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이번주 휴가기간이다. 보통 학원 방학은 3일이고, 주변학원들도 그러한데 나는 배짱 좋게 일주일을 선언했다. 쉬고 싶기도 했고 내 소신껏 해보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남편도 휴가라고 하니 배 타고 어디라도 가볼까 싶었지만 미리 예약해 둔 곳도 없고, 힘들게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이는 오전에 방과 후 보내고 오후에 돌아오면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을 다녀오자며 아주 여유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러다 학원 바닥 에폭시가 까졌는데 부분보수 해달라고 남편에게 한마디 했더니 마스터 빌더인 01C왈
"콩자갈로 바꿔줄까?"
"콩자갈은 모르겠고, 일 키우지 말고 대충 해."
본인이 하는 일에 진심인 남편은 결국 교실에 있는 것을 싹 다 치우고 바닥을 갈아낸 뒤 4중으로 에폭시를 깔았다. 문제는 교실이 끝나는 대로 원장실과 대기실도 똑같은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 한주의 절반이 지났으니 나머지 작업과 정리 후엔 개학해야 할 터 우리의 휴가는 이리 끝날 것 같다.
휴가 이틀째 올해 첫 바다수영에 갔다. 피할 곳 없는 햇살과 매트에 모래 묻는 게 싫고, 아이들도 바다보다는 수영장을 선호해서 바다 보이는 카페만 가지 정작 바다에 들어가진 않게 된다. 한림 작은 영화관에 인사이드 아웃 2 예매를 하고, 바다수영할 준비물도 챙겼다. 땡볕을 피하려고 일부러 느지막이 갔더니 7시엔 나와야 한다고 방송해서 정작 한 시간도 놀지 못했다. 상관없었다. 간식을 먹고, 상황실이 퇴근하면 다시 물속에 들어가서 바다수영하는 게 정설과도 같았다. 컵라면과 치킨까지 야무지게 먹고 다시 바다에 들어가라 했더니
"엄마, 아까 바다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잖아!"
"나도 이제 그만 놀래!"
"이제 용천수에 씻으러 가자."
"너무 짧게 놀아서 아쉽잖아, 저기 봐 다 들어가서 놀잖아"
물놀이가 아쉬우면서도 물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들과 남편. 좋게 말하면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다. 일몰의 바다 수영이 진정 예쁘고, 시원할 텐데 안 가겠다 떼쓰는 사람은 오히려 나뿐이었다. 사진 찍게 좀 들어가 보라 사정해서 그나마 물가에 앉히고 사진 몇 장 찍자 마자 얼른 일어나는 윤 C들... 예전에 고지식하다고 뭐라 했는데 이젠 화도 안 난다. 불법을 자행하라고 고집부리는 내 욕심만 접으면 된다.
休 쉴 휴 暇 틈 가
틈새 있는 날이라는 뜻의 휴가라는 의미를 생각한다. '손해 보며 살지 말자', '고생하지 말고 대충 하라'는 말이 세상살이에 지혜로 여겨지지만 휴가는 사실 꽉꽉 채우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다. 빡빡한 여행 스케줄에 오히려 여행으로 방전되는 참사가 생기니 휴가 기간에 만이라도 설렁설렁 세상을 산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에어컨에 냄새 밴다며 에어컨도 틀지 않고 야밤에 가서 에폭시 작업을 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남편에게 대충 하라는 말보다는 고맙다는 언어가 필요했다. 공공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잔소리보다는 세워둔 푯말대로 행동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 시간 더 물속에서 즐긴다 한들 마음이 불편한 체로 노는 것은 오히려 벌칙에 가깝지 않겠는가... 인생을 휴가처럼 살자. 꽉꽉 채우지 않고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오늘도 나만 잘하면 되는 일이었다!