌이켜보니 아빠가 참 외로우셨겠구나 싶다. 내가 알 수 없었던 아빠의 회사생활에서도, 회사에서 말 못 할 고민들을 안고 돌아온 집에서도. 그렇게 회사, 집, 회사, 집만을 왔다 갔다 하며 흘러버린 아빠의 청춘 속에 가늠할 수 없는 외로움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리고 막연한 무력감을 느끼는 인생의 겨울을 앞둔 지금까지도.
엄마의 외로움
엄마는 늘 혼자셨다. 아빠가 출근하시고 내가 등교하고 난 후 말이다.
내 나이 서른, 이제 어느 정도 엄마의 인생을 이해하기 시작한 나이.
문득 엄마가 참 외로우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전화할 때 엄마께 심심찮은 위로랍시고 "엄마. 원래 인생은 누구나 다 외롭대."라고 툭 던졌다.
평소 건조한 엄마 성격이라면 "엄마는 안 외로워"라는 예상 답변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엄마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엄마는 이제 외로워도 외로움을 외면하는 방법을 터득했어."
엄마는 늘 라디오를 즐겨 들으셨다. 어느 날 한번 "엄마는 라디오가 그렇게 좋아? 계속 들으면 지겹지 않아?"라고 물었을 때, "그냥 조용한 것보단 낫잖아."라고 답하셨다.
독립 10년 차. 퇴근하자마자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씻기 시작한다. 물소리에 묻혀 말소리가 흐리게 들리지만 누군가 재잘거리는 소리는 외롭다는 생각을 밀어낸다. 적막함이 싫어 팟캐스트를 틀 때마다, 텅 빈 집을 지키던 엄마의 지난 외로움이 빼곡하게 와닿는다.
나의 외로움
나는 20대 내내 외로워서 많이 울었다. 본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부모님과 살다가 작은 원룸에 혼자 있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은 도무지 적응하기 어려웠다.
이십 대 초반에는 남자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건지 알고 남자를 열심히 만났었다. 물론 외로워서 만난 연애는 자연스레 내가 을이 되어 상대방이 떠날까 봐 조급해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보니 매번 차였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한 후 내 외로움의 근원은 애인 유무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외로움은 해소될 수 없다는 생각에 많이 공허했었다.
숱한 사람들과 만남 속에서 느낀 건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결국 혼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그러나 평생 나와 함께 해야 할 외로움과 마주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세 명 모두 각자의 외로움을 안고 살고 있었다.
나름 대화가 많던 우리 가족은 왜 한 번도 서로에게 외롭다는 말을 제대로 해본 적 없었을까.
한 살씩 먹어가며 부모님의 외로움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첫 인턴을 하며 아빠의 회사생활을 간접 경험했을 때,
텅 빈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보니 마냥 쉰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느꼈을 때.
나는 흔히 말하는 가장의 무게에 짓눌린 아빠가 제일 외로울 것 같다 생각했었다.
반면 엄마는 그다지 사람 만나는 걸 안 좋아하는 성격이니 아빠보다는 덜 외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외로움에는 무게가 없었다. 모든 이에게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저마다의 외로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에 무게가 없는 것처럼 외로움에는 무게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워도 굳이 외롭다고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나의 외롭다는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 조차 외로운 사람일 테니까.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외로울 거야’라는 부질없는 비교도 하지 않는다.
외로움에는 무게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